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밸런스를 맞춰가며 읽는다고 했지만 언제부턴가 한쪽에 치우친, 편향된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으면 뭐든 상관없기는 하지만, 독서할 때의 집중도도 떨어지고,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됐다.  

 

더군다나 질리지도 않고 사람이 죽는 소설과 괴담집, 호러 소설들을 읽어온 업보인지, 요즘들어 속에 악덕이 쌓이는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뭘 해도 화가 나고, 속으로는 뱉지 못할 욕설들만 담아두고,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답답하고, 불유쾌하다.

 

그런 어지러운 상태에서, 몸도 마음도 정화하고자 평소보다 밝은 분위기의 소설을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고른 작품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이다. 딱히 신중하게 고민한것은 아니고, 그저 책장을 살펴보는 중 파울로 코엘료 작품들을 쌓아둔 위치에 눈이 갔고, 순례자─라고 하는 언 듯 경건한 단어로까지 비치는 제목을 보고서,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막상 이 작품을 고를 때는 내용이 밝은가 어떤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순례자

작가 파울로 코엘료

우선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에 대해 이야기하자. 

'연금술사'로 날 감동시켜준 작가 파울로 코엘료. 그를 잘아는건 아니지만, 작품의 분위기들과 들려오는 평소 생활방식 등을 보면 순례자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그 자체인 인물 같다. 

 

순례자. 수도승. 구도자. 선구자 등등 내 얄팍한 뇌내사전으로는 나열할 단어가 이 정도뿐이지만, 어떤 느낌인지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스럽기도 하다. 연금술사의 이야기는 작가의 철학이 담겨있지만 분명한 판타지 동화정도로 읽어서 산티아고가 바람과 사막과 태양과 대화를 해도 어이없기는커녕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는데, 순례자는 다르다.

 

기독교의 색체가 강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도입부부터 비밀스러운 종교? 모임? 에서 야밤에 마스터라 불리는 자와 어떤 의식을 진행하고, 실패하여 검을 찾으러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종교의 교리는 잘모르지만 기독교가 저런 기묘한 집단을 허용하긴 하는가? 그런 의문이 싹트기 시작하며 순례 과정도 말 그대로 판타지다. 아니면 마약이라도 먹고 환각을 본 것이거나. 여러 훈련을 행하고 악마를 마주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갑자기 아가페를 느끼어 인사불성 감동에 절어 울기만 하며, 그 마스터라는 사람은 공중부양도 한다. 

 

판타지 동화같은 연금술사와는 다르다. 순례자는 분명 파울로 자신이 과거, 산티아고 순례를 할 때 경험한 일을 사실로서 소설을 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메타픽션 같은 구도가 더욱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읽어가며 도달한 답은 파울로 코엘료는 약간 사이비틱한, 자신만의 철학을 넘어 자신만의 종교를 행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되듯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 주술사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까지 배움을 청하며, 진지하게 연금술에 매진하기도 하는, 좋게 말해 학구열이 뛰어난 작가인 것이다.

 

순례자

그렇다면 작품 순례자는 어떤가.

어마어마하게 지루하고 재미없다. 중후반부터는 스스로가 똑바로 읽었는지도 의문이다. 솔직히 읽는 자체가 고행이었다.

 

─고행.

말그대로 고행. 그 고행 덕분인지, 오히려 뒤틀린 내 상태가 한 바퀴 돌아서 약간은 정상으로 돌아온 기분까지 든다.

애초에 종교에 관한 지식이 적은 탓에 기독교에 관한 대화는 거의 이해하지 못했고, 중간중간 나오는 판타지 같은 상황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도 떨어져 꾸역꾸역 며칠동안 부여잡고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고역이었다.

계속해서 나오는 마약이라도 한사발 들이킨 것 같은 신비한 현상들, 그 현상들을 전부는 설명할 수없지만, 가끔 우리가 느끼는 기시감처럼 신비한 기분이 드는 착각을 극대화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연금술사를 읽었을때, 수업시간 1시간이 5분처럼 느껴졌던─당시에는 연금술사를 다 읽을 때까지 짧게 느끼는 시간은 늘어났지만, (5분이 7분, 10분이 되는) 분명 연속적으로 발생했다─그 기적이라고 까지 느꼈던 국소적으로 일어나는 무언가의 착각, 혹은 신비함 속에서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신의 기척을 느낀 게 아닐까.

 

(중간에 십자가를 계속 응시하니 날개로 보이고─, 하는 장면은 그저 눈을 깜빡이지 않고 한곳을 집중해서 보다 보니 시야가 뿌예지고 번지는 현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중간 중간 나오는 이상한 훈련들.

 

난 이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

맨 처음 씨앗 훈련은 도저히 납득이 안 가지만, 나머지는 명상과 요가와 같은 심신의 안정을 위하는 세러피나 릴랙스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정신. 깨끗한 정신.

 

코엘료는 아주 작은 현상과 우연에서도 신의 기척을 갈망하고,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박한 평가지만, 소설로 생각을 안했다면─그래도 분명 마음을 울리는 구절이 있는 만큼 이 작품은 소설말고도 에세이 혹은 철학책으로 분류해도 괜찮을 것 같다. 적어도 흔해빠진 자기 계발서보다는 유익하다고 확신한다.

 

지금 확인해보니 에세이 카테고리에도 들어가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로망은 아직까지 희미하게 남아있다. 언젠가 파울로처럼 모든것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확신이 안서네.

 

★★★☆☆☆☆☆☆☆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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