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읽은 작품은 아이자와 사코의 '영매 탐정 조즈카'입니다. 많은 상을 타며 입소문이 퍼지고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아온 작품. 시작합니다. (스포 주의)

 

영매 탐정 조즈카

  • 구매했다
  • 잡소리
  • 치밀한 설계 (스포 있음)
  • 그렇다면 단점은 (스포 있음)
  • 마무리

영매 탐정 조즈카

 

구매했다

영매 탐정 조즈카를 구매할 생각은 없었다.

이전에 야아츠지 유키토의 살인귀 시리즈를 구매한 터라 당장 읽을 책도 있었고, 지갑도 텅텅 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살인귀 시리즈를 빨리 읽어버렸고 원래 일정이 바뀌어 독서시간에 많은 여유가 생긴 탓에 다음에 읽을 책을 찾게 됐다.

 

영매 탐정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밸런스를 중시하는 독자로서 이번에는 미스터리나 스릴러보다는 다른 장르의 편하게 읽을 책을 구매하려 했다. 그렇게 장바구니를 쭉 내려보았지만 끌리는 게 없었고, 출판사 소와다리의 신간이 나왔나 확인했지만 역시나 신간 소식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여러 사이트를 돌아보며 작품의 평이나 리뷰들을 살펴보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이 바로 '영매 탐정 조즈카'였다. 수많은 상을 받고 국내의 많은 독자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는 리뷰를 써 올렸다. 평소 같으면 입소문이 자자한 광고의 푸시를 많은 작품에는 항상 하자가 있기에 웬만하면 나중에 읽어보려고 하지만 배송시간도 있고 스포 없는 리뷰를 읽는 동안 참을 수 없게 됐다.

 

그렇게 사게 된 영매 탐정의 리뷰다.

 

잡소리

언제나 그렇듯 작가와 표지 출판사의 이야기를 하자.

작가 아이자와 사코는 라이트노벨이나 라이트 문예를 써오던 작가라고 한다.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본 적은 없지만 제목은 들어본 작품이 있는 정도인데, 그중 '소설의 신'은─같은 작가인지는 몰랐다─장바구니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특이사항으로 '마술'을 배운 경력이 있는 작가다. 무척 특이한 이력인데, 영매 탐정만 봐도 마술에 대한 이야기가 리얼하게 적혀있는데 경력을 보고 납득했다.

 

저번에 리뷰했던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가 '제20회 미스터리 대상 '후보작''이었는데, 영매 탐정은 '제20회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이었다. 확실히 둘 다 읽어보니 후보작과 대상작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대상을 받을만한 작품이었다고 납득된다.

 

그리고 표지.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는 이번껀 좀 과하지 않나 생각했다. 이쁜 표지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나마 낫지만, 그런 나한테도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라면 일러스트를 싫어하는 독자에게는 표지만 봐도 거르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전부 읽은 뒤에는 이 책의 제목부터 표지까지 모든 게 작가의 설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치밀한 설계 (스포 있음)

상술했듯 영매 탐정은 제목과 표지부터 작가에 의한 설계가 들어가 있다.

 

그것은 본문의 내용들도 예외가 아니다. 작가의 작품들이 라이트 노벨, 라이트 문예였던 것처럼 영매술사는 표지부터 독자에게 어떤 예감을 하게 한다. 요즘 유행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와 흔히 말하는 미소녀가 있는 라이트 노벨 식 캐릭터성.

 

그 캐릭터성은 작품 내내 조즈카의 묘사와 대사들로 나타난다. 아름답고 위태로우며 정의감 강하고 주인공이 유일한 이해자다.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내성이 없는 독자는 분명 생각할 것이다. '표지부터 걸렀어야 했다.' '캐릭터 팔이' 좀 더 심하다면 이른바 '뽕빨 물'이라고─물론 그 자체가 나쁜 장르란 게 아니다.

 

그렇게 작가는 필사적으로 독자의 편견을 유발한다. 하지만 피어오르는 편견이 책을 덮게 만들지는 못한다. 그런 요소들을 빼더라도 이 작품의 사건과 추리, 결과들은 결코 가볍지 않고 촘촘하기 때문이다.

 

조즈카의 영매의 힘으로 범인을 알게 된 주인공이 논리적인 추리로 경찰을 납득시켜 사건을 해결하는 흐름은 결코 미소녀를 내세워 작품의 추리를 대충 만들지 않았다.

 

그렇게 연작 3개의 단편이 끝나고 대망의 마지막 장.

작가가 설계한 장치가 가장 효과적일 때, 독자들이 이 캐릭터들에 익숙해지고, 경계를 풀었을 때, 표지부터 설계되어 있는 작품의 폭탄이 쉼 없이 폭발한다.

