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지무라 미즈키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은 어느 정도 읽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나온 신간들은 관심이 없었지만, 한창 책을 읽을 때 한 번씩 구매한 기억이 있다.
정가인하로 싸게 풀린 '나의 계량스푼'을 계기로 알게 되어, 메피스토상 수상작이자 데뷔작인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전 3권, 내용이 기억나지도 않는 동그라미, 재미는 있었지만 뭔가 허무했던 '아침이 온다', 나름 쏠쏠했던 '그래도 학교니까!', 재미하나 없던 '태양이 앉는 자리', 계량스푼과 함께 츠지무라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까지.
대충 이정도를 읽었는데, 언제부턴가 이 작가도 관심이 떨어졌다. 친구가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려줘도 딱히 구매할 생각은 안 들었다.─친구 말로는 '거울 속 외딴 성'은 재미있었다고 한다─ 한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다 보면 이런 법인가, 저번에도 같은 말을 쓴 거 같기도 하고.
그런 도중 츠지무라의 신작인데 뭔가 표지가 라이트 한─, 노벨 한─작품이 눈에 띄었다. 츠지무라가 '패권 애니'라는 라이트 노벨 같은 작품을 한 권 출판한 건 알고 있어서,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꺼져버린 관심에 불을 지피기에는 성공했다. 거기다가 공포/호러소설 이라니. 저번 리뷰였던 사와무라 이치의 '예언의 섬'과 함께 연달아 공포,호러소설이 발매된 영향도 있었다.
안 그래도 입지가 좁은 호러와 공포를 섞은 미스터리.
선택지는 이미 좁혀졌다.
이렇게 되면 살 수밖에 없다.
야미하라
闇Harassment─를 줄임말로 '야미하라'라고 명명한 제목이다. 요즘 자주 쓰이는 가스라이팅과 비슷한데, 말려든 사람은 점점 주위의 분위기를 망치고 불쾌하게 하고 위협하며, 사회적으로 파멸하는 듯하다.
야미하라는 총 5장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각자 나눠서 보자.
1장은 표지대로의 느낌이었다. 아니 야미하라가 무엇인지 시작은 가볍게 이야기해준 느낌. '장남 간바라'(야미하라를 이용해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게 간바라 일가이다.)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야미하라의 무서움보다 어리둥절함이 더 컸지만.
표지대로라는 말은 1장의 주인공 미오나 주위 친구들, 그리고 의문의 전학생인 시라이시의 캐릭터성이 라이트노벨─라이트 문예 쪽으로 조금 기울어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런 만큼 읽기 편했고 재미가 있던 거지만. 그리고 일반적인 호러 미스터리, 이야미스의 종류인 줄 알았는데, 기묘한 판타지스러운 능력과 연출들이 나오길래 당황했었다.
2장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불쾌함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아마 작품 내에서 가장 짙은 어둠─야미하라─가 아닐까. 모든 인물들이 불쾌함을 뿌리고 다닌다. 그런 면에서 '모친 간바라'의 영향력은 마지막을 빼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데, 이게 작가가 경고한 '누구의 곁에나 존재하는' 야미하라일까. 2부는 유독 간바라 일가의 힘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기싸움과 질투. 얕고 넓은 광기가 만연해있다.
화자인 리쓰역시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표출하고 있다. 같은 멘션의 왕으로 군림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나, 남들에게 선망받고 싶은 욕망, 자기 위치에 안주하지만 위에는 불만을 품은 신하 같은 사람들. 분위기를 살피고 분위기에 편승해서 상식의 선을 가볍게 넘는 이웃들. 폭주해봤자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그저 부도덕하거나 예의가 없을 정도의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집단 광기.
딱히 법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저 주위를 말려들게 하고 불쾌하게 하고 피곤하게 하며 같아지기를 강요할 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가장 짙게 깔린 만큼, 내용 역시 힘을 준 느낌이다. 다만 재미를 따지자면 3장보다 조금 아래. 5 장전체 로보면 가장 낮다.
3장에서는 늙은 부하─별명'진'─를 괴롭히는 젊은 상사─사토 과장─의 직장 내 괴롭힘의 이야기 '였'다. 부하들 앞에서 대놓고 망신을 주고, 퇴근 후에도 통화로 3 시간 넘게 잔소리를 이어간다. 처음에는 올바른 지적이었을지라도, 그런데 그런데 하며 점점 처음과 관련 없는 잔소리가 이어지고, 결국엔 그냥 인격모욕 수준의 말들만 뱉어낸다.
