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책 리뷰입니다. 그동안 살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던 작가 오리가미 교야의 '기억술사'를 드디어 읽어 봤네요. 시작합니다.
기억술사 1
- 책과 작가 오리가미 교야
- 작품의 인기와 주관
- 기억술사─기억을 지우는 사람
- 끝으로
책과 작가 오리가미 교야
상술했듯 이 책은 살까 말까하며 장바구니에 오랫동안 보관되어있던 작품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사고 싶은 책은 많고 돈은 없다.
그러는 와중에 얼마 전 생일을 맞아 친구들이 선물을 주는데, 그중 한 명이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의 책 열 권가량과 기억술사 세 권을 선물해 주었다. 약 열 권의 책 역시 가지고 싶던 것이라 너무나도 기뻤다. 책장에 이쁘게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오랜만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놀던 후반부터는 기억이 날아갔지만.
그리고 작가에 대해서 인데, 작가의 프로필이 대단하다.
셜록의 고향 영국의 출생부터 유명한 와세다 대학을 다니고 무려 변호사의 직함을 달고있다. 최근에─내가 인식하기로는─의사부터 판사 변호사까지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작가를 겸업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는데 작가들의 노력과 재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작중에서 변호사도 등장하는데 그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의 인기와 주관
작가 오리가미 교야의 작품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작품이 바로 기억술사 시리즈라고 한다. 시리즈라고 하니 다들 눈치챘겠지만 이 작품은 지금까지 세 번째 작품까지 정발이 됐다.
그만큼 일본에서, 그리고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아무래도 좋다.
인기 어쩌고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혹은 나같은 팔랑귀에게는 좋지 않다. 필연적으로 작품의 인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그 인기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자체가 내가 책을 읽을 때 선입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지조없는 귓구멍은 악평도 가리지 않는데, 악평을 먼저 알고 읽으면 그 부분이 계속 눈에 들어와 평소라면 알아서 필터로 걸러 무난하게 읽었을 작품을 왠지 '악평 듣는 부분이 얼마나 별로인지 한번 보자!'라는 도전적인 관점을 갖게 해서 올바른 감상을 방해한다.
그것또한 독서의 묘미─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역시 묘미일지도 모르지만, 전부 읽고 리뷰를 쓰다 보면 과하게 혹평을, 주관이 아닌 객관으로서 내 의견이 아닌 인터넷 어딘가의 악평이 뇌리에 박혀서 영향을 받아 쓰지 않았나, 하고 의심을 할 때가 왕왕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봐버린 악평을, 혹은 호평을, 기억에서 지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기억술사─기억을 지우는 사람
하나. 기억술사는 해 질 녘에 나타난다.
하나. 기억술사는 녹색 밴치에서 기다리면 나타난다.
하나. 기억술사의 얼굴을 본다 해도 그 기억조차 사라지기 때문에 그의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하나. 기억술사는 사람의 기억을 먹고 산다.
하나. 기억술사가 한번 지운 기억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이 지우고 싶은 기억을 깨끗하게 지워준다는 도시전설 속 괴인 '기억술사'와의 인카운트 조건이다.
줄거리라거나 작중 등장하는 기억을 지우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은 이따 짧게 쓰기로 하고 역시 중요한 건 작품의 평가다.
내게는 결과적으로는 취향의 문제로 그저 그런 평타는 하는 작품으로 남았다.
우선 장르소설에서 '기억을 지운다'라고 하는 뻔하다면 뻔한 특수 능력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궁금했다. 하지만 내용상 특수 능력으로 살인을 하거나 범죄에서 도망가는 그런 서스펜스가 아니었다.
기억을 지우는 행위에 옳고 그름과 윤리와 가치관 도덕과 같은 매우 주관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이것이 의외였다─거기까지였다.
호불호로 나누자면 나에겐 차라리 서스펜스 쪽으로 나가는 게 더 재미있었을 것 같다. 작품은 계속해서 기억을 지우는 행위에 대해 인물 간의 가치관의 차이를 이야기하는데, 와닿지가 않는다.
