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 상
드디어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미뤄왔던 모리 히로시 작가의 'S&M시리즈'의 첫 작품 '모든 것이 F가 된다'를 읽었다. 이 제목도 멋지고 인상 깊은 작품은, 무려 제 1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한 작가이자 작품이다.
제 1회 모든 것이 F가 된다 / 모리 히로시
제 13회 가위남 / 슈노 마사유키
제 19회 연기, 흙 혹은 먹이 / 마이조 오타로
제 21회 플리커 스타일 / 사토 유야
제 23회 잘린머리사이클 / 니시오 이신
제 24회 클락성 살인사건 / 기타야마 다케쿠니
제 31회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 츠지무라 미즈키
그리고 영광의 제 0회 수상자 우부메의 여름 / 교고쿠 나츠히코 대장님
이로서 절판된 33회 누가 호랑이 꼬리를 밟았나─모리야마 다케시─를 제외한 국내 출판된 모든 메피스토 수상작을 다 읽은 것이다.
전부가 재미있었다고는 못하지만 '한 명의 작가가 하나의 장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각의 작품들의 특색이 정말 화려하다. 읽는 재미─즐거움이 남다르기에 메피스토 작품이라고 하면 일단은 구매해서 읽는 게 독자들 간의 사회적 룰이라고 난 생각한다.
무려 1회 수상작이며 교토의 괴동 니시오 이신이 신으로 추앙하고 많은 작가들이 찬사를 보내는 이 작가의 작품을 왜 이제서야 읽었냐고 하면,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몇 년 전에 만들어져 방영한 걸 봐버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원작의 존재를 몰랐고, 그저 추리애니메이션이 나왔다고 하기에 봤던 것인데─재미있게 봤다─그로인해 미래에 읽어야 할 명작을, 애니메이션 내용을 기억에서 잊을쯤 찾아 읽어야 하게 되었다.
실제로 원작도 애니메이션도 떠올리지 않고 있을때 우연찮게 'F가 된다'를 마주하게 됐고, 애니메이션의 내용도 반추해 봤지만 애매한 기억만 남아있어서 지금이 바로 적기구나! 하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구매를 했다.
모든 것이 F가 된다
조교수 사이카와 소헤이와 그 제자 니시노소노 모에가 외딴 섬에있는 연구소를 찾아간다. 그곳에는 14세에 부모를 죽이고 다중인격으로 혐의를 벗은 천재 공학박사 '마가타 시키'가 15년 동안 은둔 하고 있다.
동경하던 박사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있는 사이카와의 눈앞에서 시스템의 오류로 열릴 리 없던 마가타 시키의 격리문이 열리고, 꿈에 그리던 마가타 시키 박사가 나오며 충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 마가타 시키 박사는 누구도 출입 불가능한 격리방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팔다리가 잘린 채로 운반 로봇에 실려 나온 것이었다.
이 혼비백산한 명장면은 전율의 연속이었다.
동시에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연출이 떠오르며 느껴지는 소름은 두배로 커졌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사지가 잘려 오뚝이가 된 시체가 운반로봇에 실려 어둠 속에서 점점 다가오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그 참상을 목도한 자신과 주위의 혼란이 웃음이 나올 정도로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공계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인상 덕분에 작품 전체가 흐릿하게 무채색처럼 느껴지는데 신기한 일이다. 분명 한 여름이고 외딴섬이며 푹푹 찔 만큼 덥다는 묘사도 나오지만, 연구실로 장면이 바뀌며 그 생생함은 사라지고, 회색으로 점철된다.
애초에 연구실은 지하가 메인이고 연구실 자체에 창문이 한 개도 붙어있지 않으니 갑갑함은 배가된다. 더해서 주인공이 끔찍한 골초라 줄기차게 담배를 펴대는데 담배의 연기로 인해서 무채색을 더욱 무채색으로 뒤덮게 만든다.
