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야마시로 아사코
'야마시로 아사코'의 작품은 처음 읽어본다. 작품 목록을 살펴보니 옛날부터 읽어볼까 생각하던 '엠브리오 기담'의 저자였고, 마침 신간이 나와서 급하게 구매해 봤다.
처음 읽어봤다고 했지만, 작가를 알고 있다.
다른 필명을 알고 있다.
─오츠 이치.
누구나가 알고 있는 그 작가 오츠 이치의 필명중 하나가 야마시로 아사코. 이 작품의 작가다. 알려진바로 오츠 이치의 필명은 야마시로 아사코 이외에 '나카타 에이이치'라는 필명이 하나 더 있는데, 이 필명으로 나온 작품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네임밸류에 구애받지 않고 쓰고 싶어 여러 필명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이미 많이들 알려져 있어, 다른 필명의 작품 소개에도 오츠 이치의 작품이라고 나온다. 물론 유명한 인기작품들 속에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들이 섞여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문하려던 작품에는 문제가 있었다.
택배사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교보문고에 따르면 출고 예정이 대략 10일 후로 잡혀있어 한번은 구매를 포기했다. 며칠 뒤 직접 매장에 가서 구매를 할까 했지만 정말 뇌까지 얼 거 같은 추위에 나가고 싶지 않아서, 주문을 해놓고 잊고 있던 사이에 서프라이즈~하고 도착하면 기쁜 마음에 뜯어 읽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주문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다음날 술 먹고 집에 들어와 보니 택배가 도착해 있었다. 왠지 김 빠지는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기약 없이 수 십일을 기다리는 것 보다야 분명 좋은 일이기에 뒤늦게 기뻐하며 부랴부랴 포장을 뜯었다.
나의 사이클롭스
'나의 사이클롭스'는 기담, 호러 판타지가 섞인 연작 단편이다.
가장 큰 골자는 등장인물로, 여행 안내서 작가이며 함께 여행하는 일행까지 길을 잃게 만드는 길치 이즈미 로안. 로안에게 안내서 집필을 의뢰한 서점의 직원인 린. 그리고 로안이 짐꾼으로 고용한─가난뱅이 신 같은 얼굴을 하고, 술과 도박에 빠진 인간쓰레기 미미히코. 길 잃은 그들이 겪는 여행 기담집이다.
나의 사이클롭스
첫 번째 단편으로, 린이 화자를 맡은 이야기다. 일행과 떨어진 린이, 외눈박이 대장장이 사이클롭스를 만나 정이 생기고 자기가 떠나고 외로워할 그를 위해 마을 사람과의 교류를 만들어 죽기 시작하며 생기는 비극의 이야기다.
이 단편을 읽고 기담집이지만 그저 공포만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인외 괴물의 공포보다 인간이 무서운 존재였다─같은 흔해 빠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단편 속의 이야기는 처절하고 안타까움이 느껴질 만큼 감정의 묘사가 충분했기 때문에 깊게 집중하여 읽을 수 있었다.
하유타라스의 비취
이번엔 셋 모두 길을 잃고 어느 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 해변에는 비취나 술잔, 거대한 인골이 흘러들어오는데, 이 물건들은 바다 건나 하유타라스라는 나라의 물건으로, 알아서 바다를 타고 다시 흘러나가니 함부로 주워선 안된다고 한다.
미미히코가 처음 화자를 맡는 이야기로, 마을 사람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유타라스의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버리고 만다. 그 뒤로 계속해서 바다 쪽으로 몸이 기울고, 바닷속으로 끌려가며, 몸에는 미미히코를 끌고 가려는 붉은 손자국이 찍혀있다. 결국 린의 말대로 손가락을 자르려는 차에 로안의 아이디어로 무슨 짓을 해도 빠지지 않던 반지를 빼내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가장 재미없고 임팩트도 없으며, 위기감도 안 느껴지고 미미히코의 잉여 같은 모습의 단편을 확인하는 에피소드였다. 바다 건너 미지의 나라가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오는 코즈믹 호러 같은 공포도 전혀 없다. 마지막 우라시마 타로의 이야기와 물속에 있으면 손이 쭈굴 해지는 현상에 대한 의견은 재미있었다. 죽어라 미미히코.
네모난 두개 골과 아이들
어김없이 길을 헤매다가 산적과 비를 피해 산속 집을 찾아낸다. 하지만 집 주위에는 수많은 뼈들이 즐비했는데, 그중에는 사각형 모양의 기묘한 해골도 있었다. 찝찝함을 뒤로하고 잠시 쉬기 위해 그 집을 이용하는데, 젊은 승려가 찾아와 비를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승려는 흔쾌히 받아준 일행에게 이 마을에서 일어난 참극을 말해준다.
