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리뷰에 이어서 교고쿠 나츠히코의 백귀야행─교고쿠도─시리즈의 두 번째 타이틀 '망량의 상자'입니다.

망량의 상자 

  • 표지의 매력
  • 두껍지만 읽게 된다
  • 재미가 전부
  • 대망의 마지막
  • 끝으로

소설 망량의 상자
소설 망량의 상자

표지의 매력

전작의 우부메의 여름이 그렇듯 이번 망량의 상자의 표지도 너무나 마음에 든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읽어보면 알겠지만 잘 보면 내용을 관통하는 사건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책이라는 네모난 상자─이 시리즈는 두꺼워서 '벽돌 책'이라고 부른다─에 빽빽하게 가득 차있는 토막 난 소녀 모형의 인형.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인상적이지만 전부 읽고 책을 덮었을 때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되는 표지는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된다.

 

일본에서도 이 표지 일지는 모르지만 디자인을 맡은 분의 센스에 경의를 표한다.

 

두껍지만 읽게 된다

우부메의 여름은 약 600쪽.

망량의 상자는 상, 하권 총 1000쪽이 된다.

계속해서 말해왔지만 나의 초라한 집중력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에 따라 선호하는 책의 페이지 수는 약 300~350페이지 정도이다.

 

당연히 망량의 상자는 선호도의 약 세 배를 넘어버렸으니 솔직히 버겁긴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지간해서는 재탕을 싫어하는 내가 잊을만할 때, 혹은 그저 그런 미지근한 소설만 읽게 됐을 때 이 압도적인 작품으로 다시 회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재미가 전부

정말로 진심으로 진실로 이 작품은 교고쿠도 시리즈에서도─전부 읽지 않았지만─손에 꼽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부메의 명성을 넘어서, 재미를 넘어서, 독자를 압도해버린다. 찍어 누른다.

 

마조히스트 같은 독자들은 이 책을 보면 마냥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만화 망량의 상자
만화 망량의 상자

 

교차하는 시점들과 시점이 바뀔수록 쌓여가는 의문들. 독자의 이해를 넘어서 날뛰고 미쳐버린 등장인물들. 중구난방의 여러 사건들이 얽혀있고, 가치관을 흔들고 윤리관을 떨게 만드는 흐름. 그리고 작가만의 유일무이한 문체와 교고쿠도의 아찔한 장광설.

 

이 모든 혼돈이 장점이다. 이런 혼돈 속에서도 이 작품은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 한 행 한문단 한 페이지 무엇 하나 빠질 수 없다. 버릴 장면도 없고, 모자라지도 않다. 이 상자─책에 빽빽하게 가득 차 있다.

 

대망의 마지막

경계에 서있는 망량에게 사로잡혀 선을 넘어서 피안으로 가버린 안타까운 피해자들, 가해자들.

 

이 작품에서 계속해서 말하는 망량, 경계, 선 들은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다. 그래서 화자인 세키구치는 계속해서 망량이 무엇인지 교고쿠도에게 질문한다. 

 

그러므로 등장인물들의 선악도 따지기가 애매해진다. 

언듯 보기엔 누가 봐도 가해자 같지만 따지고 보면 무엇하나 범법행위를 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련한 피해자 같던 인물은 누구보다 가해자의 역할이었다.

영화 망량의 상자
영화 망량의 상자

 

이렇게 정리를 하지만 역시 명확하지 않다. 그저 상황에 휩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가능한 상황이 ─조건이 온 것이다. 망량의 상자에서는 이것을 '도리모노'라고 표현했다.(지나가거나 마주치면 재앙을 주는 요괴)

 

그렇게 대단원이 찾아오고 모든 등장인물들을─'죽은 사람들'을 제외한─한 곳에 모으고 교고쿠도는 얽혀있는 여러 사건의 실타래를 알맞은 순서대로 풀어나간다. 그 과정 속에서 모든 의문이 풀리고 각자에게 씐 '망량'을─제거해 나간다. 

 

수많은 복선을 쌓고 망량을 비틀며 지나온 이야기들은─사건들은 무려 150페이지에 달하는 해결 편을 갖는다. 

 

해결 편이 길수록 그만큼 재미있다. 

우부메에서 그렇듯, 모든 의문을 하나하나 꼭 집어서 풀어주는데, 그 진상들이 쉬지 않고 연달아 터지는 폭탄처럼 어마어마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순식간에 해결 편을 끝내면 어쩔 수 없는 탈력감과 무력감이 온몸을 덮치고 인간으로서 지친다. 모든 의문을 제거한 상쾌함과 자신을 보호하는 어떤 외피가 깎겨나가버린 찝찝함이 공존하게 된다.

