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가-모이는-밤

 

니시자와 야스히코

오랜만에 들고 온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신작.

이제는 작가의 애증이 되어버린 명작 '일곱 번 죽은 남자'부터 시작해서 닷쿠&다카치 시리즈인 '그녀가 죽은 밤' '맥주 별장의 모험' '어린양들의 성야' 그 원전인 '치아키의 해체 원인(해체 제인)'.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 '인격 전이의 살인'까지 국내 정발 된 작품 중 '끝없는 살인'을 제외하고, 니시자와의 작품은 전부 읽은 것 같다.

 

 sf설정의 기발한 발상과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 퍼즐 로직을 겸비한 다재다능한 추리작가. 반전이면 반전 트릭이면 트릭, 작품의 재미와 그 외의 내용과는 별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캐릭터들의 개성과 그들의 상황과 대화들로 자아내는 코믹함까지. 여러모로 팔방미인 같은, 내 마음속 최고의 작가 중 한 자리를 훌륭하게 차지하고 있다.

 

그런 작가가 내놓은 일본 기준 1996년도에 출판된 26년 된 작품이다.

 

살의가 모이는 밤

근데, 진짜 별로였다.

아니 작가의 특징은 분명 잘 나타나 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쏟아지는 등장인물들. 터무니없는 전개, 엉망진창인 상황, 놀라자 빠질 결말─분명 니시자와의 작품들과 일맥상통하는 명실상부한 니시자와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마리와 소노코의 성격은 지인이었다면 죽여버리고 싶었을 개성이었지만, 지금껏 읽어온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성격을 가진 재미난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하나 둘 별장에 모여드는 기인들을 보며 이상을 느끼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읽는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언제나 그렇듯 복선을 죄다 눈치채는 게 아니니 그럴 수야 있지만, 순식간에 6~7명을 죽여버리는 아이러니도 그렇고, 그마저도 우연으로 어쩌다가,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생존해가며 학살해버리는 구간에서는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소재들은 어떤가.

네크로필리아, 식인 일가, 묻지 마 폭행범, 소아성애자, 머리카락 도착증 등등. 이만큼 재미난 선물꾸러미를 가지고─비중이 많은 인물들이 아니었지만─기대를 한껏 높였으면서, 기대하는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서 포장된 선물을 불태워버려 황망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교차하는 시점의 미모로 형사 파트도 그렇다. 이 형사는 시작부터 불가해한 작가의 편의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심리를 가지고 사건이 일어날 현장에 '이끌린다'. 그러면서도 교차 시점이 필요할까 의문이 들 정도로 마지막 파트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 별장의 상황을 마지막에 독자에게 이해시켜주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렇게 읽어나간 끝에 얻은 결말의 반전은. '?'였다. 이해를 못 해서가 아닌, 반전을 역 초월해버린 결과로 인해서 이게 정말 맞아? 하는─반전의 충격과 놀라움보다 의문부호가 먼저 떠올라버린 안타까움이었다. 보통 반전을 확인한 뒤에 놀라운'!'가 아닌 '?'가 떠오르면 전자에 비해 높은 확률로 평이 낮아진다. 장난 같지만 '?!'는 오히려 낫다.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데, 이번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작가의 후기에서 말한 '젊음의 소치'라는 단어처럼 정말 패기를 끌어모아 쓴듯한 밀어붙이는 듯한 작품이었다. 취향에는 안 맞았지만, 결과적으로 작가에게 의미 있는 한 권이라면, 이후에 나온 다른 작품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작품 외적으로는 성공한 것이라고 납득하자. 항상 재미있는 물건만 쓸 수는 없다는 걸 아니까.

 

그리고 제발 출판을 광고할 때 조심 좀 해줬으면 좋겠다. '히가시노의 어떤 작품에 영향을 받은'이라는 문구는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일까. 난 그 작품을 읽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읽어본 사람들의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이다.

 

남아있는 '끝없는 살인'도 마저 구매해 읽어버리고, 닷쿠&다카치 시리즈가 더 나오길 간절하게 기도해야겠다.

 

추가로 교보문고 클로버 리뷰에 '마리'라는 언급 들어간 리뷰 쓴 202라는 분, 부디 가내에 불행이 끊이지 않길.

 

★★★☆☆☆☆☆☆☆

일곱 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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