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필체로 학교폭력을 그려낸 작가 다카하시 히로키의 제159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배웅불'입니다.
배웅불
- 줄거리
- 후기. 잘 모르겠는 이야기
- 다른 여러 가지
줄거리
아버지의 잦은 전근으로 이번엔 도쿄에서 시골로 이사 온 중학교 3학년 아유무. 전학을 간 시골 학교는 학생이 적어 내년이면 다른 학교와 병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즉 아유무의 학년이 마지막 졸업생인 것이다.
동성친구가 6명뿐인 학급에서 아유무는 잦은 전학으로 얻은 처세술로 동성친구의 무리에 마찰 없이 스며들었고 곧 함께 놀기 시작하게 된다. 여러 중학교를 전전했던 그의 눈썰미로 친구들의 관계성과 알듯 모를 듯 확립되어있는 권력구조를 파악했다.
무리의 권력, 혹은 중심, 나아가 리더인 아키라의 주도로 화투패를 가지고 게임을 하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받은 패의 족보가 작은 쪽은 다른 애들의 명령을 받거나 벌칙을 당하는 흔한 룰이었다.
─도둑질.
─염산 붓기.
─목 조르며 환각 보기.
아유무의 예상과는 다르게 '벌칙'게임은 점점 잔혹성을 띄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그 벌칙은 항상 미노루라고 하는 심약해 보이는 친구가 걸린다. 벌칙을 피해 간 아유무는 미노루를 불쌍히 여기지만 내심 안심을 하고 있다.
벌칙을 정하는 아키라의 과거 폭력사건을 알고 있지만 점점 과격해지는 벌칙에 아유무는 아키라를 경계하고, 어느 날 아키라가 화투패를 나눠줄 때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목격한다. 즉 미노루는 아키라의 패 조작으로 항상 벌칙을 받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전학 온 지도 시간이 지나고 평화로운 어느 날 아키라에게 노래방에 가자고 전화가 온다.
아키라의 부름을 받고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지만 그곳에는 친구들과 모르는 얼굴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서있었다. 그 남자의 따라오라는 말을 들은 아유무는 숨죽이고 남자를 따르는 친구들을 보고 말없이 자신도 발을 옮긴다.
도착한 곳에는 중학교의 졸업생. 이른바 선배들이 모여있고 아키라는 멍투성이로 서있다. 그리고 선배들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는 '놀이'를 하자고 권유를 한다.
후기. 잘 모르겠는 이야기
이 책은 짧다. 짧고 글씨도 크며 줄 사이의 공백도 넉넉해서 읽기가 아주 편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흥미도 없고 지루했다. 다 읽고 나면 왜 그렇게 풍경과 일상의 이야기를 했는지, 어떤 효과를 위해서인지 어느 정도 알겠지만 그럼에도 정말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기본적으로 나는 배경과 풍경 묘사는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그저 작가의 분량 채우기라고 생각할 만큼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집중 잘되고 재미있는 책이 아니고 정말 별로일 때는 그런 묘사는 넘길 때도 있다.
등장인물의 기분을 은유하고 비유하며 표현할 장치일지도 모르지만 귀갓길 풍경과 해 질 녘의 풍경을 읽어봤자 나는 딱히 감동을 받거나 와닿지 않는다. 상상력의 빈곤함에서 나오는 반동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이 책의 많은 풍경 묘사들에는 지루함과 하품밖에 느끼지 않았다. 다음 문제로 결말을 위한 복선들을 쌓기 위한 빌드업이 전혀 재미가 없다. 아키라의 폭력성과 미노루의 고통들을 표현해도 과정이 놀라울 만큼 지루하다. 가끔 보이는 아키라의 알 수 없는─작가는 그래서 무섭게 느껴지길 노렸을까─폭력성, 피학심을 자극할 것 같은, 무슨 짓을 당해도 비굴한 웃음만 짓고 있는 미노루. 어쩌란 말인가.
마지막으로 결말과 역자의 후기.
후반부 선배들의 놀이부터 칼질까지. 갑자기 흥미진진해지는 전개가 이루어졌다. 근데 거기서 끝. 어처구니가 없없었다. 그리고 역자의 후기를 보고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의미를 깨달았다. 그전까지 정말로 어쩌라는 건지 몰랐다.
