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러소설 대상 수상작
'제25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의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아쉽게도 호러소설 대상은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고 한다. 대신 요코미조 세이시의 미스터리 대상과 통합해 새로운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 호러 대상'이라는 이름으로 대상작을 뽑고 있다고 한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상의 이름에 '요코미조'의 이름이 붙은 게, 작가라면 더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합쳐진 만큼 경쟁자들은 더 늘어서 수상하기가 쉽지는 않아 졌겠지만 앞으로 독자들은 기존의 수상작보다, 상이 두 개 합쳐진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서 1위를 차지한 작품을―두 배는 재미있을 작품을 마주하게 될 테니 잔뜩 기대할 수 있다.
후회하는 소녀와 축제의 밤
이 작품은 총 네 가지의 에피소드가 수록된 연작 단편 소설이다.
등장인물 한 명이 괴이한 체험을 하거나 괴로워하다가 주인공인 마쓰리비 사야의 조언과 도움으로 구사일생하고, 최종적으로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마쓰리비 사야의 괴이한 방식을 이용한 간절한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세 단편에서 각각 도움을 받은 세 명이 사야를 돕게 되는 이야기다.
바닥 아래 숨은 것
땅바닥을 보며 걷는 게 버릇인 학교 선생 사카구치는 동료 선생을 돕기 위해 망가진 책상을 옮긴다. 구관으로 향하는 도중
학생인 마쓰리비 사야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수많은 사각형으로 이뤄진 구관의 바닥을 뒤집는 '뭔가'가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저 학생들의 괴담으로 여긴 사카구치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흘려듣지만, 퇴근을 하기 위해 교실 열쇠를 찾지만 잃어버린 상태였고, 떨어뜨렸다면 구관에서 일 것이라 생각하여 다시 구관으로 향한다.
구관에 도착한 그의 귓가서 들려오는―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뭔가를 긁어 파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는 점점 자신의 발밑으로 가까워 오기 시작한다.
첫 단편이자 가장 호러의 느낌이 강한 에피소드였다.
그리고 그나마 가장 섬뜩하다고 느낀 에피소드였다. 함께 걷는 도중 뜬금없이 구관의 괴이에 대해 설명하는 사야가 이상했지만―마지막 에피소드까지 다 봤어도 사야는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구관에 온 김에 노파심이나, 괴이가 나올 느낌이 든다거나 하는 그런 감각에 의해 사카구치에게 괴이와 그 파훼법을 알려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성격상 직접 도왔을 것이다.―반전도 그렇고 아무튼 무난한 스타트였다.
기척
매일밤 원인 모를 옆구리의 통증과 함께 찾아오는 커다란 지네 같은 무언가. 이 벌레로 인해서 아사이는 불면증에 시달려 점점 몸에 한계가 오고 있다. 친척에게 듣기로는 벌레의 접근을 막기 위해선 신사를 피해야 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어느 날 불면증으로 인해 학교에 늦은 아사이는 신사를 가로지르는 지름길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 신사 근처에서 학교의 선배로 추정되는 여학생을 만나게 되고 여학생은 신사가 지름길이라며 아사이의 팔을 잡아끌어 신사를 지나가게 한다.
결국 그날 밤 벌레는 아사이의 몸에 접근하게 되고 기겁한 아사이는 밤새 동네를 뛰어다니며 도주극을 벌이게 된다. 그렇게 피폐해진 아사이 앞에 전날 신사에서 봤던 여선배―마쓰리비 사야―를 다시 만나 자포자기로 자신에게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야기가 끝난 후 사야에게 벌레의 파훼법을 전수받는다.
호러에게 쫓기는 그런 내용은 언제나 지루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선 그렇게 길지 않았다. 이 단편은 호러보단 반전에 힘을 쓴 이야기인 듯 4편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이 단편의 후일담이 궁금할 정도다. 그리고 또다시 사야의 이야기인데, 아무리 후배에다가 지각 위험이라고 해도 처음 보는 남학생의 팔을 잡아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이미지가 마지막 에피소드를 봐도 딱히 없어서 이 장면이 가장 위화감이 들었다.
시게토라
여섯 살 이토카와는 놀이터에서 철봉연습을 하다가 원피스를 찢어버린다. 그때 의문의 남자 시게토라가 나타나 새로운 원피스를 주겠다며 거래를 하자고 꼬드긴다. 이토카와는 거래를 승낙했지만, 시게토라가 거래의 대가로 부자에 뚱뚱한 남자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 것을 목격하게 되고, 10년 뒤 대가를 받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수년을 두려워하던 이토카와는 시게토라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10년이 되는 날 나타난 시게토라를 마주하게 된다. 그때 교실에 마쓰리비 사야가 등장해서 이 불공정 거래의 해결법을 알려준다.
이건 무난하게 재미없었다. 복선을 너무 빨리 깨달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라고 할까, 너무 평범하다는 느낌을 받아서 더 그런 걸 지도 모르겠다. 앞의 단편들로부터 괴이한 존재들도 나름의 룰에 따르고 그 파훼방법도 있는―그저 부조리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란 걸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시사했기 때문에 고작 원피스 한 벌로 큰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거기다 초반의 '부유해' 보이고 '뚱뚱한'남자가 대가를 치르고 내장인가 지방인가 조금 남기고 사라진 걸 생각하면 결과는 뻔했다. 시게토라가 둔갑한 인물의 정체는 눈치 못 챘는데, 이건 후반의 대화에서만 알 수 있으니 패스.
