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이사카 코타로/327p/김소영/웅진지식하우스

 마왕

타성에 젖어 무기력하게 살아가며, 정치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눈앞의 재미와 쾌락에 빠져있는 국민들 앞에 젊은 정치가 '이누카이'가 나타난다. 

그는 방송에 출연하여 눈앞의 정치가들에게 사명감과 책임감은 희박하며, 국민들은 나태하고 제멋대로 라며 일갈한다.

그리고.

"5년 안에 내가 이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놓지 못한다면, 내 목을 쳐도 좋다!"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그렇게 외치고, 선언한 대로 차근차근 나라를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다른 정치가들처럼 그저 말뿐인 퍼포먼스일 것이라 생각했던 국민들은 변화해가는 상황과 이누카이의 카리스마에 빠져들어 점점 그를 칭송하기 시작하고, 이누카이의 인기는 종교처럼 추종자까지 만들어낸다.

 

평범한 회사원인 주인공 '안도'는 정신을 집중하면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입으로 말하게 하는 '복화술'같은 초능력이 있다는것을 알게 된다.

오랜만의 친구와 만나 이야기하는 중 이누카이에 대해 듣게 된다. 친구의 입에서 이누카이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저 뛰어난 정치가 한 명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누카이는 결코 그런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을 깨닫는다.

 

안도의 이웃인 '앤더슨'의 집이 불탈 때 주민들은 그저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앤더슨은 미국인이지만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일본으로 귀화까지 했지만, 서양과 강대국에 대한 불만으로 주민들은 그저 앤더슨이 미국인 이란 이유로 손 놓고 구경만 했던 것이다.

 

"생각해, 생각해, 맥가이버!"

안도는 '마왕'의 존재를 드디어 피부로 느끼게 된다.

표적을 만들고 불안과 분노를 선동하며, 군중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이누카이가 가리키는 대로 폭주할 뿐이다. 

록밴드 공연에서 축구시합에서 모두가 하나가 됐을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공포감. 그것이 온 것이다. 

그렇게 안도는 자신의 작은 초능력 하나로 이누카이와 대결하기를 결심한다. 

 

호흡

안도의 동생 '준야'는 10분의 1 확률을 전부 맞힐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준야는 아내 시오리와 살며 형이 도전했던 것처럼, 자신의 역시 능력으로 시오리 몰래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시오리는 그런 준야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불안한 마음에 휩싸이지만, 그녀 역시 안도를 떠올리며 준야와 함께 대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이 녀석이야말로 마왕일지도 몰라."

 

젊은 천재 작가 이사카 코타로

다섯 번의 나오키상 후보로 오르고, 수많은 명작을 써낸 거물.

배우 강동원이 연기했던 '골든 슬럼버', 킬러들의 이야기 '그래스호퍼'와 '마리아 비틀'. 허수아비 예언가가 등장하는 '오듀본의 기도'. 희망 없는 세계에서 따뜻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종말의 바보'등.

코타로의 작품은 여러 장르를 오가며 만화, 드라마와 영화화까지 되며 수많은 팬을 보유했다.

촘촘한 설계와 정교한 구성. 치밀한 복선들.

코타로의 책을 덮을 때면 언제나 기묘한 충만함에 싸이는 게 꼭 마약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물론 많은 작품을 쓴 만큼 읽다 보면 호불호가 갈리는 게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걸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중 단연 으뜸인 책이 바로 '마왕'이다.

"파시즘이나 헌법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것들은 주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소품이나 장식품도 아닙니다"

이사카 코타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대로 파시즘과 헌법, 무솔리니와 군중심리 같은 여러 가지 사상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런 사상을 강요하거나 싸잡아 배척하는 내용도 아니다.

 

"엉터리라도 좋으니까 자신의 생각을 믿고 대결해 나간다면 세상은 바뀐다"

몇 번이고 등장하는 이 대사가 주제를 관통하는 게 아닐까 싶다. 

책에서는 국민과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누카이에게 매료되어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사고를 정지하고, 시대의 총아가 이끄는 대로, 안대를 쓰고 그저 줄 서서 걷기만 하는 우민이 되어가는 그런 소름 끼치는 심상이 펼쳐지는데, 이사카 코타로가 말하는 바가 뭔지 직감적으로 알게 된다.

록밴드의 공연에서, 축구시합의 관중이 되어 느껴지는 일체감.이라고 표한한 이 기분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으면 분명 상쾌한 듯 하지만,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보면 한 덩어리의 기묘한 생물로 비쳐 공포까지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수십 년을 내다본 잔혹동화.

 "무진장 큰 규모의 홍수가 났을 때, 그래도 나는 물에 휩쓸려 가지 않고 언제까지고 꿈쩍도 않고 서 있는 한 그루 나무가 되고 싶어."

이 책은 두 번째 읽는 것이지만 학생 때 읽었을 때와는 받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학생 때는 그저 굉장히 재미있는 모험 이야기인 장르소설이었다면,

지금은 '현대사회를 내다본 것 같은 무서운 책.'이다.

인터넷의 정보의 바다에서 유행에 따르고 대세에 따르며, 따르지 않으면 적대하고 배척한다. 

여러 문제로 혼란스러워진 사회에서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며 약점을 보이면 돌을 던져 끌어내리고,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을 앞세워 주위를 선동하고 핍박한다.

 

현대 사회의 문제를 이 책은 미리 날카롭게 경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마냥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인 건 아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주제는 뚜렷하고, 한 번쯤 고찰해보기 좋다.

주제를 빼고 아무 생각 없이 봐도 재미와 유머도 잘 챙겨주어 읽기 까다롭지 않고 술술 잘 읽히는 게 매력이다. 

인상 깊은 문장들과 대사로 구성되어, 덤으로 문호 '미야자와 겐지'의 소설과 시까지 느껴 볼 수 있다.

 

이사카 고타로는 '나 자신이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썼다'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종류의 책이었다.

 

 

"소등입니다."

★★★★★★★★★★

 

마왕
국내도서
저자 : 이사카 코타로(Isaka Kotaro) / 김소영역
출판 : 웅진지식하우스 200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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