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이 나온 걸 뒤늦게 알고 급하게 구입해서 읽은 대 문호 대 거장 아야츠지 유키토의 살인귀 시리즈. 그중 1권인 각성 편입니다.

 

살인귀 1 ─ 각성 편

  • 아야츠지의 신간
  • 표지와 출판사
  • 살인귀 (스포 있음)
  • 마무리

살인귀 각성편

 

아야츠지의 신간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이 이렇게 갑자기 신간으로 출판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으로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안구 기담'으로 2014년에 출판됐으니, 무려 7년 만의 따끈따끈한 신간인 것이다.

 

아야츠지 유키토 라 함은.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명실공히 미스터리계의 대문호이며 거장. 어떤 거창한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이미 죽고 없어진 대 선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60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작가이다. 

 

아야츠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본격 미스터리의 번영은 이룩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야츠지의 대표작들로는 우선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십각관의 살인'을 시작으로 하는 '관 시리즈'.─국내의 손선영이라는 작가'십자관의 살인'이라는 제목으로 오마주 했다. 결과는───.

 

다음으로는 '속삭임 시리즈'. 아쉽게도 국내에는 첫 번째 타이틀인 '진홍빛 속삭임' 밖에 번역이 안되어있다. 

 

그리고 'Another' 어나더 시리즈가 있다. 어나더는 아야츠지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유일하게 애니메이션과 영화 만화 책화 등. 미디어 믹스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특정 사람들은 아야츠지를 모르는 사람들도 '어나더'는 알지도 모른다. 이 시리즈는 후속작인 '어나더 S'까지 번역됐고, 현재 다음 권인 '어나더 2001'이 미번역됐다. 한스미디어는 빠르게 출판해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번 작품인 살인귀 시리즈.

살인귀 시리즈의 첫 소개는 일본에서 90년에 이루어졌다. 국내에 소개가 엄청 늦은 편인데, 미스터리 출판에서는 자주 있는 편이니 그렇게 특이한 케이스는 아니다. 

 

각성 편과 역습 편, 두 권으로 나눠진 시리즈는 이미 개정판도 나온 걸 보면 후속권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표지와 출판사

살인귀는 홍익출판미디어그룹이라는 출판사에서 출판됐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출판사다.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출판사 검색을 해봐도 소설 부분은 살인귀 시리즈 두 권과 모르는 소설책 한 권이 전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생소한 출판사가 뽑아낸 표지를 보라!

 

캐릭터 일러스트 같고, 만화 같고 애니메이션 같으면 어떤가. 이렇게 잘 어울리고 이쁜걸. 장담하건대 분명 이 표지만으로 내용물이 궁금하여 온라인에서 클릭하는 사람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집어 보는 사람도 분명 많을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표지는 이래야 하고, 일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바로 이전에 리뷰한 '잔혹 크래프트 사(死)'를 보자. 규모의 차이는 모르지만 둘 다 생소한 출판사인데 엄청난 차이지 않은가. 저렇게 역겹게 만들기도 힘들 것이다.(살인귀는 일본의 표지를 그대로 썼을지도 모르지만.)

 

아야츠지의 작품을 자주 출판하던 한스미디어의 표지 선정도 무척 괜찮았지만, 초창기의 관 시리즈 표지는 너무 직관적이고 딱딱했다─물론 2005년 출판이니 어쩔 수 없지만. 

관 시리즈

 

요즘은 어쭙잖게 현대미술 같은 기묘한 도형 같은 그림을 박아 넣는 것보다, 차라리 무관계해 보여도 일러스트 같은 이쁜 그림으로 표지를 장식하는 게 훨씬 잘 먹힐 것이라고 일개 독자인 한 명은 생각한다.

 

앞으로 홍익출판미디어그룹의 소설 신간들을 종종 확인해 봐야겠다. 분명 대성할 출판사다.

 

살인귀 (스포 있음)

이 작품이 일본에 처음 소개된 게 1990년이라는 것을 모르고 읽었다.

 

우선은 우매한 독자인 나는 후기에서 말하는 이 책의 복선을 하나도 눈치 채지 못했다. 평소의 '아 이게 그거였어?'가 아닌 정말 이상함은 있지만 뭔가 복선의 기묘함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끝까지 읽어나가 버렸다.

