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믹-표지-세이료인-류스이

세이료인 류스이

세이료인 류스이의 작품이, 코즈믹이 정식 출판된다는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었다. 작가를 알고 작품을 알고 있었지만 번역되지 않아 읽을 수가 없었고, 과거에도 출판 소문은 있었지만 결국 무산됐던 이력이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하지만 비고(VIGO)라고 하는 신생 출판사에서 코즈믹을 출판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수많은 독자의 갈증을 해소해주어 정말 감사하다.

 

읽고 싶은데 읽을 수가 없었던 무간지옥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일본어를 배워서 읽어버리고 싶을 만큼─언젠간 배운다─원하던 작품은 4 반세기를 지나 충분히 농익었기에 군침만 흘릴 뿐이었다. 나와 같이 작가와 작품의 명성, 또는 악명을 바다 건너 드문드문 들었을 독자들은 많았을 텐데, 모두 축배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다.

 

악동들만 배출하는 메피스토상을 코즈믹으로 수상하고, 그 마이조 오타로, 니시오 이신, 오쓰카 에이지로신(神)으로  추앙하고 트리뷰트─헌정작품까지 쓰게 만든 작가. 이 두가지의 사실만으로 독자는, 작품을 읽고 싶어 안절부절 좀이 쑤실 수밖에 없다.

 

 

작품의 표지는 심플해서 마음에 들었다. 역시 놀라운 점은 압도되는 벽돌 책이라는 건데, 일반 책에 비해서 가격이 두배고, 페이지는 두배를 넘어 무려 1055페이지를 자랑한다. 

 

세이료인의 코즈믹이 아니었다면, 비싸고 1천 페이지가 넘는 작품은 손댈생각도 안 했겠지만 작가와 작품, 명성과 기대, 그리고 완독 후의 감상까지 끝낸다면, 1천 페이지가 넘는 사실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코즈믹 특징

"1200개의 밀실에서 1200명이 살해당한다."

밀실경이라는 인물로부터 터무니없는 스케일의 범죄 예고장이 날아온다. 그리고 밀실경의 예고대로 1994년 1월 1일부터 불가능으로 여겨지는 온갖 밀실에서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된다. 그렇게 하루에 최소 3명씩 살해해, 1년간 1200명을 채우겠다는 예고는 차근차근 일본 전국에서 밀실 연쇄살인이 진행되어 간다.

 

동시에 영국에서는 잭 더 리퍼의 후계자가 나타나 연쇄 토막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며, 일본과 영국은 혼란에 빠진다.


우주적, 인지를 초월한 공포를 뜻하는 '코즈믹'의 제목처럼 스케일부터 범행의 상황이 전부 이해할 수 없다. 피해자의 압도적인 숫자도 그렇고, 밀실경이 말한 '밀실'의 정의도 일반적인 것과는 다르다. 

 

 

사방이 갇혀있고, 그 안에 시체가 있으며, 어떤 트릭으로 인해 작용하는 일반적인 밀실이 아니다.

 

수만명의 군중 속에서 목이 잘려 죽고, 빈 택시 안에서 목이 잘려 죽으며, 수 십 명이 모인 강당 구석에서 다른 곳에 이목이 쏠려있을 때 조용히 목이 잘려 죽는다. 심지어 스카이다이빙 도중, 가족끼리 간 노래방에서 잠시 눈을 뗀사이에, 지구 궤도를 도는 스페이스 셔틀 안에서, 막 태어나기 직전 모체의 안에서 태아가 목이 잘려 나온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밀실경에게 도전하는 탐정들이 있다. 'JDC'라고 불리는 일본 탐정 클럽의 탐정집단이다. 아마 이 작품을 불호하는 독자들의 가장 큰 이유가 저 집단일지도 모르는데, 코즈믹의 추리는 다른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르다. 논리도 없고, 이론도 없고, 과정도 없다.

 

집중고의, 회의추리, 통계탐정, 퍼지탐정, 잠탐추리, 불면섬고, 신통이기와 같이 필살기 마냥 추리법에 이름까지 있는데, 이 추리 법들이 하나같이 기상천외하다.

