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대에 등장하는 신전기와 신본격 미스터리를 망라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의 첫 작품 '우부메의 여름'입니다.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 우부메의 여름
  • 고서점의 기도사 통칭 교고쿠도의 장광설

우부메의 여름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츠히코

작가 교고쿠 나츠히코는 디자인 회사를 세운 뒤 일이 없는 틈틈이 '우부메의 여름'을 집필했다고 한다. 잉크값이라도 벌자는 생각으로 완성된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는데 편집자가 홀딱 빠져서 이틀 만에 출간이 결정되는 유명한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1994년 우부메의 여름을 시작으로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등 이른바 교고쿠도 시리즈─작가는 '백귀야행 시리즈'라고 표기한다─들이 연달아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순식간에 미스터리계의 대 문호로 칭송받게 된다.

 

그 무너지는 문체와 쉴 새 없이 튀어나오는 장광설, 전에 본적 없는 특이한 구성들─일상과 비일상, 현실과 초현실을, 경계를 무너뜨리는 설계까지. 이 작가의 작품은 그 시기에 뒤따라오는 수많은 작품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고, 그 구성들은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우부메
우부메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도─백귀야행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나는 구매 전까지 많이 망설였다. 이유는 별것 아닌데, 이 시리즈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또 다른 명성─바로 '벽돌 책'이라는 수식어 때문이었다.

 

물론 이보다 더 두꺼운 책들이야 많지만 우부메의 여름은 일단 600페이지다. 내가 선호하는 책의 분량은 기본적으로 300~350페이지인데 대충 두배 가량 되니 나의 좁쌀만 한 집중력이 과연 유지될까 불안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번째 '망량의 상자' 세 번째 '광골의 꿈'은 상/하 권으로 나눠져 합이 1000페이지가 넘어가니 이거 읽기 시작하면 고통받을게 뻔했다. 더 해서 네 번째 '철서의 우리'는 상/중/하 총 세권 합이 1500페이지가량 된다.

 

쌓아 올리면 장관이고, 책이 아니라 흉기다.

 

다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부메도 페이지 수가 많은 편이지만 이후 나온 시리즈에 비하면 양반이기에 시리즈의 첫 작품이며 입문작으로는 분명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거기에 확실히 우부메는 다른 작품보다 순한 맛이다.

 

맛보기에는 딱 좋은 위치이기에 이걸 읽고 별로면 굳이 이후 시리즈를 사 읽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큰 맘먹고 도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대성공이었고 난 빠르게 팬이 됐다.

우부메의 여름 만화
우부메의 여름 만화

 

고서점의 기도사 통칭 교고쿠도의 장광설

이 시리즈의 시작이고 끝이고 장점이자 매력은 모두 교고쿠도를 통한다. 

 

통칭 교고쿠도, 본명 추젠지 아키히코는 고서점의 주인이며 가업인 기도사를 하고 있다. 거기에 부업으로 요괴 퇴치까지 하는 이 주인공은 항상 "이 세상에 이상한 일 따위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한다.  

 

어떤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 주위 사람들이 떠들어도 자신의 장기인 장광설─잡다한 지식과 종교 철학 민속학 과학 지리학 민간전승 오컬트 등 양자역학마저 나온다─로 냉정하고 논리 있게 해석하고 분해해 나간다. 

 

장광설

어떤 독자들은 이 장광설 때문에 읽기를 포기하고, 어떤 독자는 이 장광설에 빠져들어 책을 놓지 않는다. 물론 난 후자이다. 교고쿠도의 친구인 심약한 화자 세키구치가 세상 가십거리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교고쿠도를 찾아가면 그는 철저하게 논파하고 세키구치의 혼을 빼놓는다. 

 

그 과정에서 하는 청산유수 같은 말들─쏟아지는 글자들의 폭력에 나는 푹 빠져버린 것이다. 비현실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이해시켜서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내린다. 광범위한 지식들로 끝없이 설명하는 그의 말을 읽다 보면 세키구치 같은 나는 똑똑해지는 기분이 든다.

우부메의 여름 영화
우부메의 여름 영화

 

그렇다 수박 겉 핥기식 잡지식. 읽으면 똑똑해지는 '느낌'이 드는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이 책의 단점일 수 있는 장광설은 선물 같은 장점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그리고 이야기의 초반부터 나오는 이 장광설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초반부터 사람의 인식과 눈과 뇌의 왜곡과 착각들에 대해서 설명하며 세키구치가 말하는 비현실을 현실의 영역으로 설명하며 수십 페이지를 잡아먹는데 아주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전개와 특정 인물의 초능력? 같은 부분. 결말인 교고쿠도의 추리와 연달아 터지는 진상들.

 

분명 보기에 따라서는 '말도 안 된다. 비현실적이다. 추리소설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는 부분들을 작가는 미리 초반의 장광설들로 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해결 편의 불만에 독자의 납득을 야기한 것이다─고 생각한다.

 

작가 자신의 지식을 피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고쿠도의 장광설들은 그 자체로 매력이지만 작가의 설계에 꼭 필요한 하나의 장치인 것이다.

 

교고쿠도의 기도사의 일이나 요괴 퇴치도 마찬가지.

 

본문에도 나오지만 결국 그건 환자의 착각과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납득을 하게끔 현란한 혓바닥으로 장광설을 펼쳐 '씐 것'─망상과 오해와 같은 문제들을 떼어내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와 비슷한 건가?

 

결과적으로 대대 만족인 책이다.

 

역시 추리소설은 가장 맛있는 부분인 해결 편이 파격적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도 마지막 교고쿠도의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사건의 분석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폭탄이 끝없이 터지는 카타르시스. 읽으면서 전율이 흐른다.

 

완벽한 구성력과 빈틈없는 설계,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장광설. 잉크값을 벌자고 출판사를 놀라게하는 빠른 속도로 이런 작품을 써내려간 작가 교고쿠야 말로 이매망량의 부류가 아닐까. ─무언가에 씐 것일까?

 

요괴 매니아라는 교고쿠─.취미와 재능의 일치가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 알고 싶다면 이 작가의 책을 읽면 된다.

 

벌써 더워지려는데 이 스산한 분위기의 명작을 부디 두께에 겁먹지 말고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

 

개인적인 작은 단점으로 화자인 세키구치의 찌질함 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에노키즈같은 막무가내 캐릭터는 싫어한다. 

 

이 시리즈의 두번째 권

망량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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