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_모서리에_머리를_부딪혀_죽은_사건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구라치 준을 처음 접한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그러니 당연히 작품을 접한적도 없고 이름 역시 들어본 적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구매한 건─도전한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 

평소라면 이런경우 표지를 보고 판단을 하겠지만 표지보다는 제목이 너무 인상 깊었다. 게다가 작품을 구매하고 돌아와 살펴보니 표지의 빡빡머리의 묘사가 자세해서 징그럽다.

 

장르분류는 미스터리/스릴러라고 하지만, 읽어본 바로는 미스터리도 추리도 있지만, 단편집이라서 각 단편의 분위기가 전부 다르다. 

블랙 코미디 같기도 하고, SF같기도 하고, 독자에 따라선 유머단편집 같기도 할 것 같다. 명확하게 추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단편은 마지막 단편이다.


ABC살인

장르편향 독서가들이라면 바로 알만한 페러디 제목이다. 시작하는 단편으로는 유쾌하게 읽었다. 주인공이 한눈에 봐도 쓰레기 같은 인물이라 망설임 없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단, 전개는 좋았는데 결말에서 힘이 빠진다. 허무하다고 할까. 어처구니가 없다고 할까. 이런 내용을 쓰는데 무슨 의도나 메시지가 있을리 만무하니, 이 단편 하나로 작가의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기묘한 단편이다.

 

사내편애

처음엔 제목을 '사내연애'로 잘못 읽었다.

사내편애라니. 직장상사가 주인공을 편애해서 시기 질투라도 받는 그런 흔해빠진 스토리를 상상했는데, 역시 난 작가같은 직종에는 몸담지 못할 뇌인 듯하다. 주인공을 편애하는 건 간단히 말해서 사내인사를 총괄하는 슈퍼테크놀로지 인공지능이었다. 

마더컴이라고 불리는 이 인공지능은 승진, 연봉 인상, 전근, 영전, 배속, 인사이동, 자리 재배치까지, 회사내에서 사원들의 모든 행동을 보고 판단하여 각종 결정권을 쥐고 있다. 그 마더컴이 주인공만을 편애해서 직장상사와 동기 후배들에게 기묘한 대우를 받게 되는, 해프닝들이 일어난다.

 

처음 주인공과 마더컴의 대화와 편애는 유머로서 심각함같은건 느껴지지 않아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었지만, 직장상사들의 비위 맞춰주기와─마더컴이 그렇게 시킨 거지만─동기들의 거리감을 보며 마더컴의 차별적인 편애가 주위사람들이 주인공을 역차별과 같은 배척을 하게 만들었다.

마더컴의 흉계였지만 후배여직원의 몸까지 불사르는 출세욕은 대단했다. 결국 참지못한 주인공은 마더컴에게 퇴사를 선언하고 마더컴의 집착 어린 말들을 뿌리치고 회사를 나온다. 그리고 다른 회사의 면접을 보러 간 주인공은 그 회사의 면접관으로 있는 마더컴에게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불합격당하고 끝이 난다.

 

이 편에서 '특수설정'. 그러니까, SF 같은 설정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이 가장 재미있었다. 설정도 설정이고 차별에서 역차별. 마지막의 아이러니까지.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주인공은 불합격을 당하고 후회를 했을까. 나였다면 편애를 받을 때 이득을 빨아먹다가 마더컴의 변덕으로 편애가 끝나면 적당히 지내거나 그만뒀을 거 같지만─딱히 악의를 내비치거나 위법을 행하는 모습은 안 보이니─, 인간 그렇게 대놓고 낯짝 두껍기는 힘들다는 말이겠지.

 

파와 케이크의 살인 현장

여대생이 죽어있다. 그런데 죽어있는 모습이 기괴하다. 천장을 보고 죽어있는 시체의 입에는 파가 깊숙하게 천장을 향해 꽂혀있고, 머리맡에는 케이크가 세 개 나란히 놓여 있다.

슬슬 눈치채겠지만 이 작품은 미스터리와 추리는 있어도 딱히 진실을 밝히는 게 목적이 아니다. 이 단편 역시 그렇다. 기묘한 사건현장에 그럴듯한 해석을 내비치고 그렇게 끝이다. 과학적이지도 않고 오컬틱 하기까지 하지만, 범인의 정신병 같은 정신을 기반으로 추측한 것이니 이해된다. 

다만 흥미진진한 임팩트 있는 사건현장에 비해서 결말이 밍밍한 건 아쉬움이 남는다.

미쓰다 신조나, 교고쿠 나츠히코정도의 그걸 기대한 건 아니지만.

 

밤을 보는 고양이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간 주인공. 그 집 에는 미코라는 고양이가 사는데 밤마다 한 곳을 가만히 응시한다.

 

가끔 짐승들이 한곳을 응시하는데서 출발한 이야기 같은데, 가장 재미없다. 내용의 전개도 그저 분량 늘리기 같고, 결말 역시 누구나가 예상 가능하고 아무런  특별함이 없다. 보통 이런 밋밋한 내용은 마지막 한 장에서 생각지모 못한 또 다른 한방이 준비되어 있을 때가 많은데 이건 그러지 않다.

 

두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혀 죽은 사건

표지의 제목을 장식한 작품이다. 그런데 밤을 보는 고양이와 같이 재미가 없다. 제목으로 인한 기대가 높아진 탓에 이 단편이 더 악질이다.

 

쓸데없이 장황한 배경설정과 함께, SF적인 설정을 차용했어도 구차하게 느껴지는 추리─마지막에 뒤집히지만─까지.

제목의 어그로와 표지 그림에 악의마저 느낀다. 표지와 다르게 내용을 읽으면 두부에 피가 묻었다는 묘사는 없다. 피가 묻었다면 두 개의 추리 모두 틀리고 작가가 만들 결말이 더 어려웠을 텐데, 실망이 크다.

 

네코마루 선배의 출장

마지막 단편. 재미없다.

빈틈은 없지만 결말에서 주는 충격이 미미하니까 작품 전체가 인상이 흐릿하다. 이건 마지막 단편이고 가장 긴 내용이라 더 그런 거 같다.

그리고 네코마루 선배라는 인물은 탐정역을 맡는데, 작가의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이 네코마루 선배는 탐정의 스테레오타입 그 자체인 듯 시종일관 거슬리게 하고 조수에게 구박을 하는데, 읽으면서 짜증이 난다. 홈즈는 이렇지 않다.

다른 시리즈의 주인공을 단편으로만 접한 부작용일지도 모르지만 내용도 인물도 흥미 없어지는 그런 편이 됐다.


결국 애매한 물건이 된 거 같다.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가 떨어지는데 읽기가 지루할 정도였다. 작가의 명성은 대단한 것 같지만 굳이 찾아 읽을 거 같진 않다.

 

재미를 떠나서 비슷한 작가를 찾자면 니시자와 야스히코. 누가 선배인지는 모르지만 읽으면서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계속 떠올랐다. 이작가를 읽을 바엔 국내에 더 많이 출판된 니시자와 작품을 읽는 게 나을 것 같다.(다 읽어서 더 이상 읽을 게 없지만)

 

★★★☆☆☆☆☆☆☆

 

살의가 모이는 밤 / 니시자와 야스히코

일곱 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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