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스이카/하야시 미키/166P/놀/다산북스/김은희

작가 하야시 미키.

이 이야기는 왕따에 대한 이야기다.

놀라운 점이라면 작가의 경험에 의거해 쓴 소설이라는 건데, 작가는 초등학교 후반에서 중학교 중반까지 유언비어에 농락당해 괴로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14살쯤 이 책을 집필했고, 선정위원당의 고심 끝에 '팔레트 노벨 특별상'을 수상했다. 덤으로 2000년에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14살이라는 나이에 쓰고 왕따에대한 이야기, 결말의 의외성 등에 힘입어 수상하고 문장과 구성이 약해도 리얼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왕따의 이야기는 금기를 깨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베스트셀러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소설로써 전하고자하는바를 위해 후반에는 그야말로 허구의 이야기가 됐지만, 아쉬운 부분 역시 있지만 어른도 청소년도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무리는 점점 늘어났다.
아이들의 발이 무차별적으로 몸통에 꽂혔다. 아이들은 허벅지를 발로 찼고, 주먹으로 머리와 배를 때렸다.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저절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아이들의 표정은 너무도 싱싱하게 빛나고 있었다.
"케엑 케엑 케엑."
나를 향해 쏟아지는 발길질과 주먹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미안해, 스이카.

 스이카는 여자중학교 2학년이다. 모두 사이좋다고 생각했던 교실에서 사건이 터진다. 학급의 리더 격인 요코치카를 험담하며, '왕따놀이'를 제안한 것이다. 왕따놀이란 악의적인 네이밍 그대로 상대 한 명을 왕따로 만드는 단순 잔혹한 놀이였다.

평범하게 생활하던 치카는 하루아침에 모두에게 무시당하고 괴롭힘 당하게 되는데, 우리의 주인공 스이카는 그런 상황을 보다 못해 용기 내어 치카를 괴롭히지 말라고 외쳤고, 다행히 요코가 납득한 듯 넘어갔다. 그러나 다음날 스이카가 교실에 들어와 인사하자 모두가 무시하기 시작했고, 괴롭힘을 막아줘서 고맙다고 눈물 흘리던 치카마저 스이카를 무시하는 데에 일조한다.

 

요코의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갔다.

교실 뒤에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머리채를 잡아 휘두른다. 급식에 우유를 붓고, 쓰레기를 던지고 책상 위에는 국화꽃 병이 놓여있다. 설상가상으로 괴롭힘을 목격한 선생님마저도 그 상황에 눈 돌리는 모습을 보고 스이카는 더욱 충격을 받게 된다.

어느 날 스이카는 충동적으로 새벽 일찍 모두의 괴롭힘을 교실 칠판에 폭로하고자 교실로 향하던 중 시각장애인 소녀 유리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사연은 사고를 당해 부모님과 양쪽 시력을 잃은 것.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는 꿈을 품은 것을 보고 스이카도 용기를 얻게 된다.

 

유리에에게 받은 용기에 힘입어 다시 등교를 시작하지만 계속되는 괴롭힘과, 유리에마저 타깃으로 삼겠다는 말을 들은 스이카는 결국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만다.

그렇게 스이카는 의식불명에 빠지고, 병실의 부모님은 스이카가 학교에 가기 싫어했을 때 강제로 보낸 것을 후회하며 눈물 흘린다.

요코의 아버지가 '영향력 있는 부잣집 의원'이라 그런지 교사들은 학교에 찾아온 기자들의 눈치보기 바쁘고, 요코 일행은 마냥 즐거워하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치카는 유리에를 찾아내 스이카의 병실로 데려와 그동안 있었던 괴롭힘을 부모님에게 털어놓고 죄책감에 눈물 흘린다. 

그리고 치카는 야마이라는 기자에게도 그동안의 일들은 전부 털어놓고 사건을 공론화시켜 왕따의 실태를 알리고 교실에서 다시 무시당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 방관하던 학생들도 개심하여 왕따를 시작하게 되면 그런 짓은 그만두라며 나서고 그녀들 역시 스이카를 찾아와 빨리 깨어나라며 사과한다.