 

영매 탐정의 주인공과 조즈카는 모든 게 거짓이었다. 진정한 살인귀는 주인공였고, 모든 진실을 파 해치는 탐정은 조즈카이며, 특수 설정 속 영매 따윈 현실에서 존재할리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귀신은 허상이고, 악몽은 꿈일 뿐이다. 

진실에서가 아닌 거짓에서 시작된, 멀리 돌고 돌아 유도된 끝에 도출된 해답들.

 

누군가 말했다. '하나의 사건에서 진실에 도달하는 해답이 반드시 하나라는 법은 없다.'라고. 정말 말 그대로였다. 작가는 마술을 피로할 때 의심 많은 관객의 눈을 돌리고, 현혹시키며 결국에는 놀라움을 선사하는 모든 기술들을 추리소설 속에 쏟아부었다. 

 

물론 이미 끝난 사건을 에필로그에서 분해하고 재구성하여 숨겨진 진실을 폭로하는 작품이 영매 탐정이 유일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즈카의 거짓말과 주인공의 거짓말.

중요한 것은 조즈카의 정체와 주인공의 정체.

 

나아가서 주인공의 정체와 거짓말보다는 앞선 사건들의 새로운 진실들 보다, 조즈카 그 자체가 독자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독자들이 밑 보던 흔한 라이트 노벨의 미소녀 캐릭터 성은 모조리 허상이며, 주인공이 보고 싶은 모습만 비친 꿈이다. 주인공이 굳게 믿게 만든 영매 능력은, 흔히들 말하는 영감은 조금도 없으며 모든 것이 심리 트릭과 설계였다.

 

살인귀인 주인공을 몰아넣기 위한 설계. 조즈카의 연기.

마지막 국면에서 돌변하는 조즈카의 성격. 가히 충격적이었다. 공정한가 아닌가─그런 것을 따질 경황 따위는 없다. 그저 당황하며 빠르게 빠르게 다음 장을 넘길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밝혀지는 진실 앞에 매도당해 무력해지는 주인공─독자들은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게 된다.

작가는 조즈카의 입을 통해서 추리하지 않는, 탐정의 입에서 도출된 정답을 믿어 의심하지 않고, 남아있는 단서들을, 찝찝함이 남는 진상에 눈을 돌린 행동을, 생각하기를 멈춘 나태한 독자들을 깔보며 비판했다─아니 비난했다.

 

이 작품은 흔해빠진 특수 설정 본격 미스터리 따위가 아니다. 독자의 무거워진 엉덩이를 채찍질하는 안티 미스터리였다.

 

그렇다면 단점은 (스포 있음)

후술 할 단점은 개인적인 문제일지도 모르며, 자세하게 정독하지 못한 내 오류일지도 모른다.

 

이 연작 단편의 충격적인 마지막 장은 확실히 상을 휩쓸만한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을 제외한 앞의 세 개의 단편이 재미가 없었다.

 

물론 결과적으로 속아버리긴 했지만 단편들 하나하나가 빈틈없는 추리로 진상이 파 해쳐진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재미가 없다.

 

사건의 기묘함이나 추리의 방법 복선들은 지루하기만 하고, 뽕빨 물의 미소녀 같기만 했던 조즈카의 연기. 그 작가의 설계에 당한 건 맞지만, 그 무미건조한 사건과 캐릭터성이 오히려 앞선 3개의 단편을 재미없게 만든 거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의도인 조즈카의 모습과 영매 능력과 함께 더해서 좀 더 다른 캐릭터성의 개성을 주었다면 다른 단편들을 읽을 때 즐거웠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한 편의 한 번씩이 아닌 여러 번 언급되는 주인공의 조즈카 외모 묘사와 칭찬. 내성 있는 나는 문제없이 읽거나, 읽으며 자동으로 필터링을 했지만, 이것 역시 작가의 의도를 위해 너무 자주, 온갖 오버를 해가며 나오니까 지겹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작가의 진짜 의도인 마지막 단편을 위해 차근차근 빌드업이 될 때, 나는 그 의도의 설계들로 인해서 재미를 잃고 설렁설렁 읽게 되어버렸다.

 

그로 인해 앞선 사건의 진상들이나 마지막 단편의 진짜 진상들을(조즈카나 주인공의 정체가 아닌 사건들) 조즈카가 쏟아내듯 말할 때 솔직히 앞에 나온 진상과 다른 진상이 있구나 하고 넘어갔지 디테일하게 남은 단서들이나 복선을 떠올리지 못했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나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 뭔가 추리를 하거나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읽는 경우는 많지 않다.