트릭 역시 이과느낌이 팍팍 나는 컴퓨터나 수학과 과학 네트워크 프로그램어등등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배경이 90년대 중반이라 지금에 와서는 낡은 개념들이라고 해도 내 이과 지식으로는 지금이나 배경이 된 시기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딱히 거슬리는 문제는 없었다.
여러 번 꼬아진 해답은 트릭의 방법보다 '천재'인 마가타 시키의, 범凡인은 이해할 수 없는─공감할 수 없는 사고 회로가 아닐까 싶다.
천재가 천재이기에 할 수 있는 발상과 행위.
천재가 천재이기에 떠올릴 수 없던 범凡인의 한계.
일반인들이 무감정하다고 느끼는 천재의 행동에는 확실한 이유와 합리적인 계산이 깔려있다. 그 과정에는 이해 못 할 천재만의 감정도 분명 녹아들어 있을 것이다.
무감정한 건 누구인가.
감정이 통하지 않는다.
호소가 닿지 않는다.
절망적이고 절대적인 천재와 나머지들의 차이.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쓰다 보니 이상한 방향으로 빠졌다.
단점을 뽑아보자면, 추리의 문제부터 해답까지 도달하는 거리가 너무 멀게 만들어졌다. 질질 끈다는 인상이 있는데, 중간부터 사이카와가 진상을 깨닫는 묘사가 나오지만, 그 조차도 다음에 얘기한다고 넘어가고, 제시한 해답도 빗나가기도 한다.
분명 그 과정들은 마지막 진짜 해답을─반전을 꺼냈을 때의 충격을 더하는 장치라고 해도 너무 길게 느껴졌다.
그 사이를 캐릭터들의 대화나 상황들에서 깨알 같은 재미나 해프닝으로 긴장을 놓아주거나 실소라도 하게 기름칠을 해줬다면 모르지만, 그런 요소는 너무나 적었다.
대충 50~100페이지만 분량을 줄이면 어땠을까─일개 독자는 생각한다.
어쩐지 리뷰가 붕 뜬 기분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반전에 놀라며 읽었는데도─어쩐지 리뷰할만한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무채색이라는 인상인가.
사건과 해결. 반전. 천재에 대한 사이카와의 인상을 제외하면, 단점에서 말한 화사함이 부족하다.
S&M시리즈는 10권 정도 있으니 이제 다른 작품들을 읽어가며 사이사이에 하나씩 읽어나가야겠다. 가타부타 말이 많았지만 시리즈의 다음이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제목도 멋진데, 보다 보니 F라는 알파벳이 멋있어 보인다.
몰랐는데 찾아보니 일본에서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작중 언급되는 유메노 큐사쿠의 도구라마구라도 다시 정발 했으면 좋겠다. 무려 3대 기서로 통한다는데 절판돼서 찾을 수가 없다
★★★★★★★☆☆☆
스포 포함
나머지는 언제나 그렇듯 내가 놓친 것일지도 모르지만 의문이 남는 세 가지.
스포
스포
스포
스포
스포
기도 세쓰코가 섬에 들어올 때 교대하듯 학생 일행이 배에 탔는데, 그 학생들은 추가된 한 명에게 위화감이 없었나.
학생들도 경찰이 따로 조사한다고 했지만 그 섬에 체류 중이던 사람은 연구소 일원과 놀러 간 학생들 뿐이었다고 기억한다.
기도 세쓰코가 여학생 두 명이라고 한 장면에는 사이카와가 없었는데, 사이카와가 새로운 추리를 번뜩일 때 기도 세쓰코가 말한 장면을 떠올린다.
여동생 미키의 존재여부를 누구도 몰랐나.
천재인 시키는 부모살인혐의까지 더해져 매스컴의 주목을 이끌었는데, 연구소 인물 몇몇은 무려 죽은 오빠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도, 미키라는 여동생이 존재하지 않는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