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_바다

 

노인과 바다

아무리 유명한 고전 소설이라고 해도, 어떤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고 지겹고 지리멸렬하게 읽히는 그런 작품도 있다. 명작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이름값과 세간의 떠도는 명성, 누구나가 칭송하는 걸작─그런 작품을 읽었을 때 재미도 없고 느껴지는 무엇도 없다고 하면 어쩐지 죄책감마저 든다.

 

그런 고뇌를 안고 가끔 한번씩 고전 문학을 찾아 도전해본다.

솔직히 별 관심도 없을때가 많지만, 들려오는 명성을 생각하면 한 번쯤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싹트고, 우연찮게 저렴한 가격이나 중고, 미니북등으로 파는 걸 발견하면, 잽싸게 하나씩 주워오는 느낌으로─그렇게 읽고 있다.

챌린지 하고 있다.

 

물론 취향에 안 맞으면 길든 짧든 일반 책 한 권 완독의 두배쯤 되는 시간을 들여 꾸역꾸역 읽어야 하지만, 진짜 돈도 시간도 아깝지만─아무튼, 그런 기특한 내 도전정신 덕분에 이번에는 당첨을 뽑은 것 같다. 

 

쓰레기냐. 대박이냐. 모 아니면 도. 이판사판의 건곤일척! 두근두근 갬블 맛이 짜릿하다. 참을 수 없다. 못 먹어도 고 인 것이다.


 

무대는 망망대해! 배역은 조각배 위의 낚시꾼 노인과 거대한 청새치! 두 종(種) 간에 벌어지는 소금 냄새나는 투쟁의 이야기. 이것이 노인과 바다의 이야기다.

 

도입부의 인상 깊음은 노인 산티아고에게 헌신적인 소년 마놀린의 존재였다. 이야. 이렇게 예의 바르고 노인존중을 보여주는 소년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갸륵한 마음씨에 미소가 절로 나고 마음이 따땃해지는 것이, 이게 바로 인류애─? 인 것인가 싶었다.

 

그렇게 날이 밝고 노인은 홀로 먼바다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노인은 망망대해에서 드디어 거대한 청새치를 낚싯줄에 거는 것에 성공하고, 며칠 밤낮의 끈기 싸움의 서두를 열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여기부터라고 봐도 좋다.

조각배 위에서 홀로, 수십 미터 아래. 낚싯줄에 걸린 청새치의 존재를 느끼며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는 노인은 고독을 느끼며 여러 감상을 담은 혼잣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 대상은 바다이기도 하고 하늘이기도 하며 날아와 앉은 작은 새이기도 했고, 투쟁의 대상인 청새치에게 까지 형제애를 느끼며 동질감을 갖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비치는 노인이 가진 바다와 새, 물고기 등에 대한 경외심은 이야기를 읽는 데에 강한 닻이 되어준다. 분명 센티멘탈한 독백들일진대, 허밍웨이의 무기인 강건한 문체로 인해 덤덤한, 으레 그런 것이 당연한 것인 양,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낚시 줄로 인한 손바닥과 등의 상처. 목은 마르고, 배는 고프다. 먹을 것은 날생선뿐. 고비가 올 때마다 노인은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극복할 힘을 바랐고, 끝내 인내 싸움에서 이긴 노인의 손에 청새치는 명을 달리하게 된다.

 

자신의 배보다 큰 청새치를 배에 묶고, 되돌아가는 일만 남은 노인에게 또다시 몇 번이고 시련이 찾아온다.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가증스러운 상어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노인은 작살로 상어를 찔러 죽이고, 작살을 잃으면 노끝에 칼을 묶은 창으로, 창을 잃으면 몽둥이로, 몽둥이를 잃으면 배에 달린 키의 손잡이를 뽑아 휘둘러 상어들을 해치웠다.

 

하지만 배에 묶인 청새치의 살점은 남지 않았고, 노인은 그 처참한 모습을 보며 안타깝고 미안해한다.

기나긴 사투를 끝낸 노인은 천근만근의 몸을 이끌고 마을에 도착해 잠이 든다.


노인과 청새치. 낚시의 이야기로 이렇게 힘 있는 이야기가 탄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투쟁과 사투. 달성감과 상실. 끝내는 허무함과 무력함이 만연했지만, 노인이 다시, 기력을 회복한 뒤 바다로 나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 작품은 분명 공허한 허무가 아닌 고결한 투쟁의 이야기다.

 

그건 그렇고 허밍웨이의 연보를 보는데 이 사람 결혼과 이혼 재혼을 어마어마하게 한다. 거기다 사고는 또 엄청나게 당한다. 이 정도의 밀도 있는 삶을 살아야 작가를 하는 건가. 끝은 자살이지만─.

 

역시 문호는 죽어서 완성되고, 자살이라면 격이 더 높은지 모르겠다.

 

이 사투 속에서 날생선을 어찌나 요령 있게 맛나게 먹는지. 나도 오늘 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어를 먹을 것이다.

허밍웨이 스페셜 다이키리랑 먹고싶은데 그건 없다.

 

★★★★★★★★★☆

나의 투쟁 / 아돌프 히틀러

사양 / 다자이 오사무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 파울로 코엘료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