마을은 기형아를 흥행 소에 팔아 돈을 벌고 있었는데, 모체에게 희석한 독을 먹여 기형아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독이 듣지 않아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어려서부터 네모난 철모를 쓰게 해 머리가 사각형이 되게 만들어 팔았다는 이야기였다.
이어지는 스토리가 더 있고 후반에 반전도 있지만 여기까지 정리한다.
역시 약자를 이용한 잔혹한 내용은 집중도가 남다르다. 인과응보의 내용이라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 부분을 뺀 과거의 이야기는 술술 읽었다. 후반에는 그저 미미히코가 빨리 죽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코 베어가는 절
일행과 떨어져 도박으로 돈을 모두 잃은 미미히코는 하염없이 마을을 헤맨다. 피해자의 코를 베어가는 살인귀의 소식도 들어, 훌륭한 복선을 깔다가 절에 도착한다. 절에 묵게 된 그는 밤중에 스님이 스님의 시체를 묻는 장면을 봐버렸고, 자신을 맞이해준 스님이 살인귀인 '코 베어 가는 헤이지'본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날이 밝은 대로 도망가려던 미미히코는 헤이지에게 잡혀 창고에 갇히고 스님행세를 계속하기 위해서 글을 모르는 자신을 위해 독경을 읽어달라고 협박을 한다. 좁은 창고에서 소량의 음식만 받아먹고, 대 소변도 그냥 바닥에 싸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 미미히코는 자신의 배설물에 꼬인 구더기를 먹어가며 꾸역꾸역 버틴다.
탈출의 때를 노리며 버티는 중. 마을 아이가 자신이 있는 창고에 다가오고 도움을 구하지만, 아이마저 죽여버리는 헤이지의 잔혹함에 치를 떤다.
그러면서도 헤이지가 배움을 즐거워하고, 스님답게 행동하면 이 곳 사람들은 자신을 받아들여 줄지도 모른다며 한 곳에 정착하여 평온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장면은 뭉클하다.
미미히코의 고통은 느껴지지만, 딱히 큰 감흥은 없었다.
미미히코의 수난 중 가장 고되 보이는 단편이었다. 빨리 죽길 바라지만, 이 정도의 고통을 받길 원한 게 아니기에 불쌍한 마음이 들뻔했다. 미미히코는 고통 없이, 평온한 죽음을, 되도록이면 빨리 맞이해 주길 바란다. 마지막 피해자들에게 베어간 코로 술이 당기는 맛의 젓갈이 완성된 건, 역겹고 재미난 마무리 었다.
갓파의 마을
일행은 갓파가 나온다는 마을에 도착한다. 그 마을의 특산물은 뭐가됐든 이름 앞에 갓파를 붙여 파는─붕어빵, 단팥빵의 모양만 바꿔 특산물이라며 파는 것과 같이─흔해 빠진 마을이지만, 촌장 아들의 안내를 따라 진짜 갓파가 출몰하는 호수로 향한다. 시간이 흘러 호수에 정말 갓파가 떠올랐다. 그러나 린은 가짜 같다며 믿지 않고, 멍청한 미미히코는 린에게 대항해 갓파를 잡기로 마음먹는다.
촌장 아들의 뒤를 쫓아 드디어 갓파의 은신처를 찾았지만, 역시나 갓파는 가짜로, 인신매매로 구매한 아이들을 통속에 집어넣어 익사시킨 뒤, 전승되는 갓파의 모습처럼, 파랗고, 등은 거북이 껍질처럼 부풀고, 머리 가죽을 벗겨 매끈하게 만들고, 입에는 부리를 붙이고 눈을 튀어나오게 만든다. 대부분은 익사체의 특징이다. 그렇게 적당히 부풀어 오른 시체를 구경꾼이 모여있을 때 도르래를 이용해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갓파의 제조과정을 염탐하던 미미히코는 일당에게 들켜 통속에 넣어져 익사당해 갓파가 될 위기에 처한다. 안간힘을 써서 통에 빠져나온 미미히코는 그 과정에서 통속의 다른 익사체를 엎어버리고 일당들이 그 부풀어 오른 익사체를 밟아 미끌거리는 내장이 튀어나와 넘어질 때 도망치지만, 따라온 촌장 아들과 함께 몸싸움을 하다가 물속에 빠지고 만다.
그 뒤로 격류 속에서 도착한 진짜 갓파들이 있는 세상. 미미히코는 겁에 질려 도망치지만 촌장 아들은 시체로 발견된다.