주인공은 기억을 지우는 것에 무척이나 부정적이다. 다른 인물은 스스로 택하고 마지막의 수단으로 라면 긍정한다. 기억술사는 갈등하며 그럼에도 기억을 지워나간다.
모든 등장인물이 저마다 그럴만한 이유와 감정을 이야기하며 그 부정과 긍정에 대해서 독자가 납득할만한 서술을 해주는데, 전혀 와닿지가 않는다. 가장 기묘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심리와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들은 이야기 내내 계속해서 표현되지만 그럼에도 악착같이 기억을 지우는 행위에 부정적이고 남에게 참견까지 하는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런 지리멸렬한 독선은 독자를, 나를 짜증 나게 하고 주인공의 입장에 서기 꺼려지게 만들었다─이것이 첫 번째 감점요소였다.
같은 이유로 마지막 기억술사의 말들인데, 기억술사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것에 괴로워하지만 괴로운 기억을 지우고 도와줄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니까 눈앞의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도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자신의 감정만으로 기억술사의 룰을 깨고 부탁도 소원도 없이 가장 혐오하는 행위를 자신의 이기심으로, 기억을 지워버린다. 이걸 보면 쿄코의 기억을 지운건 순수한 선의도 아니었고 오히려 100% 자신을 위해 한 짓으로 보인다─밤길 트라우마를 지웠는데 주인공의 기억까지 지워졌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기억이 지워진 주인공은 눈앞의 당사자를 기억하는데, 노린 건가, 오류인가, 내가 놓친 것이 있는 건가─.
결국 괴롭다느니 누굴 돕느니 하는 말들은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을 스스로 긍정하기 위한 얄팍한 방편일 뿐, 끝에는 인간이 아닌 그야말로 도시전설의 괴인 같은, 흔한 도시전설의 결말이─작중 기억술사의 도시전설은 '입 찢어진 여자'나 '사람 얼굴을 한 개' 같은 도시전설에 비해서 오싹한 결말이나 임팩트가 없다고 언급된다─되어 '도시전설'로써 완성됐다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또 개인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장이 바뀌고 등장인물이 자주 바뀌는데 화자가 바뀌는 순간을 눈치 못 챌 때가 있었다. 특히 가나메에서 삼촌으로 바뀌는 부분. 읽기 편하고 빠른 전개는 장점이라지만, 필력의 문제일까. 내 문제일까. 번역의 문제일까.
다음은 장점으로 가보자.
장르소설들이 다들 상향평준화가 됐는지 흐름이 빠르면서 읽기가 편한 작품이 많아졌는데 이 작품 역시 그렇다. 이것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할 게 없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꼽자면─,
기억술사의 내용보다는, 등장인물들 중 기억을 지우게 되는 에피소드가 두 가지 나오는데 두개의 이야기가 기억술사를 찾는 플롯보다 재미있었다. 그래봐야 물론 작가가 설계한 플롯의 하나겠지만, 변호사의 이야기와 중학생 두명의 이야기가 깊게 빠져 읽는 부분이었다.
이 두가지 이야기에 만족도가 높아서 그런지 그 반동으로 마지막의 주인공과 기억술사의 이야기가 오히려 지리멸렬하고 뭔 소리 들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그렇게 여러 요소를 종합한 결과 '평타는 쳤다'이다.
장점보다는 단점과 취향의 부적합함이 더 컸다.
하지만 확실히 특이한 작품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비슷한 작품을 본 적 있는 듯하면서 떠올려보자니 떠오르지 않는 애매한 경계에 있는 작품. 기억술사의 장난인가.
달콤한, 기묘한, 애달픈 호러라는 수식어가 계속해서 붙어 다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만약 기억의 취사선택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의지로 지우는 것이라면 나는 기억술사를 긍정한다. 주인공처럼 악착같이 부정할 생각도 이유도 없다. 물론 기억은 유기적이라 공백이 생기면 부조화도 있을 것이고 떠오른 기억의 인과도 엉망진창이 될지도 모르지만, 순전히 자신의 선택. 기억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다.
★★★★☆☆☆☆☆☆
괴담+호러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