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391p/박하루/엘릭시르

작가 '박하루'와 출판사 '엘릭시르'.

작가 '박하루'는 신인이라고 한다.
이 엘릭시르 미스터리 공모전이 당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어떤 치열한 경쟁을 하며 이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책의 내용이야 어쨌든, 신인이 대상을 따낸 건 무척이나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족이지만 책 날개에 적힌 작가들의 프로필을 보면, 그것도 작가가 직접 쓴 것들은 묘하게 느낌이 비슷하다. 단답 형식에 자신의 특이한 부분을 아닌 척, 조금 내비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이것도 '나생문'리뷰에서 썼던 작가들의 이상성과 비슷한가?)

그런 그가쓴 책인데, 표지의 기묘한 그림은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글자만 크게 박아 넣은 표지의 '일반판'은 더 싫어하니 차라리 이쪽이 낫다. 몇 번을 강조해도 표지는 중요하니 항상 말할 것이다. 다만 그 대신 표지를 이루는 질감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책을 들고 오래 읽고 있어도 미끄러지지 않아서 나중에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모든 것들의 시작인 출판사 '엘릭시르'는 개인적으로 호감가는 출판사다. 그들이 출판하는 책들의 초이스나, 책의 제본, 종이의 재질, 양장본의 튼튼함, 표지와 책 전체의 디자인 등 책 한 권, 한 권이 만족스러운 퀄리티로 나온다. 게다가 이 출판사는 사장되어 가는 국내 미스터리 장르에 계속해서 활력을 넣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수상한 '엘릭시르 미스터리 공모전'을 여는것 부터, '미스테리아'라는 미스터리 잡지를 꾸준히 만들어주는, 미스터리 장르의 팬이라면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출판사의 행보다.
이런 출판사가 번창하길 바라고있다.

책 날개 작가의 말.

제1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

이 책 판매에 관여한 모든 인간들은 양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대상 수상인 것부터 시작해서, 책의 끝에 대상작에 대한 코멘트마저 한 글자도 없다. 내놓은 자식도 아니고 취급부터 좋지 않다.
국내 미스터리를 알리겠다는 좋은 취지로 이 수상작을 1년간 50% 할인가로 팔았다고 하고, (정상가 13.800원을 6.500으로) 나 역시 당시에 싼 맛에 기대도 조금 하며 다른 책을 사는 김에 겸사겸사 샀었다. 그런 할인 폭을 가지고 팔기 시작한 책은 2년이 훌쩍 넘은 지금, 아직도 6.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재고가 남아돌고 있다는 말인가.

4개월 전, 일반판으로 이 책이 새로 출간된 걸 보면(정가 13.800) 출판사도 돈놀이를 하는 입장에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는 않을 테니, 믿기지 않지만 어느 정도 수익은 있었던 걸까.―근데 버젓이 특별 보급가로 6.500원짜리의 같은 책이 팔리는 상황에서 e북도 아니고 일반판을 다시 만들어 파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어쩌면 특별 보급가로 1년 동안 판매한 뒤에 정가 일반판을 새로 찍어내기로 작가와의 계약이 따로 있었을지도 모른다.(일반판은 e북으로 있다!)

엘릭시르의 매거진 '미스테리아' 표지도 이쁘다.

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

그런 이 책의 출판사 서평은 어이가 없는데.

『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는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 판타지적인 요소가 결합된 작품이지만 세계관 안에서의 규칙을 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미스터리가 갖고 있는 논리성을 해치지 않도록 장치한 점,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에 잘 맞게 구성한 캐릭터, 그리고 각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게 풀어낸 스토리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대상을 수상했다.-교보문고

전부가 새빨간 거짓말 투성이다.

