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괴담

미쓰다 신조

오랜만에 돌아온 미쓰다 신조의 신작이다!─라고 말하면 어폐가 좀 있지만, 어쨌든 오랜만의 미쓰다 신조다.

아마 작년 겨울 '쾌: 젓가락 괴담 경연'이라고 하는 의미불명인 제목의 작품이 출판됐지만, 그 작품은 일본의 미쓰다 신조, 그리고 홍콩과 타이완의 유명 작가 4명이 더해져 총 5명이 참여해 만든 단편집이었다. 

 

홍콩 타이완쪽의 작가를 알지 못하고 기대도 안 하며 관심도 없는 만큼 미쓰다 신조의 단편 하나만을 위해서, 비싸진─요즘 책값보다 더욱 비싼 2만 원을 쓰기에는 내 팬심이 부족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쓰다 신조의 작품도 슬슬 내안의 평가가 평가절하되고 있으니 눈물을 머금고, 아니, 2만 원을 머금고 구매를 포기했다. 

 

하지만,

 

온전하게 한 권 전체가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전제가 달라진다.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토리가 달라진다. 그렇다고 하면 고민 없이 구매 버튼을 누를 수 있다. 

 

우중괴담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항상 그렇듯, 이 작품도 역시나 메타픽션인 요소가 많이 있다.

이야기 속의 작가 자신이 의도적으로, 혹은 우연찮게, 연속적으로 괴담을 듣게 되고, 미쓰다 신조의 앞으로 괴담이 모인다. 그 주워모은─모인 괴담들을, 괴이 담을 소설의 형식으로 만들어 묶은 다섯 가지 단편집이다.

 

은거의 집

아버지를 따라 어느 시골의 저택에서 7일간 지내야 하는 이야기다. 그곳에서는 여러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하는데, 

 

하나 7일간 울타리 밖을 나가면 안 된다.

하나 자신의 본명을 이야기 해선 안 된다.

하나 7일간 함께 지내는 할머니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한다.

하나 외부인을 봐도 대화하면 안 된다.

하나 휘파람을 불면 안된다.

 

호기심 많은 소년은 당연히 대부분의 규칙을 어겨버리고 자신과 할머니의 안전을 위협한다.

 

미쓰다 신조의, 요즘 세상의 괴담의 고질적인 문제가 바로 드러난다. 긴박한 등장인물들과 다르게 작중 표현되는 괴이들의 공포감이 전해지지 않는다. 소년의 공포가, 절실함이, 무력함이 조금도 와닿지 않는다. 

 

산속에서 쫓기고, 등 뒤에서 무언가가 따라오고, 집안까지 침입해 문짝 하나를 경계로 자신을 에워싸고 있다.

문밖에서는 스, 스, 스─하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고, 소년은 두려워서 눈을 뜰 수가 없다. 귀를 막아도 들려오고! 눈을 감아도 기척이 느껴진다! 격해지는 두통! 심장은 날뛰고! 긴장되어 팔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불속에 파묻혀 공포에 떨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뿐!

 

무엇하나 와닿지 않는다.

마를 내쫓는 물건이나 의식도 항상 비슷하고, 그놈의 격자무늬는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괴이들은 대부분 격자무늬로 사냥의 기회를 한 번은 놓친다. 이런 요소들은 메타픽션이라는 테마 때문일 거 같은데, 어디 괴이들에게 격자무늬가 좋다는 전승이 분명하게 남아있어 그 '사실'을 고집하는 듯하다. 

 

차라리 이런 사소한 디테일은 창의적인 다른 아이템 혹은 시스템으로 작가 자신이 창조하면 안 될까.

어디까지나 괴담을 진지하게 마주하기에 어쩔 수 없는 작가의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이젠 단점으로밖에 안 보인다.

 

예고화

아이가 그린 그림으로 아이의 내면에 있는 문제점을 파악한다는 아동화 연구가 있다고 한다. 그 연장선으로 괴담들이 수집되고, 끝에선 주위의 사고를 예언하는 그림을 그린 아이가 나타난다. 

아이의 그림은 사고의 예언일까, 그림을 그림으로써 사고를 일으키는 것일까.

 

그래 오히려 진짜 괴이 같은 무언가가 등장하는 '은거의 집' 같은 것보다 훨씬 새롭고, 도시괴담 같다. 마지막에 굳이 정확한 해석도 필요치 않다. 그런 건 도조겐야시리즈 같은 추리 미스터리 호러에서 확실히 해주면 된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

회사원 작가가 단편부문 수상을 한 뒤 작품 구상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개인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경비 알바를 하며 겪은 이야기다.

 

'은거의 집'과 똑같은 단점들이다. 그냥 과정과 소품만 다를 뿐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찾아보면 비슷한 결의 내용이 더 있을 것이다. 괴담 소설의 한계인가. 중간에 이사코라고 하는 가장이 짊어진 무게가 이 작품에서 가장 눈물 나게 무섭다. 

 

부르러 오는 것

몸이 불편한 할머니 대신 법사에 참배하러 가는 이야기.

 

'은거의 집'과 비슷한 단점이 있지만, 무언가에 쫓기거나 쓸데없이 벌벌 떠는 장황한 묘사가 적어서 훨씬 낫다. 부르러 오는 괴이를 피하기 위해 현실적인? 다양한 노력을 하는 결말 쪽도 마음에 든다.

 

우중괴담

옛 지인에게 연락이 와서 만나러 간다. 

지인은 비 오는 날 산책로를 벗어난 곳에 있는 정자에서 자신과 가족 구성이 같은 노인이 겪은 괴이 담을 듣게된다. 그 후 이웃이 다친다. 다음에는 노인의  손녀가 와서 괴이담을 얘기하고, 또 다시 이웃이 다친다. 그 다음에는 손녀의 아버지가 괴이담을 말한다. 다시 이웃이 다친다. 그런 반복을 겪고, 그 일련의 사건들을 미쓰다에게 상담하는데.

 

이 패턴이라고 할까, 레퍼토리도 이제 익숙해진다.

'은거'와 '경비'처럼 괴이에 쫓기는 내용과, '예고화'처럼 괴이는 없지만 미스터리한 괴담의 발생. '부르러'는 그 중간.

그리고 항상 마지막 단편은 앞의 동떨어진 듯 보이는 괴담들의 공통점이나, 연결점이 발견되어 단편들의 결말을 찝찝하게 마무리 짓는다.

 

그 후 후일담으로 이야기를 엮어내고 앙화나 재앙이 올까 두려움을 내비치는 듯 호들갑을 떨며 마무리.

 

평소보다 평가가 박한데, 실망감이 많은 작품이다.

미쓰다 신조의 단편집도, 논 시리즈도, 괴담 집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읽은 건 처음 같다. 굳이 카테고리를 나누자면 '괴담의 테이프'와 성격이 비슷한데, 만족도가 다르다. 

 

버리기 아까운데 쓰기 애매한 B급 아이디어를 모아 엮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럴 거면 도조겐야처럼 추리가 메인인 시리즈나 내줬으면 좋겠다. 괴담을 읽는 기분이 전혀 안 든다.

 

박한 소리만 했으나,

도시전설

도청도설

가담항설

미쓰다의 작품과는 엄밀히 말하면 결이 다르지만,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써주는 작가가 없는 만큼 일단 온전하게 미쓰다만의 작품이라면 계속해서 구매할 생각이다.

 

★★★☆☆☆☆☆☆☆

미쓰다 신조의 다른 작품

노조키메

괴담의 집

괴담의 테이프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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