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귀 후지코의 충동/마리 유키코/366p/한스미디어/김은모

이야미스의 대표주자 마리 유키코

'이야미스'가 무엇이냐.

불쾌함, 싫음의 일본어 '이야'와 미스터리의 '미스'를 합친 신조어이다.

이 이야미스의 장르는 위의 설명처럼 책을 읽는 내내 불쾌함과 혐오를 유발하고 마지막 장까지, 어쩌면 다 읽은 뒤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만큼의 찝찝함을 남겨주는 게 특징이다.

 

그러한 장르의 최전선에 서있는데 마리 유키코. 이 책의 작가이다.

이렇게만 말해도 어떤 책들을 써왔는지 감이 올텐데, 내가 읽은 바로는 '여자 친구' '고충증' '골든 애플' '갱년기 소녀' 그리고 이번 리뷰의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이다. ―방금 작가의 번역작을 살펴보니 최근 나온 신간 '이사' 말고는 내가 읽은게 전부다.

 

작가의 모든 작품들이 '이야미스'였다. 물론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을 처음으로 읽어봤고(재미있었으니) 관심을 가지고 다른 작품들도 찾아서 읽어본 것인데, 역시나 한 작가의 작품이 전부가 재미있을 수는 없다. 

장르 자체도 호 불호가 강하게 갈리는데 작품의 재미도 몰입감도 들쭉 날쭉한게 다른 작품들은 대부분 실망한 걸로 기억한다.

아마 앞으로도 이번 신작을 포함해서 굳이 찾아서 구매하지는 않을것 같다. 

 

다만 이번 리뷰의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은 다르다.

무엇이 다르냐 하면, 당연히 작가의 작품들중 리뷰하기로 고른 만큼 만족스럽게 읽었다는 것과, 가격이다.

가격. 무려 4.500원 밖에 안한다. 단배 값밖에 안 한다. 담배보다 싸기도 하다.

몇 년 전에 우연찮게 발견해서 애용하는 것인데, 교보문고에 정가 인하라는 카테고리가 있고 잘 찾아본다면 엄청난 저가의, 읽어보면 왜 안 팔려서 이런 떨이로 내놓는가 싶은 책들이 상당히 있다. ―난 볼만한 건 거의 다 구매했다.―그리고 정가 인하는 매달 1일 새로 추가되는 거 같다.

 

그렇게 무려 4.500원의 지폐 한 장 값으로 하자 없는 멀쩡한 책 한 권을 구매하고 무려 재미까지 있으니 다 팔리기 전에 다른 책을 살 때라도 겸사겸사 속는 셈 치고 구매해보자.

5000원 내면 잔돈까지 남는다!

 나는 밀랍인형, 톱밥인형,
이라고 노래하는 것은 자명종

 

15명을 살해한 살인귀의 일대기

후지코의 부모는 빈말로라도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지만 후지코와 그녀의 여동생의 급식비를 주는 것도 꺼려하고 체육복 역시 같은 학교인 자매끼리 나누어 입는 지경이다.

동생과 수업이 겹치는 날에는 후지코는 체육복을 양보하고 선생님에게 혼날 수밖에 없다.

 

완전히 졸아버린 된장국에 밥을 죽처럼 말아먹는 생활을 하는 후지코는 학교에서 역시 좋은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이지메, 즉 왕따를 당하는데 정도가 심하다.

한창 2차 성장이 시작된 후지코는 여자아이들의 무리에서 배척당하고 남자아이들에게는 심한 괴롭힘과, K라는 아이의 집에 끌려가 K의 선배들에게 지독한 성적 학대까지 당하는 비참한 일상을 되풀이하게 된다.

 

그러는 어느 날 여동생으로 인해 조퇴한 후지코는 길가에서 K에게 발견되고 무작정 달려 도망친다. 선로를 넘었을 때쯤 뒤돌아본 후지코의 눈에 비친 광경은 선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가오는 열차에 겁먹고 다리가 굳은 K의 모습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만 보고 집까지 달려간 후지코를 반겨준 것은 가족들의 시체였다.

 

"그럼 결혼식은 유럽의 성에서 하고 싶어. 나, 프랑스 인형 같은 드레스를 입을 거야."

잔인한 일생.

후지코의 행적이 잔인한 것도 맞지만, 후지코만이 아닌 외적인 잔인함이 만연해있다.

부모의 무관심과 폭력, 친구들의 잔혹한 세력다툼, 왕따와 학대. 임신했음에도 책임감이 결여된 남자 친구와 시종일관 구박만 하는 시어머니.

좋은 직장과 남자를 사로잡기 위해 더욱 아름다워지기 위한 성형중독. 

 

후지코 자신이, 사회가, 주위가, 만들어낸 이 불행의 구덩이는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극복 가능한 게 아니었다. 

계속되는 불행과 잘못된 선택들이 부풀어올라 살인귀를 만들어냈지만, 사회가 나쁘다고 책임 전가하듯 따질 수는 없다. 그렇다고 후지코만이 나쁘다 콕 집어 말하기에는 찝찝하다. 불쾌한 것이다.

거기다 나중에가선 과연 어린 시절의 문제로 저지경까지 갈 수가 있는가. 

불행한 과거에 현재 자신의 모습의 책임까지 전가하는 듯한 느낌까지 들게 되는데, 바로잡기가 불가능하다.

 

이런 사회적 문제의 책을 읽으면 가끔 '당신도 나빴다' 같은 독자마저 끌어들여 비장한 척, 책임을 묻는데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부모의 복이 없었고, 진심으로 다가와주는 친구 복도 없었다. 외모도 타고나지 못했고, 남자 친구 선택은 어설프고 딸려온 시어머니의 복이 없었다.

모든 순간에 운도 복도 없었다.

 

읽으며 동정과 연민을 느끼기는 쉽겠지만, 후지코는 알아서 어둠 속에 다이빙할 타입 같다.

 

"그럼 날 행복하게 해줄래?"

마지막으로

제목도 표지도 무척 마음에 드는 한 권이었다.

눈길을 끄는 표지 선택과 제목은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파격적인 정가 인하된 가격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내가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잔혹한 고어적인 이야기가 취향에 맞는 독자라면 두 팔 벌려 반길 그런 한 권이다.

 

 

이야미스. 일부러 불쾌함을 맛보기 위해 책을 구매하는 독자들. 인정하자.

변태라고 불려도 손색없는 독자들이라는 것을.

그런 긍지 높은 변태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스포를 피하기 위해 쓰지는 않았지만 미스터리 요소도 충실하니 걱정 말자.

★★★★★★★☆☆☆

살인귀 후지코의 충동
국내도서
저자 : 마리 유키코 / 김은모역
출판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201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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