 

이 모든 상황들을 영혼이 된 스이카는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변해가는 상황에서 원망이나 미움의 감정은 사라지고 스이카는 '금빛 문'(천국?)으로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유리에는 스이카의 부모님에게 입양되고 시력을 잃었던 눈 역시 스이카의 각막을 사용해 시력까지 되찾게 된다. 

 

오랜만에 검색해보니 2020년 5월에 이쁜 표지로 새로 출간됐다!

 

왕따. 이지메.

얼마 전, '교실이, 혼자가 될 때까지.'의 리뷰와 통하는 내용이 많다.

요즘은 소위 말하는 일진. 스쿨 카스트가 지배하는 작은 사회인 교실은 세상과 다른 규칙으로 작동한다.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잘생기고, 이쁘고, 싸움을 잘하고, 아니면 그저 선천적으로 남 앞에 서는 기질이 다분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합쳐져 카스트의 정상에 올라있는 그들의 발언권은 이 작은 사회에서 법으로 작용한다.

이 이야기의 유코처럼 그저 말 한마디. 발언 하나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의문도 없이 왕따의 대상이 선택되고 모두가 암묵적으로 따른다.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단 하나 절대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건 '재미'다. 자기 손짓으로 말 한 번으로 누군가가 처참하게 망가지고 무너져간다. 때리고 쓰레기 취급하고 괴롭히고. 스트레스도 풀리면서 재미도 있고 쾌감도 장난 아닐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버려질 수 있다. 눈빛이나 말투가 싫어졌다며,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며 어제까지 반갑게 인사했던 친구들이 복도에서 차갑게 고개를 돌려버릴 수도 있다. 그저 '넌 이제 아웃'이라는 눈짓만으로 그렇게 덩그러니 외톨이가 될 수 있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장난감'인가, '놀이' 인가.

그 말에 따르지 않으면 다음 타깃은 자신이 된다. 이미 별 이유도 없이 한 명이 망가지는 것 직접 목격해 왔으니까. 누구나가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절대적인 명제를 모르고 스이카는 반기를 들고 말았다. 용기를 짜내서. 그 결과 자신이 구하려 했던 치카 마저 다음날 자신에게 무자비하게 퍼부어 내리던 주먹 중의 하나가 됐다.

 

'교실 하나에 왕따 하나, 교실의 수만큼 학교의 수만큼 왕따와 그에 준하는 피해자는 무수히 많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사회의 사회현상으로 이 '왕따'는 당연한 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마음에 드는 점 중 하나가 실로 리얼하게 괴롭힘이 그려졌다는 것이다. 뒤에서 쓰레기를 던지고, 악담을 퍼붓고 급식에 이물질을 넣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교실 뒤에서 말 그대로 먼지 나게 구타당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잘 쓴 문장들이 아닌, 상황 그대로의 묘사라서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이점에 대해선 완성된 필력이 아닌 게 좋게 작용한 것 같다. 부모님에게 왕따의 사실을 전하지 못하는 것도, 등교거부를 하고 싶어도 부모에게 떠밀려 학교에 가게 되는 것도, 선생의 무시도, 이 책의 무수한 묘사들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다. 

 

나는 곧 '사람의 진심이란 이토록 가벼운 것이구나' 하고 체념하고 말았다.
혼자 버려진다는 건 참으로 외롭고 쓸쓸했다. 갑자기 깜깜한 어둠 속에 홀로 있는 것처럼 완벽한 고독이 내 몸을 감쌌다.

 

장단점이라면.

이 책에도 나왔던, 흔히들 말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처럼 왕따 피해도 가해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고 스이카가 죽은 뒤 영혼으로 남아 가족들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자살을 후회하는 장면도 죽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스이카는 '죽을 용기로 자신을 쉬게 할 용기'를 가지라고 말했지만, 이 책은 사후세계의 존재가 있는 세계 같은데, 영혼으로 남아 후일담을 지켜보고 후회하는 일 따위는 이야기 속 설정이다. 작가는 자살은 안된다는 이유로 이 설정을 넣은 것 같지만, 그것 역시 편파적인 생각이라고 느낀다. 자살해서 끝. 후회할 겨를 없이 편안해질지 누가 알겠는가. 공평하지 않다. 이런 부분에 있어선 작가가 어떤 행위에 대해서 제시하는 길이 한 가지라고 밀고 나가는 경향이 있다.

