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리뷰해드릴 작품은 10년 전인 2011년에 한국 작가가 지은 '잔혹 크래프트 사(死)'입니다. 저번 달에 정가 인하가 되어 810원에 판매되고 있는 오랜만의 한국 작가의 책 갑니다.
잔혹 크래프트 사 (死)
- 정가 인하
- 출판사와 표지
- 작가와
- 작품
정가 인하
상술했듯이 이 작품은 저번 달 정가 인하 목록에 새로 이름을 올린 책인데, 매달 1일 새로 추가된 작품이 있나 확인해보는 빈곤한 독자로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다만 국내 작가의 작품이라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지만─이유는 국내 작가의 작품을 리뷰할 때마다 언급한다─81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기에 원래 사려던 책을 구매하는 김에 겸사겸사 덤으로 구매를 했다.
재미있으면 이득, 재미없어봐야 810원.
책 한 권으로 불을 지피던 휴지로 쓰던 81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이득─이라고 생각했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완벽한 패착이었다. 한 권과 810원 만의 저울질이 아니었으며 내가 재미없는 책 한 권을 읽는 고행과 시간을 상정하지 못한 값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정가 인하가 정해지는지는 모르지만 상상해보건대, 재미는 중요하지 않는 것 같다. 재미를 떠나서 팔리지 않는 창고에 쌓인 재고들을 빠르게 팔아치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무려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가 정가 인하로 팔리는 것도 목격했으며─당시에 구매하지 못한 게 한이다─문호까지 안 가더라도 당장에 읽고서 팬이 된 니시자와 야쓰히코의 닷쿠&다카치 시리즈 세 권 마저도, 4500원. 담배 한 값의 가격으로 정가 인하된것을 구매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810원의 가격은 정가인하 중에서도 이례적일지도 모르겠다. 악성 재고의 처리. 그 한 권을 내가 떠안게 됐다.
출판사와 표지
이 책을 통해서 화약고라고 하는 출판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출판사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사실까지 하나 더 알게 되었는데, 출판사가 출간하는 작품들을 쭉 봐보면 자신의 취향과 맞는지 안 맞는지 얼추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당연해서 상정하지 못한 사실인 것이다. 출판사에도 주력으로 내놓는 작품들의 장르가 각각 있다는 사실.
그래서 이 작품을 다 읽고 출판사의 출간작들을 쭉 살펴봤다.
'빵 터지는 연애 멘트', '미니홈피 블로그 집에서 책으로 만들기', '빵 터지는 바람둥이 영어', '빵 터지는 바람둥이 멘트' 등─ 어질어질한 제목들을 미리 봤어야 했는데,─밑 보는 게 아니다. 내 취향을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알 수 없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버려서 당황했을 뿐이다.
이렇게 책을 고르는 데에 있어서 새로운 판단법을 하나 익혔다.
그리고 가장 역겨운 것은 표지다.
책을 구매할 때 표지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이번엔 810원이라는 가격에 눈이 가려져 이딴 표지의 책을 구매했다. 작품의 재미와는 상관없이 작가는 이딴 표지를 가져다 붙인 출판사 혹은 디자이너를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어야 한다.
아무리 10년 전의 작품이라지만 너무하지 않은가. 이 책이 810원에 팔리는 데는 표지가 큰 몫을 한 것이다. 표지만이라도 이뻤다면 악성 재고는 더욱 줄었을 것이고, 정가 인하로 전락했다 하더라도 평균적인 4500원에 팔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표지의 배경 색깔, 그림(초등학생도 이보단 잘 그린다.), 제목의 폰트와 색 까지. 뒷 표지까지 보면 출판사의 성의는 한조각도 안 보인다.
작가와
바로 저번 글에서도 작가들의 특이경력에 대해 말했는데, 책날개에 써진 작가 소개를 보면, 이 작가도 11년도 당시 '뉴욕의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필름 앤 비디오를 전공'한다고 한다. 무슨 대학인지, 뭘 하는 전공인지 모르지만 왠지 대단해 보인다.
다만 이 작가의 문제점은 경력 밑에 써진 작가의 말들이다.
"하드고어 스릴러에 매력을 느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영화 <쏘우>를 보면서 이보단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이지만, 공포의 극단까지 밀고 나갔다.
세상 고민과 번민을 잊고 글을 썼다.
창밖에 검은 눈이 내린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공모전에 당선된 박하루 작가의 '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의 리뷰에서 언급했던 신인 작가 특유의 살짝 특이한 척과 센티한 척. 아닌듯하면서 허세를 부리고 아닌척하면서 자신의 특이성을 살짝 내비치는 느낌.─매우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다─이렇게 느끼는 게 얄팍한 독자의 질투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이 작가 소개에서도 같은 것을 느꼈다.