이 단편에서 처럼 갓파는 사실 '익사체가 부풀어 파래지고 몸이 기억자로 꺾여 매끈한 등이 보이고 혀와 눈이 튀어나오고, 물살에 휘둘려 돌에 부딪혀 머리가죽이 벗겨진 시체를 보고 갓파라는 요괴로 알려진 것'─이라는 말처럼, 요괴 전승을 현대의 논리로 짜 맞추는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다. 교고쿠의 우부메의 여름에서 비슷한 내용이 있던 거 같은데,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는 요괴를 찾아봤더니 새였다는 내용이다.
이번에도 미미히코는 살아남았다.
죽음의 산
눈가림 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는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누가 말을 걸어와도, 어떤 현상을 목격해도, 괴이한 일이 벌어져도, 보지도 않고, 대답하지도 않으며, 땅만 보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산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 연작 단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을 뽑으라고 한다면 이 죽음의 산을 뽑겠다. 슬쩍 교체되는 화자와, 환각이 주는 어쩔 도리가 없는 절망감. 남겨지는 고독과 외로움, 마지막의 작은 구원이 짧은 이야기 속에 절절하게 담겨있다.
미미히코는 버텨냈다.
폭소의 밤
길 잃은 미미히코는 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묵기를 청한다. 아들과 두 부모는 잠시 고민하더니 미미히코를 받아들였고, 어떤 놀이를 같이 하자고 한다. 놀이란 그저 가족 셋이 하는 이야기 중 가장 무서운 이야기를 골라달라는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미미히코는 점점 공포에 질리기 시작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누군가 죽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모두 당사자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미미히코는 전력으로 도망쳐서 로안과 린을 만날 수 있었다.
미미히코의 얘기보다, 일가족이 말해주는 세 가지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후반의 반전 아닌 반전도 와닿지 않고, 그저 그저 미미히코의 생존이 짜증 날 따름이다.
물 긷는 목함의 행방
우물물을 긷는 게 힘든 아내를 위한 죽은 남편의 기가 막힌 아이디어.
솔직히 이 단편은 미미히코가 얼간이이고, 미미히코로 인해 여주인은 죽은 것이고, 모든 죄는 미미히코에게 있으며 죽어 마땅한 것은 미미히코다.
내용은 이 정도밖에 없지만, 인상 깊은 건 단연 물 긷는 심장이다.
심장의 펌프질로 물을 긷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은 걸까. 그걸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할 따름이다. 이 아이디어 하나로 읽을 가치가 있던 한편이었다.
별과 곰의 비극
길을 잃은 일행은 내리막길이 없는 산을 마주한다. 오를 수밖에 없는 산을 오르다가, 같은 상황에 길 잃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허름한 마을에 도달한다. 탈출 방법을 찾는 겸 한 동안 체류하며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여준다. 미미히코는 여전히 쓰레기라서 돌을 깎아 주사위를 만들어 도박을 하거나, 그곳에서 좋아하게 된 유스이라는 여인과 쓰레기의 쓰레기 같은 계획으로 혼인할 방법이나 궁리한다.
그럭저럭 평탄한 생활을 하는 도중 곰 이등 장해 마을 주민을 먹기 시작한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로안은 탈출한 주민들을 이끌고 내리막길 없는 산을 계속해서 오르기로 결심한다.
마지막 단편이고 다른 작품보다 분량이 많아서, 로안이 화자거나 로안의 비밀이 어느 정도 풀리는 내용을 기대했지만, 비밀에 대해서는 막바지에 살짝 언급됐고, 어김없이 화자는 쓰레기였다. 다 읽은 뒤에는 본편의 내용은 잊히고 로안의 과거 부분만 머리에 남으니 마지막의 씁쓸한 결말은 더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산 정상의 기묘한 풍경은 영상으로 보고 싶을 만큼 뇌내에서 상당히 아름답게 그려졌다.
곰에게 습격받는 마을이라고 하니 읽는다 중, 메피스토상 출신 작가인 사토 유야의 '덴데라'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표지 작인 첫 단편 나의 사이클롭스의 화자가 린인걸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장면의 화자는 짐꾼 미미히코다. 로안으로 인해 길을 잃은 미미히코가 기묘한 일을 겪게 되는 이야기─이미지상 로안이 주인공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 미미히코가 화자인 것이고, 미미히코가 생존하여 다음 작품에서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시리즈 작품이 아닌 줄 알고 구매했는데, 전작이 엠브리오 기담이라고 하니 구매할 생각이다. 미미히코는 또 등장하겠지─.
★★★★★★★☆☆☆
맘에들면 이 작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