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나쓰메 소세키/295p/현암사/송태옥

근대 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의 정수.

최근 몇 년 사이에 과거의 문호들의 작품들을 전집으로 모아서 출판하는 일이 많아졌다.

작가의 사후 저작권이 풀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로 이 책 '마음'이 포함된 나쓰메 소세키 전집은 자각의 사후 100주년 기념!?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라는 타이틀과 함께 14권의 걸작들을 엮은 것이다.

 

우선은 겉모습이다.

 

양장본으로 만들어진 겉표면은 아름다운 표지 디자인과 손에 붙는 그립감. 나쓰메와 관련된 여러 사진들이 포함되어 알찬 구성으로 재탄생했다.

 

책을 좋아하는, 좋아하지 않더라도 서점에 갔다면 눈에 띄는 순간 책꽂이에 서 뽑아 펼칠수밖에 없는 영롱함을 자랑하고, 작가의 팬이라면 감동마저 느끼게 될 그런 한 권이다. 

 

말 그대로 내용물이 아니라 겉표지만으로도 소장가치가 충분하게 느껴지고 책장에 꽂아두기만 해도 배부르다. -역시 표지만 잘 만들면 절반도 넘게 먹히는 거다.

 

전집 세트 -교보문고

나 역시 나츠메 소세키라는 대문호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아직은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다. 

시간도 때울 겸 산책 나간 서점에서 발견한 '마음'이란 한 권에 마음을 사로잡혔다. 때깔 고운 디자인과 기대되는 띠지의 문구. 

 

기대하기에는 충분했고 고민 없는 구매 후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그리고, 아 역시나 온갖 미사여구로 칭송받던 그 명성에 걸맞고 사후 백 년을 넘어서 물 건너 외국에까지 전해 질 수 있는 가치가 있는 한 권이라고 뼈저리게, 아니 마음 절이게 느꼈다.

지금의 난 90퍼센트의 연어와 10퍼센트의 마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

소설 '마음'은 총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 '선생님과 나'

할 일 없는 나는 해변에서 선생님과 만나게 된다. 염세적이고 어딘가 일반인과는 동떨어진듯한 선생님에게 매력을 느낀 '나'는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어느 정도 친해진 '나'는 선생님의 집에도 자연스럽게 드나들고 선생님의 아내와도 친해지게 된다. 

 

2부 '부모님과 나'

아버지의 건강이 나쁘다는 소식을 듣고 본가로 내려간 '나'가, 아버지가 서서히 약해지고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임종을 준비하는 와중에 선생님에게 우편이 날아온다.

 

3부 '선생님과 유서'

'나'가 그토록 알고 싶어 하던 선생님의 인생관에 영향을 끼치는 과거의 사건들이 적혀있는 우편이 도착한다.

그 우편은 말 그대로 유서였는데 선생님의 그간의 죄책감과 죄의식 인간 불신이 시작되는 사건들이 적혀있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거라네.
나는 미래의 모욕을 받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거지.
난 지금보다 한층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는 대신에 외로운 지금의 나를 견디고 싶은 거야.
자유와 독립과 자기 자신으로 충만한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 이 외로움을 맛봐야 하는 거겠지."

교보문고 펌

 

배신과 죄의식.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은 지독하게 고독한 소설이다. 

선생님은 과거 믿었던 숙부에게 배신을 당해서 재산을 빼앗겼다. K는 자신이 추구하는 길과 하숙집 여자에게 끌리는 자신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한다.

 

선생님은 같은 여자에게 끌리는 K의 마음을 알고서 질투심을 느끼고, 방황하는 K에게 추구하는 목표는 어떻게 된 거냐며 모르는 척 호통치며, 몰래 하숙집 여자에게 구혼을 한다.

그 소식 후 K는 자살을 선택한다.

 

배신을 당해서 인간 불신에 빠진 선생님은 친구의 믿음을 저버리고 그를 자살로 몰고 갔다는 죄책감에 세상과 벽을 쌓고 단절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유일한 이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아내-하숙집 여자였던-에게도 K가 죽은 이 유도 자신이 범했던 죄도 털어놓지 못하고, 그 사실은 다시 아내를 고민스럽게 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그저 과거의 벗이었던 K의 무덤 앞을 산책하며 찾아가는 그런 일상.

누구와도 마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선생님이 자신의 과거의 고뇌와 죄의식으로 꼼짝도 하지 못한 일생을 털어놓게 되는데, 그 매체가 유서였다.

 

"나는 때때로 웃었어. 자네는 이따금 어딘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보여주었지.
그러다가 결국 내 과거를 두루마리 그림처럼 자네 앞에 펼쳐 보이라고 졸라댔어.
나는 그제야 속으로 자네를 존중했네. 자네가 멋대로 내 마음속에서 살아 있는 뭔가를 붙잡으려는 결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지.
내 심장을 가르고 따뜻하게 흐르는 피를 마시려고 했기 때문이네. 그때 나는 아직 살아 있었어. 죽는 것이 싫었지. 그래서 훗날을 기약하고 자네의 요구를 물리쳤어.
나는 지금 스스로 자신의 심장을 가르고 그 피를 자네의 얼굴에 끼얹으려고 하네.
내 심장의 고동이 멈췄을 때 자네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네."

 

사람과 사람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같은 시간을 함께해도 자신을 구성한 과거는 자신만의 것이고 말한다고 이해받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독한 존재들이다. 

 

친구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해수욕장에 친구가 오지 못한 '나', 인간 불신에 빠진 '선생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남편-선생님-은 속내를 말해주지 않고 고뇌하다 자살해버려 남겨진 '아내', 친구의 배신 아닌 배신과 가족에게도 내쳐지고 스스로 목을 그은 'K'.

 

끝끝내 누구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하고 끝을 맞이했다. 

 

아마 '나'는 더 이상 선생님의 집에 찾아가지 못할 것이다. 유서가 전해준 선생님의 과거는 독이 되어, 다가오는 사람은 모두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나'는 선생님과의 만남을 후회할까.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고 있는 이 책을 본다면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유 역시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하고,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란 것을.

 

"세상에 틀에 박은 듯한 나쁜 사람이 있을 리 없지.
평소에는 다들 착한 사람들이네. 다들 적어도 평범한 사람들이지.
그런데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그래서 방심할 수 없는 거지."

 

'선생님'의 고독은 아내의 사랑도 친구와의 우정으로도 치유되지 못한 불치병이다.

그러니 다들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말고, 홀로 굳세게 살아가야 한다.

★★★★★★★★★★

마음
국내도서
저자 : 나쓰메 소세키 / 송태욱역
출판 : 현암사 201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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