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생문/아쿠타가와 류노스케/298p/소와다리/김동근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이 책을 다루는 데 있어서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文豪.

문장의 호걸.

문호.

나는 문호라는 말을 좋아한다. 일단 울림이 멋있다. 역사 속에서 대적할 자 없는 무력을 가진 영웅들이 아닌 붓을 잡고서 글로서 작품을 남기고, 이름을 남기고, 후세에게 호걸이라는 칭호를 받아 불린다니.―현역일 때부터 불리던 작가도 있겠지만― 동경할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일생에 걸작들을 남긴 위대한 작가들에게 경배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문호라고 칭한다. 개중에는 천수를 누리고 눈감은 작가도 있고, 자살이란 방법으로 스스로 생을 끝마친 작가들이 있는데(유독 작가들의 자살이 많은 것 같은 인상이다.) 안타깝게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후자에 속한다.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어떤 일을 어떻게든 하려면 수단을 가릴 여유가 없다.

 

자살한 문호.

어쩐지 작가의 자살은 멋있다는 인상이 남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 작가를 좋아해서, 혹은 동경, 혹은 낭만. 이런말을 하면 불손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자살이란 단어에 불같이 달려들어 모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업이 작가라는 특수하다면 특수한 입장 때문일까. 항상 고민해본다.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써 어딘가 엇나가고 기묘한 행동을 해도 '작가니까'라고 너그럽거나 웃으면서 어쨌든 수용해주는 이미지가 있고 그 시절의 작가들 자신도 그 부분을 아마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괴짜로서 팔린다.

이단으로서 팔린다.

수단과 이미지.

 

교보문고

 

특이한 행위와 언동들을 '작가는 모두 괴짜다.'라는 인식을 방패삼아 병폐하면서 심약하고, 나약한 마음을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를 뿜어대어 허세를 부리고, 끝에는 마약에, 약에 의존하다가 자살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죽음.

작가에 어울린다. 여기서 '드라마틱'이 중요하다. 

 

그런 고착된 이미지가 반 세기전의 작가들에게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마 그들은 작가밖에 될 수 없는 불쌍한 인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내게 동정받아봐야 불쾌하겠지만―자신들의 이상성을 이야기들로 쏟아내며 해소하고, 끝에 가서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 느낌을 이해하는 독자가 있다면 시대를 잘못타고났다. 1세기, 하물며 반 세기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작가 되어 활약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문호들 가운데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는 1914년 첫 작품을 시작으로 1927년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분명 어떤 직업이었어도 활동 시기는 매우 극단적으로 짧은데, 그에 반해 쏟아낸 작품들은 무수하게 많고 또 아직까지도 극찬을 받으며, 찰나라고 할 수 있는 집필 활동 기간으로 '작가는 작품으로서 영원을 살아간다'는 위업을 이루어냈다.

 

거기다 아쿠타가와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이 만들어졌다.

 

 인간의 마음에는 서로 모순된 두가지 감정이 있다. 물론 타인의 불행을 동정하지 않을 자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이 그 불행을 어떻게든 해서 타개할 수 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이쪽에서 왠지 섭섭한 기분이 든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다시 한 번 그 사람을 똑같은 불행에 빠져들게 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기게 된다.
그리하여 어느새 소극적이긴 하지만, 어떤 적의를 그 사람에게 품게 되는 것이다.

 

나생문, 그 외.

우선적으로 또 다시 표지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지난번 '사양'의 리뷰와 같은 출판사 '소와다리'에서 출판해준 책이다. 감각적인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과 작가와 연관된 다채로운 사진자료들. 그리고 이제는 사라져서 아쉬운 '세로 쓰기'와 '오른쪽 읽기'가 남아있는 매우 유니크한, 소장가치가 있는 한 권이다.

 

간혹 낯선 제본방식에 불편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읽다 보면 적응할 수 있다. 약간의, 적응되는 불편함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소장가치까지 충족시키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의 시대는 이제 디자인의 싸움이다.

이런 디자인들로 일반독서가 부터 패션 독서가까지 생각해주는 포용력 있는 출판사. 소와다리를 항상 응원한다. 

 

 

교보문고

 

이 단편집에는 아쿠타가와의 주옥같은 걸작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나생문-시체의 머리카락을 뜯어 파는 노파와 대기근으로 갈곳잃은 칼찬하인. 처지에 따른 납득하는 악행.

코-커다란 코가 콤플렉스인 중을 바라보는 인간의 잔인한 심리.

여체-예술가의 시각에 대한 아쿠타가와의 생각

 

지옥변-원숭이를 닮은 화가의 '진짜'지옥을 그려내기 위한 광기

거미줄-지옥에 내려온 거미줄 하나, 극한의 상황속 '자비로움' 마저 등 돌리게 하는 인간의 이기심. 

귤-피로와 권태감에 젖은 작가는, 소녀가 던진 귤에서 상쾌함을 찾는다.  

 

파-아쿠타가와가 하룻밤 만에 완성한 근대물.

덤불 속-덤불 속 살인사건에 대한 관계자들의 엇갈린 진술. '진실은 덤불 속에.'

흰둥이-검둥이의 죽음을 외면한 흰둥이가 용기를 되찾는 동화.

톱니바퀴-자살 직전의 무너져가는 자신의 심리를 다룬 자전적 소설.

 

 그것은 내 일생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
나는 이제 그 다음을 계속 쓸 힘이 없다.
이런 감정 속에 살고 있음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구, 나 자는 동안, 가만히 목 졸라 죽여줄 이 없는가?

 

단편집은 줄거리 쓰는 것이 귀찮다. 

대충 짤막하게 적었는데 아쿠타가와의 작품들 중 읽다 보면 '어? 이거 아는 이야기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의 작품은 고전 설화나 민화 등에서 소재를 가져와 그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말을 듣고 납득했다.

 

단편집이 그렇듯 모든 작품이 만족스러울 수 없다. 다만 분명 뇌리에 깊게 박히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이야기들이다. 나생문의 하인은 과연 마을로 내려가 악인이 되었을까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코에서 중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추악하기 이를 데 없다. 독자의 시선은 어떨까. 거미줄의 이야기는 짧지만 분명하게  말하는 바가 있다.

귤에서의 짧지만 어떤 두근거림이 있고, 이야기의 마지막 톱니바퀴는 읽는 내내 숨 막힌다. 이 이야기는 아쿠타가와밖에 쓸 수 없다고 확신했다. 아내의 마지막 대사가, '아, 이건 죽을 수밖에 없다.'라고 읽는 독자마저 생각하게 만든다.

 

각 단편집의 호불호는 있겠지만, 책 디자인과 분명 만족할 몇몇 작품들을 생각하면 구매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확신한다.

★★★★★★★★☆☆

 

나생문이 모티브인 책 '문호 A의 시대착오적 추리' 링크

 

나생문
국내도서
저자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김동근역
출판 : 소와다리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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