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암으로 별세하신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의 데뷔작인 '장난감 수리공' 리뷰입니다. 야스미씨는 국내에서 이른바 메르헨 죽이기 시리즈. 엘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팅커벨 죽이기로 많은 인기를 얻던 작가로 유명하죠. 시작합니다.
장난감 수리공
-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
- 데뷔작
-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 마무리
작가 고바야시 야스미
상술했듯 야스미씨는 안타깝게도 20년에 별세했다. 그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충동적으로 구매한 게 이번의 '장난감 수리공'이다.
야스미씨의 작품을 읽은 것은 데뷔작 장난감 수리공을 이번에 읽은 게 처음이지만 그의 이름과 유명했던 메르헨 죽이기 시리즈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동화 속 인물의 이름과 '죽이기'라는 직관적인 제목, 그리고 눈에 띄는 표지까지.
듣기로는 무척 잔혹한 내용이라고 했다. 모든 게 나의 취향과 맞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읽어보지는 못했다. 구매의 기회는 언제나 있었고 장바구니에도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함께 담겨있었지만─끝내 구매하지는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작가의 작품이 출간됐다는 소식은 종종 듣고 있었고 작품의 평가도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친구가 메르헨 시리즈─혹은 죽이기 시리즈를 전부 구매해 읽었고 재미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기도 했다.
아마 평소와 같은 느낌으로 '아직 읽을 순서가 오지 않은 거겠지─.'라고, 생각한다. 몇 번이나 말했지만 장바구니는 미어터지고 돈과 시간은 한정적이다. 취향에 맞아 보이는 이 작가의 책들이지만 아직은 차례가 돌지 않은 것뿐이다. 그리고 그 차례가, 아니면 기회가 이번에 살짝 새치기를 하듯이 돌아온 것이다.
잘 안다는 듯이 약 1년 전 20년도에 별세했다고 적어놨지만, 말했듯이 그 소식은 약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전해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 타인인, 바다 건너, 아무런 접전이 없는 누군가의 부고를 듣고 딱히 센티멘털한 기분이 든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그의 작품을 읽을 차례와 기회가 새치기하듯 눈앞에 등장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밖에서 만난 내 얄팍한 인간관계보다, 오히려 얼굴도 모르는 작가의 책 한 권을 읽은 것이 더욱 밀도 있는 관계일 수도 있다고, 멋져 보이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데뷔작을 한 권 읽은 것으로 고바야시 야스미라는 작가가 어떤 작품들을 어떤 느낌으로 썼고 다른 작품들이 어떤 분위기일지 짐작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작품을 읽어보면 역시나 언제나 그렇듯 틀릴지도 모르지만─.
데뷔작
[장난감 수리공]은 표지 제목인 데뷔작 단편 '장난감 수리공'과 중편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가 수록된 작품이다.
자극적인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지만 잔혹한 '소설'은 점점 부족해서 시대를 역행해가며 찾아 읽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자극에 익숙해진 지금으로서는 95년에 나온 이 작품의 잔인함은 딱히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일까.
아마도 화자가 말하는 담담한 고백과 그 고백 속 아이의 상황과 행동들이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처한 상황은 부모의 학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테고, 동생이 죽고 자신의 얼굴이 걸레짝이 되어가도 무엇이든 수리해 준다는 장난감 수리공을 필사적으로 찾아간다.
하지만 그 이유 역시 순수하게 동생을 구하고 싶은 게 아니다. 동생을 아끼는 부모가, 동생을 망가뜨린 자신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두렵기 때문이다.
동생의 보호가 아닌 자신의 보신을 위해.
아이가 하는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 흐름에는 잔잔한 잔혹함이 짙게 깔려있다. 대화 사이사이에 껴있는 자신과 동생이 생물로서 무너져 가고 있는 묘사와, 장난감 수리공이 동생을 고치기 위해 갓난아기를 해체하고 분해하고 늘어놓은 뒤 다른 생물, 무생물과 함께 '제조립'을 해서 되살리는 만행들은 이 작품의 백미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말하는 장면.
오츠 이치의 데뷔작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와 닮은 오싹함이 있다. (이 책의 코멘트를 해준 작가 중 오츠 이치가 있는데 '나의 인생을 바꾼 호러소설'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얼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약 44페이지의 짧은 단편이지만 읽는 내내 독자에게 고백을 읊어주든 담담히 말하는 가히 충격적인 전개는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마지막의 작은 반전 역시 큰 역할을 해주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
그리고 데뷔작보다 두꺼운 중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남자'이다.
이 작품은 내 반푼짜리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단 이야기적으로 데고나의 약간 엇나간 말들과 묘한 매력은 알겠다. 그 데고나의 빠져 말 그대로 찰나의 인생만 살게 된 두 남자들의 심리와 이상성은 납득하지 못했다.
애초에 데고나의 죽은 이유도 모르겠다. 어째서 자살? 사고?를 당해서 죽어있는 건지, 그 뒤로 나오는 남자들의 명백히 정신이상자의 행동들. 그리고 나오는 여러 가지 양자역학이나 엔트로피 같은 이름만 들어본 이론들.
독자는 따라가지 못하는 흐름 속에서 이야기는 점점 미쳐간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해를 못해도 재미있다. 가끔 그런 작품들이 있다. 이야기의 골자나 구조적으로나 설정적으로 이해를 못했지만 그저 이야기의 흐름과 끌어가는 힘 만으로 독자를 빠져들게 하고 재미까지 있는 작품. 이 작품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여러 이론을 말하며 사이비 과학 같은 대화를 하는─장광설 같은 대화들은 나는 좋아하기 때문에 취향에 맞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나오는 이론과 설정에 모순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완벽하게 이해한 독자가 있을지도 의심스럽지만 분명한 건 불가해한 이야기라도 sf적인 코즈믹 적인 공포가 섞여있다.(제시한 장르가 맞는지는 모르겠다.)
그 알 수 없는 공포는 확실하게 읽는 내내 독자를 좀먹는다.
마무리
틀릴지도 모르지만 이 한 권으로 고바야시 야스미의 스타일을 엿봤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잔혹성과, 미스터리, 알 수 없는 어떤 커다란 호러와 공포.
분명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야야기 들을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의 편린을 또다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별세로 엘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 팅커벨 죽이기의 시리즈가 더 이상 나올 일은 없겠지만, 작가가 남긴 다른 작품들도 많기도 하고, 분명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읽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정말 아까운 작가가 돌아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