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이방인

이방인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 뫼르소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주인공은 양로원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다. 그 뒤로 푹 쉬며,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고 이웃인 레이몽과 어느 정도 교류를 가지고, 그 이웃의 트러블로 인해 놀러 갔던 별장 근처에서 권총으로 사람 한 명을 쏴 죽여버린다. 그렇게 1부가 끝이 나고─.

 

2부는 살인죄로 형무소에서 생활하게 되고, 주인공의 변호사와 검사가 재판에서 공방을 벌이고, 저지른 죄의 처벌을 기다리며 끝이 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첫 문장이 유명한 작품 리스트를 보면 항상 올라있는, 많은 사람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그 소설 이방인이다. 이런 명성이 자자한 고전 명작을 도전할 때면, (실패도 많아 망설여진다.) 항상 긴장된다. 온갖 기대를 하고 독자들이 침이 마르도록 앵무새처럼 칭찬을 하던 작품을 읽었을 때, 재미도 공감도 얻지 못했을 때의 공허함은 장난이 아니다.

 

내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죄책감이 든다.

그러나 이방인은 달랐다. 부담 없는 분량부터, 술술 읽히며,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은 문장들. 직관적인 스토리,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등장인물들.

 

권태롭고, 무감각한 주인공 뫼르소부터 시작해서 그저 미친놈 같은 레이몽, 아마도 뫼르소의 약혼자인 마리. 등장인물 수는 적고, 그 밖에 레스토랑의 셀베르트와 살라마노 영감, 변호사 판사 등이 있지만, 역시 기억에 남는 건 가장 불가해한 뫼르소, 레이몽, 마리, 세명이다.

 

시작부터 뫼르소는 무감각하다. 권태롭고 탈력적이고, 욕구는 있지만 욕망은 없는듯한, 언듯 보면 사이코패스라고도 생각될 정도로 그의 심리는 이질적이었다.

 

엄마의 죽음에 눈물 흘리지 않으며, 레이몽의 폭력을 거들고 총마저 거침없이 쏠 준비를 하고, 마리를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은 해도 상관없고─마리 역시 그래도 상관없어한다─수감이 되어도, 재판 중에도, 형량이 결정되어도, 정신은 항상 주변 사람을 신기하게 생각하며 관찰을 하고, 스스로의 내면에 머무른다.

 

 "나는 육체적인 욕구가 내 감정을 지배하는 일이 많다고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의 장례식날, 나는 매우 피곤하여 졸음에 시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이 대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너무나도 알기 쉽지 않은가. 저 대사를 읽고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가 상승하고, 불가해한 이미지가 벗겨졌다.

 

저렇게 말하듯, 덥고 빈혈이나 현기증 등 환경으로 인한 신체변화와 그로 인한 심리 묘사가 종종 있었는데, 이 장치는 재판으로 가는 길로 이어진다.

 

뫼르소를 보고 미친놈 혹은 사이코패스 같다는 이런저런 말이 보였는데, 내가 보기엔 자기완성, 완결형 인간이라고 생각됐다. 스스로의 내면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답을 냈지만 그렇게 도출된 답을,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말하기 때문에─말할 생각도 없다─생긴 외적인 이미지. 거기에 더해 건조한 문체가 큰 몫을 했다.

 

사회가 규정한 인간적인 감정을 밀어붙이는 부조리~운운 같은 작품의 해석은 무리니까 여기까지.

 

한 권 전체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요나─작업 중인 예술가'라는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나름 재미있으니 시간이 나면 읽어보길.


언젠가 말했듯이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그것이 걸작 혹은 명작, 거기에 고전문학이라고 해도 내가 전부 이해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빠져들기 쉬운─선민의식의 발로로 고전문학을 독파하고, 아는 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몹쓸 버릇에 빠진다고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감히 그러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다.

작품을 한 권읽으면 여러 리뷰를 봐보고, 고전작품이라면 수십 년간 쌓여온 해석과 분석을 맛보기로 읽어보면, 나와 같은 작품을 읽은 게 맞는 건가─하고 충격을 받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가끔 언급했던 작품 마지막에 나오는 번역가의 놀라운 통찰력으로 해설 혹은 리뷰가 실린 번역 후기를 읽어보면 역시나 감탄하고 만다.

 

이야기에서 작가가 전하고 싶은 생각과 사상. 주인공의 행동에 담긴 의미. 은유와 비유가 조용히 가리키는 주장. 작품을 쓰던 시기의 혼란한 시대상이 녹아져 있는 작풍─동시대에 읽었으면 모를까, 작품의 이해를 위해 작가가 살던 시대상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건 솔직히 번거롭다고도 생각한다─등 온전하게 이해한 적이 없다. (추가로 외국 고전 문학은 번역의 논란도 많다.)

 

그래서 언제나 나의 판단은 '재미'였다.

작가가 어떤 바람을 담 든, 어떤 주제의식이 담겨있든 상관이 없다. 나중에 알면 그만. 심층 속에 상술했던 여러 가지가 담겨있다고 해도,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 표층의 재미만이 우선적인 지표인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를 했든, 그저 글자의 나열을 읽어나가기 밖에 못했든, 완독을 했을 때, 내가 눈치 채지 못한 여러 가지 해석들을 이끌어가는, '이야기'가 재미있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카뮈의 '이방인'은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 완독을 해도, 해설을 읽지 않으면 모르는 사실들을, 모르는 채로, 무지한 채로 이야기의 힘만으로 재미를 충분히 느꼈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고 나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많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알아보지 않으면 찝찝하니 죽을 맛이다. 이래서 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건가. 진행되는 스토리도 재미있고, 필요한 건 해설 편이 아닌 해결 편이고, 후반에 알아서 터트려주니 고민이 없다.

 

★★★★★★★★★☆

재미난 문학

햄릿 / 윌리엄 셰익스피어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나생문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마음 / 나츠메 소세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