그리고 괴이에는 일본작품 특유의 말장난 혹은 단어들의 언어유희 같은 것으로 이름 붙은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다시 사야의 얘긴데, 중간에 이토카와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는데 이번엔 전편들과 달리 이토카와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편 '기척'에서 아사이를 신사의 지름길로 끌고 간 거에 비해 이번엔 알면서도 너무 소극적인 게 또 거슬렸다. '캐릭터 성'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뭔가 오락가락하는 느낌.
축제 날 밤에
사카구치는 마루를 뒤집는 무언가를 목격하고, 그 존재를 알려준 마쓰리비 사야와 좀 더 대화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시도 끝에 대화할 기회가 생겼지만, 마쓰리비의 친구 이토카와의 등장으로 대화는 흐지부지 끝나는데, 시간이 지나고 이번엔 이토카와가 찾아와 얼마 남지 않은 축제날의 일정을 묻고 학생이 고민하고 있다며 강압적으로 약속을 잡는다. 방과 후 이토카와에게 불려 간 사카구치는 복도에서 기다리는 마쓰리비 사야와 의외의 인물인 아사이까지 마주하게 된다.
괴이를 마주했던 네 명. 그중 마쓰리비 사야에게 도움을 받은 세명.
마쓰리비 사야는 이번 축제날 일어날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부탁을 해온다. 축제날 자신의 오빠가 산에서 내려온 마물에게 습격당해 살해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결국 네 명은 축제날 밤 마물을 저지하기 위해 사카구치의 차에 올라탄다.
가장 재미없는 마지막 에피소드였다.
우선 호러를 읽으면 항상 언급하는 쫓기는 긴박함이 글로 읽어서는 아무리 잘 써도 와닿지 않고 추격전을 벌이는 내내 지루할 뿐이다. 그리고 이 편의 반전도 마찬가지. 중반정도 읽다 보면 노골적일 만큼 복선을 많이 깔아 뒀다고 생각한다. 아마 누구나 적어도 중간부터는 눈치챌 것이다.
사야의 답답함도 있다. 부모를 둘 다 살해당한 과거가 있다고 하지만, 반전의 비밀을 말하지 못해 이야기를 질질 끌게 되는데, 이유가 그저 믿지 못한다 정도의 이유다. 자기가 하려는 일과 반전의 비밀을 알렸을 때의 세명을 믿지 못하는 이유의 차이가 뭐라고. 결국 자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괴이의 이름, 말장난의 근본이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없다. 그저 '마물'이라고 할 뿐. 특징도 흔히 나오는 덩치 큰 괴물이고 힘세고 빠를 뿐이다. 무엇보다 논리도 이론도 행동 양식 같은 것도 없다. 다른 괴이들과 비교해서 너무나 부조리한 존재다. 물론 파훼법으로 '해가 뜰 때까지 마을 안을 돌며 피해 다니면 된다'인데, 기존의 세 괴이들과는 차이가 너무 난다.
바닥 뒤집는 괴이는 무차별 하지만 위치가 한정되어 있고, 알면 피하기도 쉽다.
기척의 벌레는 유례도 나오고 파훼법도 있거니와 결과적으로 부조리하지도 않다.
시게토라는 불공정 거래긴 하지만, 가장 룰에 따르는 괴이이며, 뒤 끝도 없고 파훼법도 있고, 무엇보다 무차별적이지 않고, 자신의 룰대로 상응하는 대가만 받아간다. 오히려 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내 뇌피셜이며 불확실 하지만, 대가의 내용도 차분히 물어보면 알려줄 것 같은 느낌이다―초반에 사라진 뚱뚱한 남자의 반응을 보면 대가를 알고 있는 듯했다―.
무엇보다 그 허무한 결말.
압도적으로 부조리한, 국소적 코즈믹 호러 같은 존재가 겨우 그 정도로 끝난다는 게 어처구니없다. 그리고 모두가 하하 호호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건 없지만, 사야의 오빠란 존재는 너무 아깝다. 네 명의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좀 떨어져서 캐릭터들 간의 시너지가 부족했는데, 그에 비해서 잠깐 묘사된 오빠의 캐릭터성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선생 사카구치의 결말. 결국 여자친구와 그럴 거 같았지만, 첫 단편 '바닥 아래 숨은 것'에도 언급 없던 여자친구의 존재가 뜬금없이 마지막 에피소드에 첨가되어 이야기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데 너무 뜬금없어서 아무런 감정이입도 안된다. 결국 후반에 힘이 다 빠져버린 느낌.
마지막으로 사카구치에게 축제날 도움을 요청하던 이토카와처럼 막무가내의 철판깐 캐릭터는 죽여버리고 싶다. 결국 이토카와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됐고, 그 자리에 있던걸 빼면 아무런 위험도 짊어지지 않았다.
에피소드별 재미있는 순서는 기척─바닥 아래 숨은 것─시게토라─축제 날 밤에 다.
이미 일본에는 후속작도 나왔다고 한다.
이런저런 말을 했지만 이 정도면 후속작이 국내에 출판된다면 구매할 의향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