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아사쿠라 아키나리/376p/블루홀6/문지원

처음 본 작가.

오랜만에 따끈따끈한 최신간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구매했다.

늘 말하지만 일러스트 풍의 표지는 마음을 울렸고, 배달 온 책은 몰랐지만 양장본이었다. 종이의 재질도 빳빳하니 아주 마음에 드는 때깔 고운 그런 한 권이라 택배를 뜯어보고는 정말 감격의 연속이었다.

 

이 책의 저자 '아사쿠라 아키나리'는 처음 접해보는 작가로 여러모로 도전에 가까운 선택이었는데, 책 날개에 적힌 프로필을 읽어 본 바로는 상당히 대단한 작가였다.

'복선의 마술사'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 그대로 '기대하는 신인!'의 느낌 그 자체였다.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가키우치 도모히로'의 학교에 연달아 학생 세명이 자살했다.

가키우치의 A반과 옆의 B반은 학생들끼리 무척 사이가 좋은 학급으로 매번 자발적인 모든 학생 참가로 파티를 여는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하며 다른 반의 부러움을 사고, 교사들에게는 흐뭇한 미소를 사는 그런 유쾌한 학급이다.

 

그런 학급에서 자살자가 세명. 충격받아 등교거부를 하는 학생도 등장하기 마련이다.

가키우치는 담임에게 같은 멘션에 살며 전부터 알던 사이라는 이유로 그 등교 거부 학생인 '시라세 미즈키'에게 찾아가 등교하라고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고등학생이 되어 사이가 멀어진 가키우치는 못마땅해하면서도 옆집인 미즈키의 집에 초인종을 누른다.

 

미즈키는 담임의 말을 전해준 가키우치를 불러 세우고, 연쇄 자살은 살인 사건이라고 호소하며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털어놓는다.

학교에 '사신'이 있다.

 

가장을 하는 레크리에이션 날 사신 복장을 한 누군가가 자신의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자신이 죽을 것인가 학급의 친구를 죽게 할 것인가. 

 

선택하지 못한 미즈키에게 사신은 다음에 죽을 사람을 예언했고, 예언대로 그 학생이 자살로 죽은 것이었다. 가키우치는 물론 믿지 못하고 미즈키와 헤어졌지만 집에 온 편지를 읽고 경험하면서 미즈키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깨닫는다.

 

편지의 내용은,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과 능력을 전달받은 이유, 주의사항 등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편지는 사실이었고, 가키우치의 학급에는 초능력을 행해 친구들을 자살로 몰아 죽이는 진짜 '사신'이 존재했다. 가키우치는 지목당했던 친구의 죽음을 막아달라는 미즈키의 부탁을 받고 자신의 초능력으로 범인 찾기를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보조를 맞추게 돼. 거기에 내 의사는, 얼마나 있었을까. 내 취미, 희망 이상과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어. 친구나 주변 환경에 맞추려고 모든 일을 아무 생각 없이 소거법으로 정하게 된 것 같아."

 

모든 급우가 정말로 사이좋은 최고의 반, 최고의 학생들.

시작부터 끝까지 거짓밖에 없는 말이다.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사람이 모이고 무리를 이뤄 조직이 생기게 되면 친한 사람이 생기고 다시 서로 모여 파벌이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다시 옆에 있는 상대를 시기하게 되고 질투하며 이간질시키는 암투가 발생하고, 조직 안에서도 역시 서열이 정해진다.

 

거기에 구성원의 스테이터스에 따라 소위 말하는 카스트. 계급이 나눠진다. 그렇게 해서 이들에게는 주어지는 특권이 존재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과 발언권이 바로 그것이다.

 

이 진리는 어른들, 사회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축소판. 학교의 교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좁혀진 만큼 촘촘하며, 은밀해진다.

 

거기다 덜 배우고 덜 성숙한 그들이 얻은 권력은 휘둘렀을 때의 맹위는 휘두른 그들도 감당하지 못할 힘이다.―사회 속 계급을 얕잡아 보는 게 아니다.―그들이 내는 커다란 소리는 질서가 되고, 룰이 되고, 선이 되고, 정의가 된다.


아무 관심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주도에 흘려나가고 높은 계급의 눈치를 살피는 사람은 알랑거리며 아부를 떨고 자처해서 들러리가 되어 권력에 편승한다.


그 보이지 않는 분위기에 모두가 따르게 되는 일련의 흐름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거부하면 욕을 먹고, 마지못해 따르면 할 생각없나며 따진다. 그 흐름에 얹혀가지 못하면 분위기 파악 못한다고 배척당한다. 그렇게 되면 모두에게 낙인찍혀 도태되고 만다.

 

오히려 그렇게 도태되는 편이 속 시원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자발적 고독'을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은 많지 않으며, 도태만 되고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분명 뒤따라오는 시선과 모종의 악행들에 노출되며 버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공은 어떤가.

이 책의 주인공 가키우치는 흔히 있는 주위와 거리를 두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이다. 추리를 담당하고 사건을 조사하고 화자를 맡았는데, 어쩐지 심리가 매우 불안정하다.

보통 이런 캐릭터는 웬만한 일에는 큰 동요를 하지 않거나 감추는데 힘쓰지만 가키우치는 그렇지 못하다.

 

고등학생이면서 읽는 내내 중학생 정도의 연약함이라고 할까. 거리를 두고 주위를 싫어하며 고독을 바라는 인물상이라기에는 강도가 부족하다. 

상대 행동에 따라 일희일비⋯ 가 아니라 일비. 또 일비. 일만큼 눈물도 많고 정서불안이 의심이 들만큼 다른 인물들에 비해 나약하고 뿌리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주위와 섞이지 못한 가키우치를 정신적 성장이 덜 된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해 의도된 작가의 묘사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석연치 않다.