 

그야말로 망량─.

아직 마주해선 안 되는, 지옥을 미리 엿 본기분이다.

 

모든 이야기들은 해결 편을 위해 존재한다지만 최후반의 절망감과 등장인물들의 반생에 질려버린다. 이번만큼은 세키구치를 동정할 수밖에 없었다.

 

읽고 있는 나 자신이 그로기 상태인데 우부메의 여름에서 처럼, 아니 오히려 이번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방관자의 입장이던 세키구치는─궁금증을 가지고 발을 들여버린 티켓값으로는 너무 비싼 대가다─극의 파탄에 망량과 마주하게 되어 버린다.

 

그러니 동정을 금할 수 없다.

애니 망량의 상자
애니 망량의 상자

끝으로

이 리뷰의 부정적인 말들은 궁극적으로는 모두 장점을 말하는 것이다.

역겹다 해도 좋았다. 끝이 찝찝하다 해도 좋았다. 잔인해서 더욱 좋았다. 사건이 엽기적이라 더더욱 좋았다. 읽고 난 후의 탈력감과 무력감? 기분 좋을 뿐이다. 무너지는 가치관, 받아들일 수 없는 윤리관? 그런 건 원래부터 아무래도 좋았다.

 

압도적인 작품을 마주하고 그대로 압도당하고 책을 덮었을 때 몸과 정신이 피로해진다면 그걸 명작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파격적인 작품에 사정없이 짓밟히고 싶은 마조 독자들은 망량의 상자 정도의 작품이라면 모두 두 팔 벌려 아니─엎드려서 환영할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칭찬밖에 안 나오니 개인적인 단점을 뽑아보자면,

기바의 멍청함에 심히 답답하다.

 

모든 논리를 무시하고 명확한 적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뇌근육 타입의 남자. 등장하는 내내 속으로 여러 인물을 깔보지만 누구보다 멍청했던 남자. 기바의 파트는 재미와는 별개로 답답함이 많았다. 

 

무엇보다 장광설. 물론 작가가 90년대에 50년대를 배경으로 쓴 것이지만, 그럼에도 선진적인 관점과 의식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컬트와 과학

정반대 같은 장르를 교묘한 화술로 뒤섞어 망량에 사로잡힌 인물들에게 알맞게  처방한다. 독자에 따라서는 우연도 있고 억지라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작가는 확실하게 그 우연과 억지─불가능을 교고쿠도를 통해 납득하게 만든다. 불만을 종식시킨다.

─처방한다.

 

물론 장광설을 읽으며 여러 가지 관점을 알게 되고 이번에는 특히 점쟁이, 영능력자, 종교인, 초능력자의 차이점들이 흥미로웠다. 행복과 안심을 얻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어리석어지는지도─교고쿠도가 하고 싶은 말과 정반대일지도 모르지만.

 

"───는 지금도 행복할까?"
"그야 그렇겠지. 행복해지는 것은 간단한 일이거든."
교고쿠도가 먼 곳을 보았다.
"사람을 그만둬 버리면 되네."
비둘어진 친구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에서 먼 것은 자네다. 그리고 나다.

 

내 파격적인 이해력으로는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사람을 그만두면 행복해진다는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건 누구의 이해도 받지 못하고─받지 않더라도─아니 오히려, 타인의 이해는 필요가 없다, 자신만의, 자기 내면에서 자신의 잣대와 가치로 행복의 기준을 찾으면 과연. 누구나가 행복할 것이다.

 

타인이 눈에는 그저 광인으로 보일 지라도.

원래 행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며 자기 완결일 터. 타자의 이해를 바라는 행복이 존재할리가 없다.

 

이 네모난 책은 망량이 들어있는 상자다.

열어서 확인할지 노줄로 둘둘 묶어 봉할지는 독자의 선택. 

상자를 열면 행복은 몰라도─지고의 재미는 보장한다.

 

★★★★★★★★★★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권

우부메의 여름

 

PS.

1. 도리모노의 설명에서 사건은 동기의 탐색은 무의미하고 '충동적'이라고 말했는데 계획 살인은 어떤지 궁금했다. 도리모노가 찾아오는─저지르기 좋은 순간의 상황, 찰나의 타이밍으로 저지르게 된다는데 계획 살인을 제외하고 한 말인가.

 

2.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인 '광골의 꿈'의 재탕은 좀 더 나중이 될 거 같다. 분량은 망량과 비슷한데, 교고쿠도의 분량이 무척 적기 때문.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