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는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우주 대 명작, 대 문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입니다. 솔직히 몇 년 전부터 유명세를 타고 다들 잘 알고 있을 거 같으니 개인적인 생각을 많이 쓰겠습니다.

인간실격

  • 인간 실격자, 다자이 오사무.
  • 악질적인 공감.

인간실격' data-origin-width=
멋진 소와다리 판.

인간 실격자, 다자이 오사무.

자칭 '인간 실격자' 다자이 오사무. "자살의 권위자. 자살의 전문가. 자살의 프로. "

 

이 정도만 쓴다면 이 사람의 프로필은 대체로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악의에 약하고, 누구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며 그러면서 여성편력은 그야말로 화려한 기묘한 인물.

 

'어려서부터 환경이 어쩌고~ 대지주였지만 그래서 어쩌고~' 이런 다자이 일생의 프로필은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느낌이 크다. 다자이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누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회피 성향이 강하고, 피폐했고 마약 중독자에 알코올 중독자. 애연가였는지는 모르겠다. 아쿠타가와만큼은 안 폈겠지만, 아무튼 단어를 나열할수록 우울했다. 

 

전체적으로 염세적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작품 '마음'의 선생님이 타인을 피하고 멀리했고 조용히 떠나갔다면, 그에 비해서 다자이는 융통성이 없었다.

 

스스로가 인간실격임을 자각하면서도 인간의 울타리에 포함되고 싶어서, 포함되어서 인간을 이해하고, 안심을 얻고 싶어서, 그러면 자신도 인간실격이 아니게 되는 게 아닐까 해서, 자신을 상처 입히는 그 인간의 울타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다가 실패하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반복했고 실패했다.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몇 번을 반추해봐도 도대체 다자이의 인생이 어째서 지경이 됐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한참 잡생각이 많을 어릴 때는 동질감이 들고 자살을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도 해주는 좋은 친구 같은 사람이었고, 그래서 팬이 됐고 나름 문호라는 작가들 중 손에 꼽는 작가가 됐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지금의 위치는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 같다. 

 

평온한 집의 포근한 이불속이 아닌 병상.

아프고.

애달프다.

어린 다자이
서문 첫장. 아이의 묘사는 이 사진일 것이다. 기묘한 아이.

세 편의 수기가 말해주듯(여기서는 누군가가 다자이가 찍힌 세장의 사진을 보고 이질적임을 느꼈지만, 결국 이건 다자이가 쓴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사진을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것이 인간실격의 작품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알 수 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다.) 다자이는 인간이고 싶어서 광대가 되는 놀음을 계속해왔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주변에 웃음을 뿌리면서도 바보연기를 해가면서도 언제 어떻게 자신의 특이성을, 이상성을 들켜서 몰매를 맞을까 두려워하며 떨었다.

 

주위에 웃음소리가 커지는 만큼 다자이의 속은 지옥불에 타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평온한 소가 등에 붙은 벌레를 꼬리로 때려 쳐 죽이는, 불식간에 드러나는 폭력성. 그런 돌변하고 갑작스러운 폭력성이 이 일상에서 언제 갑자기 자신에게 향해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어릴 때부터 느껴왔다. 

 

분명 학교를 안 가도 성적도 좋고, 사람들 안색을 살피는 것을 보면 다자이는 어릴 때부터 영리했을 것이다. 그게 과도한 피해망상(무례한가?)을 낳고, 커가면서 더욱 커지는 인간의 모순을 봐오며 그것이 비대해지며 끝내 파멸했다.

 

아비규환의 세상에서 다섯 번의 시도 끝에 자살에 성공한 다자이는 무슨 기분일까. 아니, 죽지 못하고 실패했던 네 번의 원치 않는 생환에서 그에게 세상은 다시 어떻게 비췄을까. 세상이란 무엇이었을까.

 

이렇게 써내려 왔지만 다섯 번 읽으면 한 번쯤은 누구보다도 인간다웠던 '인간 실격자'였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악질적인 공감.

'인간실격' 언제 어디서 발견한다고 해도, 서점에서 이 제목을 마주한다면 교통사고라도 당했다고 생각하자. 불쾌한 글자들 뿐이고 불길한 느낌뿐인 제목에 어쩐지 무시하지 못하는 찝찝함.

 

그렇게 한 권 사들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 다자이의 독에 범해진 독자들은 제목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장까지 이어지는 불쾌감이 불순물처럼 남아 하루 종일 뇌 속을 떠다닌다. 기묘한 배덕감이 차오를지도 모른다.

 

인간실격의 가장 질 나쁜 점은 공감이다.

분명 언젠가 느껴보았을 공감과, 알 수 없는 것을 마주하는 이질감. 순간순간에 요조 이기도, 호리키 이기도, 다케이치 이기도 했을, 본문 속 등장인물 중 하나였을 자신을 떠오르게 한다.

 

불안정한 심리를 찌르는 글귀들은 독자들의 본성을 폭로하는 기분마저 든다.

다자이의 시그니처 포즈.

누군가에게는 동질감과 안심. 누군가에게는 경계하고자 하는 인간상. 누군가에게는 잊고 지내던 흑역사. 누군가에게는 그저 미치광이의 헛소리 일지도 모른다. 지독한 현실에 작가가 갔던 길을 따라갈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것 또한 이 이야기에서 구원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자이을 포함한 위대한 문호들의 작품이 100년의 시간. 세대를 넘어서 이제는 바다 건너까지 계속해서 팔리게 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불온한 책이라고 피하지 말고 마주해서 폭로당하자.

우울한 사람들이나 최근 과하게 행복하다면 읽어보도록 하자. 남녀노소 하루빨리 읽어보길 바란다.

 

호리키 같은 놈은 피해 다니자.

★★★★★★★★★★

 

다자이의 다른 작품 링크.

이십 엔, 놓고 꺼져

사양

쓰가루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