 

정말 사악하다.
모두들 집단 속에 숨어서 평소에는 하지 못할 일들을 하고 있다.
나는 침착함을 잃고 손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애들은, 그런 내 모습을 즐기고 있다. 
생쥐 한 마리를 우리에 가둬놓고 송곳으로 찌르면서 가엾은 쥐가 얼마나 피를 흘릴 수 있는지, 누가 더 잔인하게 괴롭힐 수 있는지 경쟁하는 것 같았다.

 

죽지 말라는 메시지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야기로 읽는다 해도 역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죽은 후의 가족들의 슬픔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건 스이카의 자살이 안이했던 후회일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도움을 받아 깔끔하게 해결하는 것이고, 다음은 용기 내서 가해자를 보복하는 것. 다음으로 자살이든 이 책에서 말하는 살아남는 것이든 마찬가지다.

피해자의 자살은 용감한 게 아니고 도망치는 거라니, 이거야 말로 살아있는 사람의 가장 폭력적인 견해다.

그러므로 149P에서 시작하는 작가의 쪽지는 불쾌하기만 했다.

현실적인 왕따의 실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유리에의 등장과, 스이카의 영혼이 후일담 전부를 목격하고, 유리에가 시력을 되찾고 스이카의 부모에게 입양되는 결말은 왕따의 비통한 현실의 이야기를 허구적인 동화로 만들어 버렸다.

용기를 주기 위해서 라지만 너무 날림 엔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건 싫었다.
'그래. 이런 얘기는 절대 할 수 없어.'
가장 싫었던 건 스스로 자신을 왕따라고 얘기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제일 부끄럽고 비참했다.

 

또 하나로는 유코다. 유코는 의원 아버지를 두고 평생을 그렇게 예쁜 외모로 부유하게 아무런 불편함과 죄책감 없이 남을 짓밟으면서도 행복하게 유유자적 살아갈 것이다. 

아까도 말한 사후세계의 존재가 비쳤는데 이 세계관에서는 유코는 죽어서 지옥이든 어디든 가겠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살아있는 동안 유코는 벌 받는 일도 후회할 가능성도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게 아닐까. 어떤 일로 개과천선해도 스이카의 죽음 앞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않는 찝찝한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후에 있을 벌을 믿고 기약하는 엔딩이라니 너무 나약하지 않나. 동화적인 엔딩이면서 내심 작가도 벌 받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있기에 사후에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있는 현실적인 이유가 섞인 엔딩.

왕따의 고통과 유코의 현재에 대한 처분은 현실적이지만, 독자의 용기를 주기 위해 준비한 설정은 안이해 보인다.

다만 이 밸런스는 조절하기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쓸 거였다면 스이카는 고독 속에서 홀로 죽어가야 했다.

동화적이라면 유코마저 벌을 받아야 했다.

 

 아까 왕따는 인간사회의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왕따를 저지하고 막기 위해 노력하고 피해자를 구하는 것 역시 왕따 이상의 당연한 인간의 현상인 것이다. 

왕따가 당연한 현상이라고 해서, 막지 않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

 

PS. 맨 앞에 있는 선정위원단의 말에 결말이 언급돼있으니 본문을 전부 읽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새로 구매할 생각이라면 아까 알게 된 사실로 2020년 5월에 이쁜 일러스트로 새로 출간됐다. 그걸 구매하길 바란다.

소장용으로 나도 구매해야지.

미안해, 스이카
국내도서
저자 : 하야시 미키(Hayashi Miki) / 김은희역
출판 : 다산책방 2008.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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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스이카
국내도서
저자 : 하야시 미키(Hayashi Miki) / 김은희역
출판 : 놀(다산북스)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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