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히라야마 유메아키/350p/윤덕주/스튜디오 본프리

무척 재미있는 책이지만, 시작하기에 앞서 상투적이지만 피/고어/그로테스크/역겨움/비윤리/폭력/비도덕/부도덕 등을 꺼리는 분들은 잘 고민하신 뒤 보는 쪽으로 결정하세요.

 

작가 히라야마 유메아키는 국내에 정발 된 책이 두 권밖에 없다. '남의 일''유니버설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이라는 기묘한 제목의 책이다. 두 권다 읽었지만 두 권 전부 풍기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잔인하고, 역겹다. 그래서 좋다.

아무래도 좋지만 리뷰할 거리가 줄어드니 일단 '남의 일'부터 쓰기로 했다.

 

남의 일.

남의 일은 1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작가의 정신상태가 의심될 정도로 모든 내용이 지독하게 참담하고, 역겹고, 끔찍하다. 정상적인 인간의 상상력이 아니다. 작가가 되려면 이 정도로 그릇돼야 하는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의미한 죽음이란 것이 이렇게 고요하고 평온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작품을 보고 작가를 판단하면 안된다. 연쇄살인 소설 작가가 연쇄살인자가 아니듯, 작품은 작품으로 선은 확실히 그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단 1%도 작가의 의도와 사상이 반영되지 않는 작품 역시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고―그 경지까지 갔다면 작가의 인격이 여러 개지 않을까―사견을 없애고, 무심으로, 어떠한 사상도 심상도 담지 않고 쓸 수 있는 글이 세상에 있을 리가 없다.

바보! 아들을 토막낸 식칼로 지은 밥을 어떻게 먹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고 반복해서 생각한다. 그러니 예외는 항상 있는 법이고, 작가와 작품이 표리부동은 커녕, 표리일체. 앞도 뒤도 없는 작가 그 자체인 작품도 분명 있을 것이란 말이다. 결과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 책은 엄청 재미있었다. 계속해서 무례한 말을 했지만 내 근거 없는 짐작과 달리 선하고 선할지도 모를 작가님에게 불쾌한 말을 했지만, 선하다면 선한 채로, 책 속 미친 내용처럼의 기묘한 작가라면 그대로, 이런 종류의 책을 계속해서 써 내려가 주었으면 한다.

가족은 아버지의 샌드백이죠.

어떤 선인이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에게는 건강한 삶을 위해 약간의 노동, 즉 고통은 필요하다고. 그 말대로 너무 유쾌한 책만 읽으면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 계속해서 즐겁다면 그 즐거움 마저도 질리고 지루해지고 무감각해질 것이다. 때로는 불유쾌한 책도 읽어가며 조절을 해주어야 한다. 몸에 좋은 것만 먹는다면 그것 또한 편식의 일종일 테니까.

순풍에 돛 달고 세상을 성선설로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는 녀석들이 우리의 어려움이나 필사적인 노력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작가의 모든 작품이, 단편집의 모든 단편이 고루고루 만족스럽게 재미있을 수는 없다. 맨 처음 이 책의 제목이자 타이틀 작품인 '남의 일'부터 충분히 이 책이 미쳐있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고 비슷한 내용이라고 느껴지는 작품도 존재했으니 눈 가리고 그저 좋다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충격의 편중이 앞쪽으로 몰려있는 거 같은데 단편들의 순서 배치를 좀 더 잘했다면 덜 충격적인 파트의 힘 빠짐이 어느 정도 상쇄되었을 것이다.

어느 곳에나 자기 가치관과 다르거나 자기와 같은 '색'이 아니면 배제하려 드는 '까마귀'가 있는 법이다.

 

잘은 설명하기 힘들지만 '이야미스'(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리뷰) 장르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불쾌하지만 그 안에 무언가 유쾌함을 찾아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과 행동과 언동들로 인해 오히려 공포나 혐오감을 넘어서, 어떠한 코믹함이 있다. 과장되고 동작이 큰 B급 슬래셔 무비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면 전해질까.

우와, 엄청난 얼굴.

 

이기적인 남자도 재미있었고,

자식 해체의 부모도 우스웠고,

스튜를 먹는 평론가도 실소했고,

고장 나가는 연인의 모습은 신비했고,

레슬링에 파괴되는 여자는 유쾌했고,

죽어라 일했던 남자의 말년은 희소했고,

인간실격의 남자는 폭소했다.

 

신묘하게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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