학교폭력에서 방관자의 자세를 폭로, 혹은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쓴 글이, 결국 학대당하는 미노루가 칼을 들고 선배를 찌르고, 일상 속의 주범인 아키라는 도망가고, 방관자라고 작가가 설정한 주인공 아유무에게 "나는 처음부터 네가 제일 열 받았어!"라고 소리치며 덮쳤던 걸까.
어처구니가 없다.
감히 말하자면 나는 학교폭력에서 방관자들의 자세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건 이해하면서 거기서 파생된 특성인 눈치 보고 분위기 살피며 방관하는 자세는 비판하는 걸까.
물론 많은 사람들이 동조해서 폭력을 막는다면 이보다 더하고 빠른 해결은 없겠지만, 내가 보기에 '방관자도 동 죄다'라고 하는 논리는 결국 방관자들에게 있지도 않는 죄와 죄책감을 심어서 움직이게 만드는─선동하는─사회적 풍조에 지나지 않는다.
범죄는 사회와 시대가 만든다.─열악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사회가 보듬지 못한 옛날 스테레오 타입의 범죄자를 감싸던 어구가 아닌─어제는 합법인 게 오늘은 불법이 된다.
시대가 바뀌면 죄의 경중역시 바뀐다.─우부메인가 망량에서의 대사다─그냥 언제 변할지 모르는 하나의 흐름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불쾌하긴 마찬가지. 여러모로 강요하는 시대 같다.
조금 이야기가 엇나갔지만 돌아가서.
결국 당하던 피해자는 이를 악물고 칼을 들고 덤벼 우위를 점한다. 관계를 역전한다─그러면서 방관자를 공격한다. 해결 방식과 묘사를 이렇게 만들고 올바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다.
아유무가 방관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느끼는 감정을 복선처럼 조용히 깔아 두고는 마지막에는 결국 "나는 처음부터 네가 제일 열 받았어!" 하며 디렉트로 의미를 전달해 버린다. 직관적인 게 나쁘다고 하진 않겠지만 과정과 결말에 이질감이 가득하다.
스스로 무엇하나 행동하지 않으면서 불쌍하고 안타까운 피해자의 입장에 동정만 받으려는 치졸한 약자들은 혐오받아 마땅하다. 미노루와 같이. 신나게 뚜둘겨맞다가 무기를 들고서야 드디어 우위를 점해야 할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미련한 약자. 그러면서 왜 도와주지 않았냐고 방관자들을 탓하며 죄를 묻고 공격하는 새로운 가해자.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사회성이 결여되어 무리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공격만 당한다면 낙오자는 누구란 말인가. 행동하지 않는 약자는 동정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거기다 얄팍하게도 아유무의 짐작이 맞다면 급식에 설사약을 탄 것도 미노루지만 아키라에게 타지 않았다.
'인간은 삶의 모든 게 충족하면 오락을 추구하게 된다.'
라는 비슷한 대사가 있었다. 맞다고 생각하지만 작가는 어떤 의미에서 쓴 것인지는 모르겠다. 짐작하건대 모든 즐길거리가 사라진다면 하지 말란 건 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금지한 인간을 이용한 놀이가 흥행할 것이다. 달콤한 금기에 손을 뻗을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작은 사회, 닫힌사회, 인습의 대물림, 학교폭력.
이 책에 말하고 싶어 하는 건 많지만 이 정도만 쓴다.
전부터 점점 논란이 커지는 학교폭력과 촉법소년 등의 이야기들, 이슈들. 확실히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만 있으면 대대적인 보도가 이루어진다. 다만 반대로 이역시 하나의 흐름이라고도 생각한다.
─이슈 또는 유행 혹은 오락.
사견으로. 딱히 학교폭력이 많아진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슈가 되니 보도가 많아진 것일 뿐. 그러면서 잠깐 동안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형량은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슈거리가 생기면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는 소멸하고, 그 다른 이슈를 계속해서 보도하며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무언가가 잠시 변할 것이다.
그것이 반복되는 것뿐.
옛날에는 유행이 20년 주기로 돌아온다고 했지만 이제는 아니며 계속해서 관심이 끊이지 않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유행의 주기가 년 단위, 빠르면 개월 단위로 바뀐 것일 뿐이다. 과거와는 세상이 돌고도는 속도가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르다.
타인의 불행마저 하나의 이벤트.
타인의 불행만큼 꿀 맛 인건 없다.
그런 인식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결벽한 인간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각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삶을 살자.
살 책이 없어서 중고로 산 것인데, 정가로 샀으면 엄청 아까웠을 것이다. 분량도 적고 내용물도 별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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