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의 리뷰는 쿠라하시 유미코 작가의 작품들 중 유일하게 국내에 소개된 '성소녀'입니다.
목차
- 성소녀 / 쿠라하시 유미꼬 /유미코
- 재미에 대해
- 시대 배경
- 출판사 창비의 단점
성소녀 / 쿠라하시 유미꼬 / 유미코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는 잘 모르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학은 어렵다. 거기다 '고전'이 붙는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 난 책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타입이 아니기에 처음 읽을 때 인상이 깊지 않으면 아마도 두 번 다시 펼칠 일이 없으니 거듭 읽으며 이해를 하는 작업도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품 성소녀는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정도 깊은 이해가 필요할까 싶지만, 되새겨 봤을 때 내용의 전체상이 드문드문 비어있는 인상이라 찝찝한 기분이 든다.
더군다나 작가 쿠라하시 유미꼬 여사의 노림수대로 읽는 내내 혼란스러움에 전부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중간부터는 내가 또 정신을 놓고 읽은 것인 줄 알았다.
과거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성소녀는 시계열은 난잡하고, 현재를 읽는 중에 어느새 과거의 이야기를 읽게 되며, 등장인물들이 독자를 속이는 것처럼 거짓말과 진실을 섞어서 이야기를 한다.
배경을 이동하고 등장인물들이 빠르게 교체되고 묘사마저 아지랑이처럼 실체가 없는 감각같이, 마치 빠른 속도로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게 한다.
그렇게 내 집중력과 이해도의 결여로 인한 문제인 줄 알았던 그 혼란스러움은 작품 해설을 읽고서야 작가의 의도란 것을 알았다. 아주 지독하고, 재능 있던 작가였다.
재미에 대해
그런 작가에 농간에 휘둘리며 완독 했지만, 역시나 재미있었다. 다 합쳐서 250 정도 되는 양인데도 다른 책의 두배가 되는 시간을 소비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 질질 끌었지만 다 읽었다는 사실이 흡입력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물론 장르와 소재의 몫이 컸다. 유교를 신봉하지 않는 독자는 근친상간과 동성애와 같은 아슬아슬한, 아니 완전히 아웃인 소재들을 가지고 윤리 도덕을 저버리는 이야기들은 보통 재미있다. 싸구려 펄프픽션의 저급한 이야기가 아닌 부덕을 몇 단계나 끌어올려 승화시켜 버려 아름답게 잘 만든 이야기들.
보통 이런 위험한─유쾌한─소재를 쓸 때는 적나라하면서도 아름답게 포장하는 게 미덕 아니겠는가. 잘 모르지만 읽어왔던 작품들을 떠올려보면 그랬던 거 같다.
그리고 주인공 미키와 K의 독백들은 말 그대로 아름답다. 세상을 묘사하는 은유와 비유들은 읽으면서 감탄이 절로 나오고, 그게 아니라면 절묘하게 B급 비유에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의 진정한 장점이 이것 일지도 모른다.
장을 넘길 때마다 오묘하고 다양하게 여러 가지의 묘사들이 뿜어져 나오는데, 등장인물의 상황과 기분에 맞아떨어져 분위기를 해치지도 않는다.
상술한 것처럼, 등장인물들의 정사 장면마저도 다양한 비유와 섬세한 은유로, 하지만 모순되게도 직설적이게─장면이 뇌리에 흘러들어온다. 나는 이런 묘사를 읽어 본 기억이 없다.
등장인물들은 어떠한가. 생김새들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모호함이 분명하지만 그들의 실루엣은 확실하게 느껴진다. 미키와 K 그리고 '작가'. (K의 유쾌한 동료들은 빼자)
미키는 둘째치고 K와 작가의 대화가 유독 즐거웠다. 이들이 나오는 부분만은 장르가 변하고 캐릭터 소설처럼, 장르소설처럼 대화의 캐미가 다른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미키보다 '작가'라는 등장인물이 중반부터는 인상이 깊었다.
이야기의 끝에서 결국 다른 등장인물들은 전부 증발하고, 미키와 K만 남게 된다. 둘은 결국 마주하지만 아마 암담한 미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둘이 저지른 위악을 가장한 진짜 악덕들은 필설로 다할 수도 없으며, 텅 빈 미키와 그녀를 치료하는 행위로 연명시킬 수밖에 없는 K의 앞날은 뻔할 것 같다.
시대 배경
일본의 문학을 보다 보면 전쟁 전과 후 그리고 60~70년대 후반이 배경인 작품들은 '안보'라거나 좌파 우파 같은 ~파, 혁명과 아나키즘 등의 ~즘, 사회운동 같은 온갖 사상과 공통된 단어들이 나올 때가 많다.(이걸 뭐라 하는지 모른다.)
그런 배경이면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대화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현학적 인척 하고, 서양문물이 대거 들어오며 서양화 영화 문학, 유명 배우와 작가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초반 미키의 일기에서부터 온갖 외래어들이 즐비하는데─덕분에 아래의 외래어 표기 때문에 아찔해진다─, 이 시기의 일본은 그야말로 혼란의 시대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일본의 시대의 흐름이나 역사는 당연히 모르지만 작품들의 분위기만 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은 혹은 등장인물들은 전부가, 나쁜 의미로 현학적이고 자의식이 강하고, 반대로 퇴폐적이고 공허하며 뜬구름 위에 서있는 불안정한 인상이다.
체념이 만연해있으며 어찌할 바를 몰라 무슨 운동이나 파니 즘이니 사상이니 다양한 명분을 내세워 날뛸 뿐이었던 것 같다.(진심으로 무언가를 위해서였던 사람들을 싸잡아 폄하할 수는 없지만.)
다자이의 작품에서도 그런 대목이 있는 만큼 약 반세기 동안 스스로가 어쩔 줄 모르는 감각에 사로잡혀 화자인 K와 같은 재미반 진담 반 혁명운동을 하고 반대로는 그들을 비웃고, 육법전서를 뒤져 형량을 알아보며 범죄마저 계산해 저지르는 악덕을 쌓는, 그런 시대가 분명 있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인지부조화 같은 게 일어나기도 하는데, 동시대의 내가 상상하는 우리나라와 작품 속 일본은 괴리감이 심하다. 이 작품만 봐도 미키는 무척 부유한 집안이다.
카페를 몇 개나 가지고 있고,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아마) 외국인에게 외국어를 배우곤 한다. 다양한 서양화를 가지고 자의식 가득한 방을 꾸미며 배경의 묘사 역시 현대와 다를 것 없이 고급차들이 있고, 디저트 가게, 치과며 백화점 같은 대형매장들이 즐비한다.
배움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지, 백날 전날 드라마 '야인시대'만 봐와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전쟁 특수가 그렇게나 큰 이득이었던 건가.
출판사 창비의 단점
개인적을 치명적인 단점인데 출판사 '창비'의 고질적인 문제다. 창비 출판사는 외국어와 외래어를 표기할 때 된소리를 끈덕지게 사용한다. 작가의 이름만 봐도 '유미코'를 '유미꼬'로 쓰며 에스프레소를 에스쁘레소라고 쓴다.
어떤 게 올바른지는 알 바 아니지만 분명한 건 이런 표기법이 나올 때마다 흐름이 끊어버린다는 것이다. 위에는 그럴듯하게 썼지만 이 책의 독서시간의 장기화는 이 표기법도 크게 한몫했다.
모호한 이야기들이지만, 민감한 소재지만, 작가의 필력이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같은 소재로 사쿠라바 가즈키의 '내 남자'가 있는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내 남자'와 견줄만한 또 다른 매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