쓰게 된 계기는 그럴 수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쓰게 되니까. 하지만 고작 이 정도 작품을 써놓고 영화 <쏘우>에 비비는 담력은 납득할 수 없다. 오만인가 만용인가. 이 작품이 재미있는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에서 저 글을 맨 처음 읽었을 때 이미 눈을 찌푸렸다.
신인이던 문호던 다른 작품에 비교하며 이보단 잘 쓰겠다고 무례한 말을 자신의 작품에 적어 놓을 수 있다니, 작가의 수준이 보인다. 잘 썼다면 또 모르지만 악성 재고의 정가 인하 810원 떨이로 팔리게 된 꼴을 보며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마지막 '창밖의 검은 눈' 운운은 작가의 감성 한 스푼인가, 저런 말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작품
본론으로 넘어가서 이 작품은 예부터 차고 넘치는 스토리다.
부자들이 사람을 잡아다가 기상천외한 게임을 시키고 탈락자는 신체가 폭발하고 잘리고 끔찍하게 죽는 꼴을 보며 돈을 걸고 내기를 하며 즐기는 흔해 빠진 내용이다.
그러면서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조금씩 풀려나고 마지막에 반전이 터지는, 그런 흔해 빠진 내용이다. 흔해 빠진 이 내용을 가지고 작가는 실패했다. 흔해빠졋으면 재미라도 있어야 하지만 재미는 한 스푼도 없다.
수많은 단점 중 몇 가지만 열거해 보자.
등장인물이 많다. 많은데 금방금방 갈아치워 져서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이건 언제나 그렇듯 나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참가자들의 절망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빚을 지거나 벼랑 끝에 인생들인데 딱히 뭔가 절박함도 없다. 그저 누구는 빚 4억을 지고 있다. 누구는 병원비로 빚이 2억이다. 이런 식으로 나열할 뿐.
이 게임의 환경도 폐건물이거나 숲이거나 여기저기 옮겨 다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환경의 필요성이 안 느껴진다. 읽다 보면 숲이던 폐건물이던 바닷속이던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임에서 환경의 중요성이나 환경을 이용해 상황을 타개하는 그런 장면은 없다. 기대도 안 했지만.
매치가 안된다.
살인게임 자체가 이미 판타지 같지만 엄연히 현대인의 어른들이 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살기가 느껴진다. 더 강한 살기를 내뿜어 참가자들의 반항을 종식시킨다. 같은 어처구니없는 묘사가 나올 때마다 책을 덮고 싶었다.
예를 들어 현대가 배경인 스릴러 영화에서 누구나가 아는 배우 이병헌이나 최민식이 진지한 연기를 하며, 살기를 뿜어서 어쩌고 저쩌고 하면 헛웃음 밖에 안 나올 것이다. 그런 괴리감이 너무 강하다.
뭐가 메인인지 모른다. 살인게임이 메인인지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메인인지, 알 수가 없다. 가장 문제점인데, 살인게임의 이야기를 쓸 거면 마지막 장까지 서스펜스가 느껴지는 살인게임을 쓰던가 할 것이지, 점점 게임의 스토리는 뒷전이고 게임 진행되는 와중에 주인공과 친구들의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도 저도 아닌 중구난방으로 이야기가 튀어버린다. 쓰고 싶은 건 많아서 떠오르는 것을 죄다 한 권에 쑤셔 넣다 보니 이런 불쏘시개가 탄생한 것이다.
대사도 엄청나게 구리다. 읽다 보면 허세 가득한 등장인물들의 대사에 몸서리치게 되며 작가가 대학생이라고 했는데, 중년 남성인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중년이 대학을 갈 수도 있긴 하지만.
개연성도 없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살인게임이 들킬 것 같으면 일반인은 모르는 특수 약품으로 살인의 흔적을 지우고, 경찰인 친구는 별 특별한 것도 없는 '예전에 신세진 사람이니까 만납시다'라는 말에 얼씨구나 만나러 가며, 악인의 동생은 통수를 치고 갑자기 네크로필리아가 등장하며,
혼자 멋대로 진행되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과거사, 짝사랑, 주인공이 위기일 때 뜬금없이 등장해 오토바이를 빌려주고 바로 증발하는 과거(언급도 없었던)의 지인인 '이와자와 파'.
그리고 주인공의 인생이 몰카였다는 대망의 반전까지.
후반으로 갈수록 쓰레기 같았다.
끝으로
이 작품으로 더 긴말을 하고 싶지 않다.
주인공의 스토리를 치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살인게임으로 가거나, 살인게임 속 참가자 한 명이 주인공인 편이 단점의 절반은 없앨 수 있었을 것이다.
이로서 또다시 실패한 한국 작품의 리스트가 추가됐다. 이번엔 내 자업자득인 감이 강하지만, 정말 다시는 이딴 작품을 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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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국내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