스포 주의
사와무라 이치
'보기왕이 온다' '즈우노메 인형' '시시리바의 집' 일명 히가 자매 시리즈의 작가 사와무라 이치의 작품이 새로 정발 됐다. 이렇게 말해봤자 나는 '보기왕이 온다' 이외에는 읽은 적이 없지만. ('온다'라는 제목으로 나온 실사 영화도 봤다.)
시리즈의 정발 속도는 빠른 편에 속하는 거 같은데 히가 자매의 매력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일까─오컬틱 하고 토속신앙이 나오는 호러 미스터리라 한다면, 내 취향의 정 가운데 박히는 장르일 텐데도 보기왕 이후에 나온 작품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언제나와 같이 신간들을 확인하던 날 호러 미스터리의 출판소식을 듣고서, 작품의 정보를 찾아봤다. 분위기부터 분량까지 항상 내가 갈망하던 작품상이었다. 다만, 작가가 그동안 피해왔던 그 작가란 걸 알고 구매를 망설였지만, 히가 자매 시리즈가 아니란 것을 알고, 타협하며─호러 미스터리는 귀하다─구매했다.
결과적으로 성공이다.
드디어 성공했다.
그동안 몇 권의 실패를 겪어왔던가.
돈 주고 시간을 버리는 듯한, 손해밖에 없던 스파이럴을 드디어 빠져나갔다. 진지하게 책을 그만 사고 한동안 거리를 둘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그런 번뇌를 거듭하던 중─단비 같은 한 권이 찾아왔다.
예언의 섬
자살미수를 저지른 친구의 기분전환을 위해 주인공 준과 오랜 친구인 하루오, 자살 미수자 소사쿠 세 사람은 과거 유명했던 영능력자가 유언으로 '무쿠이섬에서 6명이 죽는다'라고 말했던 무쿠이섬 즉, 예언의 섬을 기분전환 삼아 방문하기로 한다.
노인밖에 남지 않은 섬은 외부인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띄고 있고, 비 내리는 첫날밤 친구인 하루오가 시체로 발견되고, 소사쿠마저 사라진다. 폭우로 인해 외부의 도움은 바랄 수 없고, 결국 예언의 말에 근접한 4명의 피해자가 발생한다.
예언 속 피해자의 부합하려면 앞으로 두 명. 두 명의 피해자가 더 늘어날 것인지 일행은 두려움에 떨게 된다.
줄거리는 쓰기 힘드니 대충 쓰자.
예언의 섬의 장점을 말해보자면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무척 잘 읽힌다. 오랜만에, 정말 오래간만에─뻥 뚫린듯한 해방감을 느끼며 장시간 술술 집중해가며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무언가 얹힌 것처럼 책을 펴고 몇 페이지 넘기다 보면 뇌에 안개가 낀듯한 지긋지긋함에 장시간 읽을 수 없었는데, 정말. 이런 해방감을 가지고 읽는 건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거기다 분위기는 어떤가. 상술했든 호러에 미스터리다. 무려. 호러 미스터리! 그 섬에는 노인들 뿐이고 토속신앙이 있고, 금기가 있고, 외지인을 경계하며, 저주가 있고, 예언이 있고, 고립되고, 비가 오고 혼령이 있고, 원령이 있고 수호신이 있다. 더해서 시체도 한 구 두 구 점점 늘어난다.
이 무슨 오컬틱! 내겐 장르의 선물세트와 같았다.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읽어 가는 중, 후반부에 드디어 '히키타의 원령'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그쯤에서 팍 식었다. 물론 예상한 건 아니지만, 복선 비슷한 건 눈에 띄었다. 결국 이런 결말인가─하고 실망감과, 그래도 오랜만에 시작은 좋았다는 기쁨이 교차하던 때, 진짜 반전은 따로 있었다.
서술 트릭이라니─. 서술 트릭이라니!
도대체 왜 미스터리만 읽으면 감이 둔해지는 걸까. 둔하다고 할까, 대화나 묘사 전개 등에서 이상함을 느껴도 깊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등장인물들의 반응이 이상하거나,
예를들면 대화의 흐름이 엇갈리거나,
예를들면 같이 대화를 하는데, 정서 불안처럼 화를 내 거나 큰소리를 치거나 순간순간의 성격이나 반응이 달라질 때─.
중간중간 분명한 위화감을 느꼈었는데, 어째서 알지 못했을까. 아니 왜 더 나아가서 생각하려 하지 않았을까. 전부 읽은 뒤의 이 기분 좋은 패배감은 키보드로 다 할 수 없다.
다 읽은 뒤에 얼마든지,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그 복선이 되는 위화감을 느낀 장면들을 찾아 다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작가의 시점이, 등장인물이었다니─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시점의 이야기였다.
다만 별개로 소사쿠와의 통화에서 소사쿠가 원령과 예언 운운할 때, 이미 히키타 원령의 정체를 안 상태였는데 그걸 먼저 말했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싶었다. 아무리 다급 하 다했어도 쓸데없는 혼란만 부추기는 통화는 전부 읽은 뒤에서 야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정말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읽은 작품이었다.
히가 자매 시리즈는 몰라도 사와무라 이치의 논 시리즈 작품이라면 앞으로도 구매할 욕구가 충만하다.
부디 계속해서 이 정도의 작품을 써주시길.
그리고 책값이 너무 비싸졌다. 이제는 기본이 18.000원부터 시작인가. 한숨만 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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