 

일기예보가 50% 맞는것보다 100% 틀리는 게 더 가치 있다며, 모든 추리가 틀리는 탐정, 계시를 받듯 진상이 떠오르는 탐정, 잠을 자지 않고 수십 시간이 경과하면 뇌가 풀 회전한다는 탐정, 모든 단서가 모이면 자동으로 진상이 떠오르는 탐정 등 메타 탐정 같은 인지를 초월해버린 탐정들이 즐비한다.

 

서브컬처의 캐릭터 소설같기도 한 묘사들도 큰 특징이다. 초능력 같은 추리 법도 그렇지만, 탐정들이 하나같이 현실과 동떨어진 행색 혹은 생김새를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인 쓰쿠모 주쿠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리기 위해 경찰의 요청으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다니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TV 생중계를 했을 때는 시청자 16만 명이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실신했다고 한다.

 

쓰면서도 미친것 같지만 정말 그렇게 서술된다. 아무튼 코즈믹은 끝으로 가서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도발장'이 첨부 되어 있다. 도전장이 아닌, 도발장이다. 독자의 실패를 예언하고 추리는 논리만이 아니며, 감에 의지하라는 주의까지 준다. 

 

작품이 추리물로서 얼마나 비정상인지 잘 나타는 대목이다.

 

코즈믹을 읽으며 놀란것이 있다면 역시 시작부터 400페이지가량을 피해자를 죽이는데 쓴다는 것이다. 한 명 한 명 죽일 때마다 몇 장씩 사용해 군상 극처럼 피해자만의 이야기─드라마를 보여주는데, 이게 또 소소하게 재미있어서 술술 읽게 된다. 

 

 

이 작품을 쓸당시 류스이는 20대 초반이었을 텐데, 남녀노소 수많은 피해자들의 생각과 입장, 상황을, 삶을 다양하게 자아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몇 장의 짧은 군상들이지만, 결코 일회용 시체들이 아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을 통해서 계속 언급하는 '밀실'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나온다. 위에서 말한 기상천외한 밀실과는 다른, 관념적인 밀실. 개개인에게 작용하는 밀실 말이다. 누구에게는 껌을 씹는 입안이 밀실이고, 집안이 밀실이고, 가족이 밀실이고, 육체가 밀실이고, 생각이 밀실이고, 인생 자체가 밀실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류스이가 뭘 말하고 싶은지 떠오르는 답은없지만, 각자의 밀실을 정의하면서 1200구의 시체들은 입체적인 '등장인물'이 됐다.

 

동시에 단점으로 등장인물이 엄청 많은데, 이름이 헷갈리는건 둘째 치고, 성별과 나이 등이 한 번에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착각이 아니라면, 3인칭 대명사인 '그'를 남녀 가리지 않고 사용하기 때문에 더욱 헷갈린다.

 

물론 '그'는 남 녀 모두에게 사용가능하지만, 그녀라는 단어가 있는 만큼 여자에게 '그'라고 서술하는 작품은 본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았다. 거기다 내가 일본의 이름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중성적인 이름이나, 여자 이름에 가까운데 읽다 보니 남자인 경우도 왕왕있어서 생각지도 못한 나관이었다.

 

 

그리고 코즈믹의 특징이자 메인이 말장난이다.

일본작품에서 말장난과 글씨와 발음으로 언어유희를 하는 작품은 많았지만, 코즈믹은 언어유희 전부가 추리의 핵심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외국 독자인 우리는 더욱 진상을 알기 어렵지만, 도발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일본인이라도 진상을 알 수 있는 독자는 없을 것이기에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자의 파자 같은 건 재미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중에서 '말(言)이 헤매면(迷) 수수께끼(謎)가 된다'는 대사─파자가 나왔을 때는 조금 지리며 감동했다.


추리에 엄격한 독자에겐 쓰레기만도 못할지도 모르지만, 복합적인 이유로 나에겐 즐거운 독서였다. 잘 팔리면 비고 출판사에서 류스이의 작품을 계속 출판한다고 하니 부디 구매해서 도전하시길.

응원해요 비고.

 

★★★★★★★★★★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망량의 상자 / 교고쿠 나츠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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