직장 내 괴롭힘. 가스라이팅과 함께 이것도 요 몇 년간 대두되고 있는 단어들이다. 다만 3부를 보면 진 역시 대처가 없다고 할 정도로 괴롭히는 사토 과장을 긍정하기까지 하는데, 과연 순수한 피해자로 남아있을 수가 있을까 생각된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반전 아닌 반전으로 3부에서의 간바라 일가는─'부친 간바라'는 사토 과장이 아니라 진이었다. 이렇게 되면 사토 과장이 간바라의 피해자며 점점 변하게 됐다는 건데 이건 복선이 깔려있었다. 그런데, 3장의 간바라는 다른 간바라들과 다르게 딱히 뭔가 직접적인 불쾌감이나 피해를 피해자에게 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간바라는 사토 과장을 자신과 공의존하게끔 유도했다고 하는데, 악의를 가졌다고는 하나 간바라가 한것은 그저 사토과장의 말을 계속해서 듣고 끝없는 긍정과 사토과장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줬을 뿐이다. 노린 건 맞지만, 생각해보면 사회인이, 부하 직원이 마땅히 갖게 되는 처세술이 아닌가. 약간 갸우뚱하게 된다.
오히려 5장에서 부하 스즈이를 어떻게 그 지경까지 가게 만들었나 그걸 더 보고 싶었다. 과정이 짧아서 츠지무라가 스케일을 키우고 싶은 욕심 탓에 흐름상 무리수를 둔 것이 보인다.(전개나 스토리에 모순은 없고,거슬리는 건 아니지만.)
4장은 가장 짧다. 이른바 엄친아 인─어른들에게는 잘 보이지만 동급생에겐 폭군 비슷하다─도라노스케의 반에 간바라 니코. 즉 '차남 간바라'가 전학 오고 교실은 점점 이상해진다. 도라노스케가 잘못을 저지르면 당당하게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니코를 따라서 반 친구들도 점점 동화되어 모두가 도라노스케를 규탄하고, 순번을 정해서 숙제와 준비물을 챙기도록 도라노스케의 집에 눌러앉는다. 점점 도라노스케의 집안은 피폐해진다
짧지만 재미있다. 다른 편들과는 달리 단순하고 직관적인 '야미하라'이기 때문일까. 복잡함이 없다. 더군다나 결말까지 찝찝함보다는 시원하게 죽어나가니 오히려 좋다.
5장이 끝. 이야기들은 전체적으로 연결점을 갖고 있다. 시계열을 나열한다면 1장─4장─2장─3장─5장 일까. 2부에서 주인공이 바뀌고 아쉬웠는데, 5부에서는 1부의 주인공 미오와 시라이시가 다시 등장한다. 나머지 간바라들은 모두 퇴치가 됐고, 이제 4부의 '부친 간바라'를 퇴치하면 '간바라 일가'는 끝이다.
끝이 좀 아까웠다 명색의 마지막 빌런인데, 나름의 판타지 한 전개도 있는데, 순식간에 금방 끝나버린다. 그 앞에 나온 반전의 충격이 좀 더 컸다면 마지막 간바라와의 대결이 짧아도 짧은 줄 몰랐을 텐데, 그 반전은 애초에 반전 같지도 않았다.
소리를 지르고 방울소리가 울리면 퇴치 완료. 말로써 주위에 어둠을 뿌려 말려 죽이는 간바라 일가의 노력에 비해서 너무나도 간단하고 쉬운 퇴치법이다. 클라이맥스가 몇 줄 뿐이라 여운도 뭣도 없다.
이렇게 각 장의 감상이다.
이런 야미하라를 당할 때는, 분명 불쾌하고 짜증 나고 피하고 싶은 상황이고─사람이지만, 해결방법을 찾기 어려운 일이다. 경찰을 부르고 소송을 걸고, 그렇게 일을 키우며 입으로 말로 내뱉어보면 민망할 정도로 경범죄 축에도 못 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자리를 피하고
상황을 피하고
사람을 피하고
피하고 벗어나고 도망칠 수밖에 없다.
오랜만에 후속작이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저번 리뷰에 이어서 연속으로 재미있는 작품을 고르다니. 두 번 있는 일은 세 번 있기도 하니까, 다음에 구매할 작품이 벌써 기대된다.
★★★★★★★★★☆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
비슷한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