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소설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미쓰다 신조의 잘 만든 괴담집인 '괴담의 테이프'입니다.

 

괴담의 테이프

  • 표지가 좋다.
  • 각 단편들의 평.
  • 괴담.

괴담의 테이프

표지가 좋다.

일단. 이번의 표지는 극찬을 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이 책을 서점에서 눈여겨본 이유는 바로 표지 때문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서점을 구경하고 있는데 진열된 책들 중에서 기묘한 시선이 느껴져 찜찜한 기분으로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책을 고르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서성이던 차에 드디어 찜찜한 시선의 주인을 찾은 것이다.

 

돌담을 등지고 집 모퉁이에 몸을 내밀고 처마 밑에서 창백한 얼굴과는 대비되는 샛노란 우비를 쓰고, 공동 같은 눈구멍으로 조용히 그저 쳐다보고 있는 표지였다. 발견한 뒤로 고민도 없이 그 자리에서 계산대로 향했다.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하지 않지만 요즘의 책들은 표지가 전부다. 표지만 잘 뽑은다면 나 같은 독자들의 지갑은 저항력을 잃어버린다. 자제력을 상실한다.

 

반은 충동으로 산 이 책은 결과적으로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구매하기 전까지 나는 작가 미쓰다 신조를 전혀 알지 못했으니 이 표지가 가진 의미는 크다. 이 책이 나에게는 미쓰다 신조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표지는 단편이 시작될 때마다 나오는데, 볼 때마다 오싹 오싹한 게 무서운데도 한 번씩 계속 보게 되는 짜릿한 매력이 있다.

 

각 단편들의 평.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깔끔하다고 느꼈다. 테이프라는 매체와 자살자들의 죽기 전의 마지막 녹취록. 녹음되어 있는 자살자들의 이상한 언동들까지. 내 흥미를 순식간에 끌어당겼다.

 

빈집을 지키던 밤.

후반만이 아쉬웠다. 홀로 집을 지키며, 분명 혼자일터인 집안의 울림들과 인기척들. 가끔 혼자 집을 지킬 때 느껴지는 오싹한 적막감을 잘 표현했다. 다만 개인적인 문제로 나는 공포소설을 읽을 때 무언가의 좇기는 장면의 다급함과 긴박함에는 별로 감정이입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분량 늘리기나 사족이라고 생각될 만큼 심드렁한 반응이다. 애초에 무언가에 도망치는 장면은 다 비슷비슷해서 감흥이 없다.

 

우연히 모인 네 사람.

괴담적으로는 가장 만족스럽지 않나 싶다. 시작과 끝의 연결점과 섞여든 괴이, 사건이 끝나고 존재를 망각하는 인물들과 괴기 현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암시를 주는 마무리. 어디서 본듯한 설정도 물론 섞이긴 했지만 가장 괴이담 다운 단편.

 

시체와 잠들지 마라.

괴이담이라기 보다는 소재는 그렇지 않지만 SF의 느낌을 받았다. 미스터리로서는 합격점.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

애매하다. 표지의 일러스트만이 강렬하게 남는다.

 

스쳐 지나가는 것.

가장 별로였다. 위에서 말한 '좇기는 장면'이 심드렁하다고 한다면, 이건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냥 딱 이런 전개가 지루하다. 알맹이가 없다고 느껴지고 마지막마저 날림 전개의 냄새가 팍팍 풍긴다.

 

기우메
기우메

괴담.

다른 리뷰들에서 계속 언급했는데, 나는 괴담이 좋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찾게 됐고 지금은 오컬트 영화나 미쓰다 신조 같은 작가의 괴담 미스터리 소설들을 찾아보는 정도인데, (다른 마니아들 같은 전문성은 전무하다.) 여러 동네의 떠도는 괴담들을 찾아 듣다 보면 시작과 끝이, 소재가 비슷비슷하고 약간의 바리에이션만 주는 그저 그런 괴담들이 대부분이다. 

 

진부한 내용에 이끌어가는 이야기도 없이 가장 중요한 공포감마저 독자에게 닿지 않는 괴담들은 무수하게 많다. 물론 나보고 써보라고 한다면 0부터 창작한 괴담은 물론 기존 괴담에 바리에이션을 주고 쓰는 것 마저도 못하겠지만, 읽는 사람으로 써는 아쉬운 현실이다. 

 

눈에 보이는 분위기 조성도 없고, 스산한 사운드도 없다.

소설들의 공통점이지만 괴담은 더욱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나 드라마같이 오감을 자극해줄 부가적인 기술들 없이, 글만으로. 글자만으로 독자들을 괴담 속으로 끌어내려야 한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상상밖에 못 하지만 미쓰다 신조는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이번 책의 단편들은 100% 새로운 건 아니었지만 대분분이 신선하고 또 매력적이다. 미쓰다 신조의 작가 시리즈처럼 이야기 속에 잘 녹아들어 있는 메타픽션 요소들 역시 그렇고 독자를 빨아들이는 속도와 구성력. 괴담의 테이프가 나에게 미쓰다 신조의 첫 책이라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정도의 완성도로 만들어진 괴담집이라면 내 지갑은 언제나 열려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

 

미쓰다 신조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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