 

끝까지 읽은 뒤 판단해보니 미스터리의 요소를 뺀 이 책의 다른 장르인 슬래셔 무비 같은 부분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스토리는 무척 직선적이다. 홀로 떨어진 등장인물들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인귀에게 잔인하게 각개격파를 당하게 되고 마지막에 남는 주인공. 

 

이런 직선적인 스토리를 읽을 때 나는 한걸음 떨어져서 구경하듯 이입을 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읽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이야기 속의 긴박함과 숨 막히는 추격전의 생생함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숨이차게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도망치며 넘어지고, 무릎이 까지고, 나무에 피부를 긁히며, 땀과 비에 범벅이 되어 살인귀에게 좇기는. 그런 상황은 여러 매체에서─다른 소설에서도 차고 넘치게 봐왔기 때문에 읽다 보면 뇌에서 비슷한 부분을 자동으로 첨삭해버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런 이유로, ─어쩐지 변명하는 것 같지만, 무언가의 복선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반전을 확인하고서 복선을 모르고 모순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 읽었을 때는 반전의 쾌감보다는 '어? 그런 건가?' 하는 개운치 못한 기분이었다. 딱히 독자에게 도전하는 추리 소설은 아니지만 페어 하지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작가에게 불합리한 불평이 드물게 튀어나왔다.

소설 어나더

 

폭풍이 부는 산속. 살인귀가 배회하는 산장. 탈출은 하지만 클로즈드 서클의 형식이다.

 

쌍둥이들의 모임에서 형과 언니그룹과 동생그룹으로 나누어 합숙하는 것까지는 현시에서도 있으니 이해한다. 그런데, 살인귀의 영혼? 이 등장인물 중 한 명에게 들러붙어 학살을 하고 주인공 쌍둥이는 거의 텔레파시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 비정상을.

비현실을.

초현실을, 어떻게 납득해야 좋을까. 나 자신이 장르를 구별함에 엄격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게 맞아?' 같은 의문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다.─올바르게 읽지 못한 내 착각일지도 모르고.

 

애초에 아야츠지의 다른 작품들에서 이런 정도의 비현실은 몇 번 등장했던 거 같은데, 읽어 본 지 오래돼서 헷갈린다.

 

미스터리를 뺀 스릴러로서는 어떤가.

 

아주 만족스럽다. 나로서는 좀 더 잔인하고 고어했으면 좋겠지만, 이건 내 기대치의 문제니 넘어가고. 살인귀가 등장인물들을 하나 둘 찢어나가는 통쾌함은 최근에는 볼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맛본 소설에서의 잔학함. 요즘에는 이 정도의 수위 높은 소설들을 찾을 수 없는 게 안타까운 나는 이 내용만으로 높은 평을 해주고 싶다. '슬래셔 무비'가 아닌 '슬래셔 노블'의 장르가 좀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진홍빛 속삭임

 

기본적으로 아야츠지 작품의 기본 패시브로 물 흐르는 필력 덕분에 읽는 게 힘들 않고 쭉쭉 읽힌다.

 

마무리

번외로 후기에 나온 아야츠지의 말들은 무척이나 공감된다.

어느 나라건 미디어나 창작에 규제를 거는 일이 있는데 일본 역시 과거에 '호러 사냥'이라는 기묘한 풍조가 있었다고 한다. 그 사회 풍조에 반발하며 이 책을 썼다는 말도 있는데, 그 탄생 배경을 알게 되니 이 책의 잔인함에는 납득이 간다.

 

창작물에 윤리와 도덕을 주입하고 규제를 시작하면 재미는 떨어질 것이고, 어처구니없는 동화 속 이야기만이 난무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매한 나는 가상의 창작물들은 무법지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법지대에서 탄생하는 기상천외한 작품들을 읽어 가고 싶다. 

 

작품을 보고 멍청한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는 그 범죄자 개인의 탓이지 존경하는 작가들과 작품의 탓이 아니다. 

 

★★★★★★★☆☆☆

 

비슷한 느낌의 책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 미쓰다 신조

남의 일 / 히라야마 유메아키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 우타노 쇼고

십자관의 살인 / 손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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