 

머리를 비우고 작가의 의도대로 속으며 탐정이 말하는 의문들이 마지막에 어떻게 밝혀지고 놀라운 트릭이 사용됐을까, 이게 이 복선이었구나, 하는 감탄형 독자이기에 더욱 그랬다.

 

추리를 하지는 않는다. 이야기와 흐름. 상황들 그리고 탐정들의 기상천외한 캐릭터들을 즐긴다.

 

직접 써보니 영매 탐정은 그냥 나랑 맞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의도로 인해서 내 취향의 즐길 요소가 감소당했다.

 

대망의 마지막 장면.

성격이 180도 바뀐 조즈카는 주인공을─독자를 매도하며 진짜 진상과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이로서 확신했는데, 나는 안티 미스터리와 맞지 않는 것 같다. 기괴한 작가 마야 유타카의 작품 '애꾸는 소녀'와 '날개 달린 어둠' 두 작품의 내용은 이제 기억도 안 나지만 읽으면서 무슨 소리들을 하는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결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안티 미스터리를 잘 알지 못했는데 영매 탐정도 안티 미스터리라고 한다. 

 

진상과는 별개로 책을 읽고 있는데 왜 나는 등장인물에게 사정없이 비난당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기본적으로 주인공에게 이입하며 읽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뜬금없이 비웃고 매도당하는 장면은 나를 얼빠지게 했다.

 

무엇보다 나는 범인 역시 어떤 신념이나 탐정에게 굴하지 않아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탐정과 범인의 1 대 1 대결은 달아오르지만 품위 없게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범인은 재미가 없다. 적어도 자살하는 기개라도 보여줬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범인은 그저 탐정의 리액션 제조기였다.

 

내가 읽고 싶었던 건 미 스터리지 안티 미스터리가 아니었다. 물론 영매 탐정도 추리는 확실하지만 작가의 노림수도 그렇고 앞의 추리들이 메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분 좋게 당했다기보다는 불쾌하게 속았다.

 

판매자 입장에서나 독자의 입장에서 안티 미스터리라고 소개를 하거나 장르를 나눈다면 스포일러를 당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고 진짜 스포일러일지도 모르지만. 원치 않는 장르를 고르게 되는 상황도 이렇게 생길 때가 있다.

 

그리고 특수 설정 미스터리. 요즘 무척 인기가 많아 다양한 특수 설정을 가진 미스터리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것마저 작가는 비꼬며 '사실 영매 따윈 없었다'라고 하며 작품 자체의 근본을 뒤흔들어 버렸다─이걸 간파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조즈카의 능력은 거의 특수 설정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너무나도 비범하다. 다양한 탐정들이 본 것만으로 여러 사실들을 깨닫는 '셜록 스캔'을 멋지게 해내지만, 조소를 하면서 자신은 보자마자 5초 만에 알았으며, 졸려서 8초나 걸렸다 어쩐다 할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연기면 연기 트릭이면 트릭, 사람을 심리로 가지고 놀며 모든 사건의 진상들을 보자마자 10초면 깨닫고, 마술을 배워 물건도 눈앞에서 훔치고, 돈도 많으며, 길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돌아볼 듯한 하프 혼혈의 미인. 늘여놓고 보면 특수 설정이 아니라고 하기도 부끄럽지 않은가.

 

천재와 비범을 넘어 초능력에 필적하는 능력을 가진 인물을 내세워서 특수 설정을 비꼬는 설계에 고개를 갸웃했다. 같은 조건으로 일반적은 추리소설을 풀어나갔다면 장점이고, 문제없이 납득했겠지만, 비꼬는 것이라면 경우가 다르다.

 

대체 이 정도의 특수 능력을 가진 인물을 만들어놓고 후속작은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후속작에 과연 탐정의 위기나 실수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저 준비된 답에 처음부터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진상을 떠벌리는 탐정 쩔어~같은 작품이 아니길 바란다.

 

마무리

주절주절 쓴 단점들은 대부분이 취향의 문제일 것이다.

순전히 취향.

분명 이 작품의 파급력과 반전들은 충격적이고 나 역시 반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하면 나 같은 문제가 없는 독자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한 권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시리즈를 더 읽을지는 미지수 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읽어볼 생각이다. 작품 하나로 판단하기에는 작가의 능력이 너무나도 출중하다고 느껴지니까 말이다.

 

내 취향을 감안하면

★★★★☆☆☆☆☆☆

 

취향에 맞다면

★★★★★★★★☆☆

 

영매 탐정과 겨룬 작품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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