때때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일본 서브컬처에 익숙해져 있다는 작가의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들을 ‘모방’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책을 읽다 보면 알 수 있다. 작품의 외양은 어디선가 본 듯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작가의 독창적인 설정과 그 설정을 지탱하고 있는 캐릭터들이다.-교보문고

설마 하니 심사위원들이라는 사람들이 구시대 적인 사상으로 외구 문화는 무조건 거부한 노인같이 딱딱한 소설만을 읽어왔거나, 서브컬처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 주인공의 과장된 행동들, 초능력의 차용, 판타지적인 전개 등. 마치 지금 시대에서는 이미 닳고 닳아 모든 내용이 어딘가 본 것만 같아 망해버린 작품을 1900년대의 사람이 보고 참신함과 독창성에 놀라는, 그런 게아닌 이상 이 책으로 독창성을 논할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하는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과장스럽다. 계속해서 시끄럽고 에너지만 넘치고 읽는 내내 떠든다. 독자를 버리고 혼자 1인극을 하는 거라 생각될 만큼. 이 '라이트 노벨'스러운 캐릭터성과 분위기들은 읽어가면 갈수록 눈살 찌푸리게 만들 뿐이다. '라이트 노벨 같다'라는 평가를 나쁜 쪽으로 써야 할 만큼.
주인공의 말들과 조수와 하는 농담 따먹기, 이게 정말 읽으면서 짜증을 유발한다. 독자가 알아듣는 패러디도 알지 못하는 패러디도 하나같이 어이없기만 하다. 나름 휴식 파트라고 한 번씩 뱉는 만담이나 딴죽걸기들이 흐름도 타이밍도 전부 지들끼리 즐겁고 독자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바나나 부분은 역겨웠다.)

캐릭터 메이킹 '다크나이트' 포스터의 조커

그리고 읽으면서 가장 안쓰럽다고 느낀 부분이 있다.

나는 쓸쓸한 자의 말 상대, 억울한 자의 변호인, 비틀린 자의 동지,
이 세상의 모든 제정신이거나 제정신 아닌 자의 멘토라네.

이 대사는 '꼭두각시'라는 미스터리한 캐릭터가 멋지게 등장하면서 하는 대사다.
'꼭두각시'라는 이름부터 느꼈지만 이 캐릭터는 영화 '다크 나이트'의 '조커'같은,(비슷하게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같은.) 혼란을 부추기는 대변자를 이미지 메이킹한 거라고 확신하는데, 읽는 내가 부끄러워 몸부림쳤다.
멋진 등장에 그럴듯한 대사를 넣었다는 건 알겠지만, 단어의 선택과 문장을 보라.
'말 상대'가 뭐고, '제정신이거나 제정신 아닌 자'가 뭔가.
분명하게 느끼는데,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상황과 대사들의 느낌은 확실하게 알 거 같지만, 동의어와 유의어, 대의어들을 배치시켜서 멋지게 말하고 싶었겠지만, 하지만 이게 뭐란 말인가. 작가의 어휘력이 부족하다고 강하게 느꼈다.
'오글'과 '간지'는 한 끗 차이다. 흔히들 말하는 오글거리는 대사를 무대와 상황과 분위기와 캐릭터를 사용해서 간지로 승화시키는 게 작가의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더욱 초라한 중2병이다. (중2병이라는 말을 정말 쓰기 싫어하지만.)

'브이 포 벤덴타'에서 '브이'의 등장 장면을 보면 알것이다. 


작가는 라이트 노벨을 어느 정도 표방했으니 이런 쪽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니 딱 말하자면. 이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전부터 조금씩 주가를 올리고 있는 '라이트 노벨'과 '문학'의 경계 어딘가를 절충해서 만들어진 장르 '라이트 문예'. ―'라이트 문예'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며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도 않고, 엄격한 독자들이 말하는 '작품성'을 어느 정도 챙겨주는 아주 멋진 장르 소설이다.―이 작가가 라이트 문예를 고려해봤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구조적으로는 이쪽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그 장르의 다른 작품에도 비비지 못하겠지만.


그런 여러 가지 선택을 잘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의 이것저것 요소들을 뭉개 넣어 버린 작가의 욕심이 이런 혼란스러운 책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

순결한 탐정 김재건과 춤추는 꼭두각시
국내도서
저자 : 박하루
출판 : 엘릭시르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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