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은 일본의 문호라고 하면 바로 떠오를 인간 실격의 작가 다자이 오사무 '이십 엔, 놓고 꺼져'입니다.

이십 엔 놓고 꺼져

  • 표지, 출판사 소와다리.
  • 책의 내용물.
  • 본문에 대하여.
  • 마무리.

이십 엔 놓고 꺼져
이십 엔, 놓고 꺼져

출판사 소와다리.

정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언급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소와다리 출판사의 책을 구매하고 리뷰를 쓸 때마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계속 언급할 것이다.

이 감각적인 디자인. 책은 표지가 전부이고 표지가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 책을 보자. 새하얀 바탕에 검은 명암으로 다자이의 실루엣을 완성했다. 거기다가 제목인 '이십 엔 놓고 꺼져'까지. 단편집은 단편들 중 하나를 제목을 혹은 대표작을 단편집의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다자이 자살 기도
동반자살 기도. 여자는 끝내 절명, 슈지(다자이) 씨는 현재 중태.


다만 이 단편들을 전부 읽었을 때 '이십 엔-'이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모두가 납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짧지만 강렬한 작품들이 넉넉하게 들어있다. 물론 나는 가장 인상 깊고 재미있게 봤지만. 아무튼 그런 작품. 그리고 단편집 속의 중편도 아닌 짧은 작품의 제목을 이 책의 표지 제목으로 쓴 것에 아주 영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십 엔, 놓고 꺼져.

제목부터가 이미 눈길을 끌지 않는가. 이 표지와 이 제목을 마주해 버리면, 그다음 할 일은 지갑을 열고 구매하는 것뿐이다. 

동반자살 상대
동반자살 사건보다 예뻐서 화제가 되었던 故다나베 시메코.

책의 내용물.

지금은 사라졌다고 알고 있지만, 역시 소와다리의 가장 큰 장점이자 특징은 오른쪽 '세로 쓰기'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여러 가지 사진들과 자료들이다. 

 

그리고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에는 쉼표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다자이는 글을 쓸 때 자신의 호흡대로 쉼표를 자유롭게, 어쨌든 많이 사용했는데, (폐가 망가졌던 복선인가.) 소와 다리에서는 그 다자이의 호흡을, 쉼표를 완벽하게 재연했다. 쉼표대로 따라 읽는다면 다자이가 자신의 작품을 집필할 때 읽어간 리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은품

상술했던 단편들 사이사이에 첨부되어 있는 많은 사진들. 

단편을 읽으면 중간중간에 여러 사진들이 삽입되어 있는데, 이것이 또 책의 풍미를 더한다. 다자이의 사진들과 그에 관련된 옛 신문기사, 그가 머물러서 작업을 했던 찻집과 문학론을 토로하던 술집 등. 간접적으로 그 시대의 공기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사은품으로 책갈피와 엽서 종이책 부록으로 단편소설이 있는데, 이게 또 마음에 쏙 들게 디자인되었다. 

사은품의 앞뒤
사은품의 앞 뒤.

본문에 대하여.

이 책의 탄생 배경은, 소와다리의 킹이신 한동근 씨가 '인간실격'의 암울함과는 다른 상큼한 다자이를 소개하고 싶어서~ 가 그 이유다. 결과적으로 인간실격 2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한 권이 됐다고 자책을 하셨다. 이거야 개인적인 감상의 범위니까 어쩔 수 없지만, 나 역시 전부 읽고서 늪에 다리를 빠뜨린 기분이었다.

 

수필이라지만 소설의 형식이 아닌 것도 있고, 5줄도 안돼서 끝나버리거나 자신에게 향한 악의에 대한 편지, 충고 감사와 같은 우편들.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듯한 이야기까지 있는데, 짐작하기론 이게 가장 독소가 강하다.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끝이 나지만 다자이만의 지론과 이해. 철학과 문학론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심층을 써 내려갈 때,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읽어가는 기분이 드는데 자신이 지금 어디 서있는지 어질어질하게 된다. 

 

(너무 자신의 지론만 늘어놔서 따라 가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워 진절머리 날 때도 있다. 심하다 싶으면 다음 편을 읽자.)

환한 다자이

그러면서 결국 페이지를 넘기고 넘기다 보면 작가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 이게 다자이의 매력이 아닐까 다시 한번 감탄했다.

 

물론 정말로 암흑 천지인 다자이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도 있고, 통렬한 아련함을 느끼는 단편도 있다. 물론 다자이 특유의 불쾌하고 불안하게 무너지는 이야기도 가득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요소는 다자이를 둘러싼, 다자이가 느끼는 악의 속에서 반짝이는 찰나의 유쾌함이 책 곳곳에 심어져 있다. 

 

'천하찻집' 주위의 이야기들과 '즉흥적이 아니다.' '미소녀' '어떤 충고' '약속 하나'  '부모라는 두 글자' 등 인상 깊고 즐거운 단편들이 무척 많다. 하도 많아서 코멘트는 빼고 몇몇 제목들만 나열한 것이다.

천하찻집
다자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천하찻집.

읽으면서 느끼는데, 연보의 순서에 따라 작가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서 작품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게 썩 기묘하다.

마무리. 

다자이 오사무. 팬이지만 알면 알 수록 불가해한 작가다. 타인의 악의에 대해서 너무나도 민감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작품을 읽어봐도 여전히 어렵다. 조금만 더 무감각하거나 무심했더라면 다자이는 그럭저럭 즐겁게 그럭저럭 천명을 다하고 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자이 주위에는 왜 그렇게 무례한 사람이 많았을까.

 

다자이의 유명한 작품들을 읽고 이 기묘한 작가에 대하여 조금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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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사양

쓰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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