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죽은 남자/니시자와 야히코/318p/북로드/이하윤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가 니시자와 야스히코.

작품의 특징은 크게 SF를 섞은 미스터리와 일반적인 추리 미스터리다.

일반 추리의 대표는 단연 닷쿠&다카치 시리즈인 '그녀가 죽은 밤', '맥주별장의 모험', '어린 양들의 성야' 이 세 권이다.

안락의자 탐정의 형식으로 대학생 4명이 한자리에 앉아 맥주를 수십 캔씩 마시며 추리를 경쟁하는 이 시리즈는 인물들의 개성과 만담 같은 재미와 추리적인 재미 두 가지다 만족하는 시리즈다.

 

그리고 SF로는 '인격 전이의 살인',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과 이번 리뷰의 '일곱 번 죽은 남자'가 있다.

언 듯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로 가득한 추리소설에 SF적인 장치가 가미되면 독자와의 추리대결이 불공정해질 위험이 있지만, 이 작품들은 그런 우행을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소재들을 다채롭게 활용하여 추리소설의 현실적인 한계를 높여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코믹한 요소를 많이 포함되어 추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독자들에게도 우선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 이 '일곱 번 죽은 남자'이다.  

1995년 작.

일곱 번 죽은 남자.

고등학교 1학년인 주인공 '오바 히사타로'는 기묘한 체질을 갖고 있다. 

그 체질이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하루를 아홉 번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반복 함정'이라고 이름 붙인 이 체질은 어릴 때부터 한 달만에 여러 번, 적으면 두 달에 한두 번으로 발생 주기까지 렌덤인 골치 아픈 체질인데, 이 반복되는 9일은 기본적으로 처음 반복 함정에 빠진 날인 오리지널과 비슷하게 흘러가며 자신의 행동으로 어느 정도 유지하거나 바꿀 수 있기에 언듯 편한 능력 같지만, 즐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히사타로는 이제는 질병으로까지 생각하며 주위에서는 늙어 보인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 히사타로는 1월 2일 매년 정월에 외갓집에 친인척끼리 모이는 가족 행사에 참여한다.

그의 외할아버지는 전국에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레스토랑의 회장으로, 슬슬 죽을 날이 보이는 할아버지 주위에는 재산을 노리고 아양을 떠는 히사타로의 부모와 이모들.

저마다 돈이 필요한 이유로 사촌들의 관계까지 어색해진 지경이다.

 

서로 빈정거리고 비꼬는 신경전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 그날의 신년회는 끝나고 히사타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금주령이 내려진 할아버지가 몰래 마시는 술자리에 잡혀 술상대를 하게 된다.

취기에 인사불성이 된 히사타로는 집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지만 다음날 눈뜬곳은 할아버지 댁.

 반복 함정이 시작된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리지널인 날과 동일한 행동을 하고 마지막 할아버지와의 술자리만은 피했지만, 할아버지가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주인공 히사타로의 고생뿐인 반복되는 9일이 시작된다.

소장중인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들.

시트콤을 보는듯한 재미.

최근 가족 간의 저녁식사가 줄어들면서 시트콤같은 드라마들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는데, 이 책은 그런 재미있는 시트콤 한편을 본 기분이 든다.

할아버지의 죽음. 가족간의 불화. 유산상속의 갈등.

무거울 것만 같은 소재들을 가지고도 전혀 어둡지도 무겁지도 않다.

오히려 미스터리 부분을 따로 떼고 봐도 이 콩가루 집안의 인물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만 봐도 어쩐지 귀엽게 느껴지고 중간에 나오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에서는 장르마저 잊게 만들 만큼 읽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렇다고 추리적인 부분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SF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독보적인 분야라고 할 만큼, 그저 유머와 코믹함으로 미스터리의 깊이를 속이지 않는다.

단서를 재공하고 복선을 깔아놓고 마지막 장에서 하나씩 끼워 맞춰지는 해결 파트의 짜릿함까지. 미스터리의 요소들은 소홀하지 않고 충실하게 지켜져 있다.

 

이제는 조금 흔해져 버린 타임루프 장르. 하지만 20년도 전에 나온 이 작품은 그 시절에는 분명 특별한 작품이었을 것이고, 20년도 지난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반증이다.

 

무거운 추리에 지친 독자나, SF도 미스터리도 추리에도 딱히 관심 없이 킬링타임으로 재미를 위해 읽는 독자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본다면 분명, 책을 덮을 때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충만할 것이다.

 

 

닷쿠&다카치 시리즈 남은 것 좀 출판해줘요.

★★★★★★★★★☆

일곱 번 죽은 남자
국내도서
저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 이하윤역
출판 : 북로드 201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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