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나생문의 저자인 문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자살 후 현대로 환생? 한 뒤 지옥변 같은 혼란을 막기 위해 추리한다는 발칙한 소설 '문호 A의 시대착오적 추리'입니다.

문호 A의 시대착오적 추리

  • 작가 모리 아키마로
  • 문호
  • 시대착오적
  • 라쇼몽과 그 추리
  • 마무리

문호 A의 시대착오적 추리

작가 모리 아키마로

구매할 때는 몰랐는데 이 책의 작가 모리 아키마로는 초면이 아니었다. 몇 년 전에 중고책으로 구매했던 '검정고양이의 산책 혹은 미학강의'라는 기묘한 제목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기묘하고, 특이했다.

 

이제 기억도 잘 안 나지만 큰 재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다. 그냥, 이야기의 흐름과 구성, 이른바 콘셉트가 견문이 좁은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것은 기억한다. 큰 재미는 없었지만.

 

나에게 그런 작가의 그런 두 번째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문호

처음 제목을 봤을 때 문호와 A라는 글자만으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떠올렸다. 물론 내가 역사 속 대 문호들을 전부 꿰고 있는 건 아니 니지만 직감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이번 책은 표지가 일러스트로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언급한 얼굴이 길다는 아쿠타가와의 묘사가 무색하게 평범한 미청년이 그려져 있는데, 이런 일러스트도 나쁘지 않지만 어쩐지 팍팍 꽂히는 느낌이 없었다. 이 책은 오히려 제목이 인상적이라 구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살했을 터인 아쿠타가와가 현대에 등장해서 자신의 작품 내용이 반영된 것 같은 사건을 해결한다는 매력적인 이야기. 이거 하나만으로 독자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 현대에 와 신문물에 놀라고 관점과 가치관의 변화 문명의 발전에 놀라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친근감이 생길 법한 즐거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상상해 왔고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됐을 것이다. 시작은 그런 식으로 즐거움을 준다. 물론 실제 성격이 어땠을지 모르니 존경하는 인물이 자신이 상상하던 성격이 아니게 표현되어 불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건 스스로의 상상력으로 충당하기로 하자. 

 

나도 읽으면서 '이건 내가 이미지 하던 아쿠타가와가 아니야'라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그렇게 감당 못할 정도로 '캐릭터 붕괴'같은 불상사는 없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시대착오적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고 또 의미 있는 단어는 '시대착오적'이지 않을까. 아쿠타가와의 시점일 때는 소제목으로 계속해서 '~시대착오적인 시점'이라고 사용된다. 100년 전의 인물이 현대로 넘어와 '시대착오적'인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구해야 하는 여인이자 가정부로 고용한 야요이와의 대화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쿠타가와는 야요이에게 '여자가' '여자 주제에' '가슴이 없다' '여자답지 않다' 등의 '시대착오적인'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며 주위를 신경 쓰지 않고 방 안에서 줄담배를 피고, 길을 걸으며, 음식점에서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런 '시대착오적'인 언동들을 계속해서 야요이에게 지적을 받고 논파를 당하고 세상의 변화를 점점 인식하고 수용하기 시작한다.

 

다만 '시대착오적'인 시선은 마냥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시대착오적'인 시점에서 현대인의 그릇된 점과 모순들을 꼬집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작가의 실수인지 그렇게 평등과 다양성을 외치는 야요이도 듣기에 따라선 충분히 편협하고 단적이며 자신이 말하는 현대의 시점에 동떨어진 '시대착오적'인 듯한 언행을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야기 전체에 깔린 현대인의 이기심과 무관심. 억눌려있는 분노들을 '시대착오적'인 시점으로 지적을 하고 있다.

 

라쇼몽과 그 추리

큰 흐름은 자살한 아쿠타가와가 현대로 환생하여 자신의 작품을 모티브로 하는 사건들이 줄지어 일어나고 그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다. 

 

듣기만 하면 무척이나 매력적인 이야기인데 전부 읽어보면 어쩐지 허전하다. 첫 장부터 비현실적인 장면이고 아쿠타가와의 환생은 넘어간다 해도 사건의 전개와 결말까지 추리의 요소가 무척이나 적다. 해결마저도 거의 우연과 우연이 겹치고 억지 같은 해결 편이 잽싸게 이어진다.

 

전율 할만한 트릭도 논리도 없다. 그저 주어진 단서로 퍼즐 맞추면 끝. 한 동네에서 범인이 넷이나 있으니 간단할지도 모르지만 그동안 쌓아온 재미가 반감될 만큼 알맹이가 없다. 위기도 긴박함도 없다. 

 

딱 이 정도의 기분이 아니었나 싶다. 위에서 말한 작가의 전작품을 읽었을 때도 설정은 좋다. 근데 거기서 끝.이라는 허무함. 아쿠타가와와 야요이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마지막 5장에서 재미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냥 아쿠타가와가 과거와 현대의 괴리감으로 웃음을 주고 둘의 러브 코미디로 밀고 나가는 게 끝까지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중간까지는 그런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끝에 가서는 충분히 비현실 적인데 더욱 알아먹기 힘들고 비현실적인 흑막의 등장과 함께 후속권을 암시하고 끝을 맺는다. '악의 씨앗'을 뿌린다는 페이크 흑막?(얘 뒤에 흑막이 더 있다.)의 주장도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절조 없는 비현실성과 우연에 반감되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마지막 5장의 지옥변의 참상은 그저 촌극 같은 결말로 독자는 위기도 못 느낄 정도로 끝나버린다.

 

속된 말로 후반에 가서 뇌절했다.

마무리

정말로 아쉽다. 해결 편까지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전작과 이 작품을 보면 작가 역량의 한계인가. 초반부터 끝의 직전까지 즐겁게 읽어서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이 작품에는 진짜 문호 아쿠타가와의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대표적으로 라쇼몽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작가의 라쇼몽의 해석은 흥미롭기도 하니 읽어본 사람은 더욱 재미있을 거고 안 읽었다고 해서 전혀 못 읽을 물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쉽게 봤지만 후하게 줬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몽 및 단편집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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