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사쿠라바 가즈키/455p/재인/김난주

작가 소개 책 소개 무려 '제138회 나오키상 수상작'등등은 전부 생략하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우선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말, 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주의사항이 더 맞을 것이다. 앞서 리뷰했던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에서 말했는데, 자신의 윤리관을 조금 놔주는 게 이 책을 즐겁게 보는 데에 도움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쩐지 복선 같은 모양이 돼버렸다.

물론 나는 재미가 있었기에 딱히 읽을 때 문제가 없었지만 요즘 같은 때에 불편한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윤리와 사상이 통하지 않은 내용이 있다. 거부감이 들 수도, 눈 찌푸리고 덮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만큼은 부디 끝까지 읽길 바라는 마음에 부탁하는 것이다.

영화 '내 남자' 예고편 중

책을 읽는 데 있어서 그저 재미만을 위해 읽고 때로는 시간 때우는 용도로 읽을 때도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책에는 다른 나라의 사상과 미학, 간접적인 체험을 경험하기 위한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나라들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지금 자신이 있는 곳과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분명 어딘가에는 법이 다르고 윤리관도 가치관도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이 있다는 말인데,

그런 연장선으로, (그런 얄팍한 연장선으로 납득이 간다면) 정말로, 진심으로, 진실로, 스스로 읽는 게 불쾌하고 거부감이 드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끝까지 읽고 즐겨보길 바란다.

 

이 책 '내 남자'는 시간의 순서가 반대다. 현재에서 과거로.

작가가 말하길 국내 영화인 설경구 주연의 '박하사탕'의 영향이라고 하는데, 그 영화는 안 봤지만 시간의 순서가 다른 것 만으로 엄청난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첫 장면부터 물음표 밖에 떠오르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성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과거로 진행(말이 재미있다)될수록 밝혀지는 지독한 인연에 읽는 내내 내장부터 썩어나가는 것 같았다.(근데 중간에 한국인 한 명이 맞는 부분이 있는 게 웃기다.)

무한도전 오호츠크 해 편

무수한 장점들 중에서도 뽑으라고 한다면 감정의 묘사다.

퇴폐적이고 탐미적이고 다시 관능미가 넘친다. 억지로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거 같지만 이 책의 장점으로는 빼놓을 수가 없다. 

작가가 써 내려가는 감정들의 묘사는 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것만 같은 그런 후유증이 남게 되는 중독적이고 아름다운 향연. 그저 그저 감탄하며 읽을 수밖에 없다. 상투적이지만 손을 놓지 못하게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풍경의 묘사. 비의 냄새와 흙냄새. 홋카이도의 눈 뒤덮인 아름다운 설국. 차고 눅눅한 공기들. 하늘과 이어져 구분조차 되지 않는 얼어붙은 오호츠크해와 그 위를 떠다니는 유빙들. 밤의 바다가 울부짖는 것 만같은 유빙의 소리. 얼마 전까지 한파였는데, 마침 이 장면들이 생각나서 다시 한번 읽게 된것이다.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더욱 춥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수묵화 같은 무채색의 세계를 빠짐없이 글로 전달해주고 있다.

훗카이도 유빙들 https://japan-magazine.jnto.go.jp/ko/1411_driftice.html

이런 요소요소 모두가 등장인물들의 애정과 결핍 욕망과 애착들을 더욱 깊게 한층 지독하게 만들어준다.

작가는 내 남자를 집필하면 서 밥을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쩐지 바로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작가가 이 정도의 글을, 이야기를, 소설을 쓴다면 진정으로 영혼을 담았다고 생각한다.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은 역시 어떤 사상이나 윤리의 금기를 깨고 무언가를 말한다면 유려한 필력으로 아름답게 사람들을 현혹시켜야 하는 것 같다. 어느 시대나 그랬다. 달필과 달변으로 민중을 하나로 움직여 왔던 사상가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영화 '내 남자' 포스터

 여담으로 영화로도 이미 만들어졌다. 소설을 전부 담을 수는 없지만 분위기와 홋카이도의 얼어붙은 풍경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연기도 다 잘하고. 책이 재미있었다면 꼭 한번 보길. 상상 속 풍경이랑 비슷해서 놀랐다.

 

내용을 가볍게 '불건전'이라고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지만 유려한 필력으로 이렇게 써버리면 납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는 정방향으로 읽고 두 번째는 맨 뒷 장 과거에서 현재인 역방향, 세 번째인 지금은 다시 정방향으로 읽었는데, 아무래도 작가의 노림대로 앞부터 읽는 게 나은 것 같다.

 

정말 즐겁게 읽은 만큼 다른 독자의 재미를 뺏을 수 없기에 내용에 관해서는 최대한 함구했다.

세 번 있는 일은 네 번 있는 것처럼 나는 겨울만 되면 이 책이 생각날 것이고 다시 읽게 될 것이다. 잊을 수 없다. 

내 인생 책의 반열에 올라있는 '내 남자' 후회 없이 꼭 읽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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