어리숙하다.

 

그 느낌은 후반부에 가서 더욱 증폭되는데, 무려 가키우치는 고등학교 기간만 버티면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가면 인간 굴레에서 벗어나 그토록 염원하던 '혼자'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건 다른 인물이 바로 반문하는 실로 멍청하기까지 한, 독자라도 흐름에 따라 읽으면 저 대목을 읽은 순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반사적으로 물음표를 떠올릴 것이다.

 

"선생님은 우리 반이 정말 자랑스러워. 다들 이렇게 사이좋고 결속력 좋고 따돌림도 차별도 없는 학급은 정말로, 정말로 처음이야. 빈말이 아니란다. 더 이상 반 아이들 중 누군가가 사라지는 건 절대 보고 싶지 않아. 가키우치도 그렇지?"

 

난 내가 잘못 읽은 줄 알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지만 역시 같았다. 가키우치의 어처구니없는 멍청함은 작가가 마지막에 말하고 싶은 주제를 위한 포석이겠지만 오히려 어이가 없어졌다.

 

책의 주제는 조금만 읽어보면 후반에 말하고 싶은 바를 눈치챌 수 있는 게 아쉬웠지만, 이 방법으로 더욱 재미도, 흥미도, 혹시 있었을지도 모를 감동마저 사라지게 했다. 정말로 차라리 고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으로 나이를 낮췄다면 이 기묘한 간극이 조금은 줄었을지도 모르겠다.

 

결말의 가키우치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쭉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그 결말이 딱히 마음에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다들 사람에 섞여 살아가며 버티고 있다.'라고 썼지만, 하지만 '모두 함께'인 쪽이 나을 거라고 작가의 문장 근저에 그 생각이 깔려있다고 느꼈다. 

 

어찌 됐든 가키우치는 언 듯 처체술로 주위와 거리를 벌리고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스스로를 죽이며 살아왔다.

 

너무 나약했다.

좀 더 처세를 잘하고 숨겨 '자발적 고독'을 행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살아가거나, 아니면 각오를 가지고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다. 섞이지 못하면 순응하거나 제 발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녕.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가짜 친구들아."

 

결론은.

킬링타임+ 였다.

조금 기묘한 평이지만 놀라운 부분은 생각보다 컸고,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실망감이 들어서 어쩔 수 없다.

초반의 흥미진진했던 판타지적 설정과, 이야기의 흐름은 중간에 가서 단점들에 먹혀버렸다.

 

난잡한 묘사들과 등장인물들의 애매한 관계성, 결말에 가서 힘 빠지는 진부한 이야기 까지. 너무 아쉬운 소설로 남아버렸다.

마지막 능력자의 필요성?, 우악한 일차원적인 등장인물의 행동방식. 허술한 부분이 느껴진다. 

 

요즘 눈에 띄는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급해서 무시했다' 같은 복선의 묘사는 그만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저렇게 쓴다고 뭔가를 눈치채거나 하는 현명한 독자는 아니지만 어쩐지 기운 빠지게 만드는 문장들이다.

 

그래도 마지막 제목과 같은 '교실이 혼자가 되도록 만든다'는 범인의 말이 의미한 바를 가키우치와 함께 나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 하나로 평을 높이 하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덤으로 가키우치를 동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집에서의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좁은 집에 형제도 많고 그런 이유로 개인방도 없다. 학교에서 알바에서 집에서 혼자 있을 장소가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까지 이어지게 되면 성격에 따라서는, 작은 차이 일지도 모르지만 분명 어딘가 가키우치와 같이 혼자 있을 곳을 갈망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혐오스러운 그 환경은 나 자신이 겪어봐서 안다. 그 사실 만으로 동정한다. 분명 내 지금의 성격의 근간에는 그 환경이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확신한다. (물론. 당연히 아무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가 사이좋고 결속력 좋고 따돌림도 차별도 없는 이상적인 학급' 따위가 존재할리가 없다. 이 대사를 읽은 독자들은 바로 위화감을 깨닫고 이 책의 주제를 눈치챌 것이다.

학교의 수만큼 교실의 수만큼 왕따와 그에 준하는 무수한 피해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국적으로 몇 명인지 감도 안 잡힌다.

 

저 말대로라면 모두의 웃음에 눈이 멀어버린 선생이 보지 못한 누군가가 배척당하고, 따돌림도 차별도 당하는 그 희생 위에 성립한 결속력일 것이다.

 

한 명의 적을 만들어 괴롭히는 것만큼 결속력을 높여주는 것은 없다. 재미도 있고 죄책감도 소분해서 나눠가지면 스트레스도 풀린다. 어쩌면 분위기 못 읽는 녀석이 나쁘다며 합리화하는 끝에 스스로를 정의로 착각할지도 모른다.

 

모두가 사이좋다. 모두 웃고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 상황이 오면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 '모두' 속에서, 이상적인 형태에서, 누군가는 분명 피해를 입고 있으며, 그게 자신이 아니라면 가해자가 누구일지를. 

 

모두가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교실이라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개체가 군체를 이루는 것만큼 징그러운 것도 없다. 

 

스스로 돌이켜 보고, 상대에게 물어봐도 일률적인 파릇한 빛나는 청춘 담의 이면에는 분명, 누구도 알지만 말하지 않는 무의식에 감춘 리얼한 '진짜'청춘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한 것을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다.

 

★★★★★★★☆☆☆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
국내도서
저자 : / 문지원역
출판 : 블루홀식스(블루홀6) 2020.11.30
상세보기

 

 ps. 마지막 옮긴이의 말에 가키우치를 '중 2병 환자 같은 면'이라고 하는데, 해설이 아닌 역자의 사견이 들어간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거기다 캐릭터의 이미지를 고착시키는 말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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