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천국에-닿지-안기를

부디, 천국에 닿지 않기를

하세가와 유, 처음 보는 작가다. 이번 책을 구매한 이유는 9900원이라는 싼 가격과 편하게 읽기 좋은 250페이지 정도의 분량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또 실패했다. 

 

재미없다. 웃기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고, 흥미롭지도 않으며, 슬픔도 없고, 감동도 없을뿐더러, 와닿지 않고, 즐거움도 유쾌함도, 불쾌함도, 신선함도, 스릴도, 반전도 아무것도 없다.

 

작품 선택에 계속해서 실패하니 짜증만이 남는다. 답답하고 화가치민다. 요즘 취향이 어긋나 있는 것도 맞지만 이 정도로 오랫동안 무감각한 적은 처음이다. 점점 비싸지는 책값에 돈은 돈대로 나가고, 재미없는 작품을 읽는 시간은 그저 낭비고, 쌓아놓기만 하는 책은 자리만 차지한다.

 

독서라는 취미는 재미가 없는 작품을 고르게 되면 뭐 하나 좋은점이 없다.

수많은 단점들을 재미 단 하나만으로 커버하는 취미가 독서인데, 재미마저 없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 유일한 취미가 이런 고행뿐일 것일까. 어디서 잘못된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나는 사실 수도승이었던가? 무의식 속에서 고행길을 선택할 정도로 자기애가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속이고 있는 건가. 세상이 밉다. 세상이 날 핀 포인트로 괴롭히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부조리함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실 언제부턴가 눈치를 채고 있던 거 같다.

최초의 기억은 매달 처방받는 약이 있는데, 1일 1회 분으로 포장된 알약 봉지에서, 항상 먹던 약과 다른 검은색 알약을 발견했을 때였다. 무슨 착오가 있었나 해서, 포장된 약을 전부 꺼내서 확인했는데, 그날 분 하나에만 들어있어서 약사의 실수라고 생각하고 검정 알약만 빼고 복용했다.

 

그런데,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분명 확인했을 터인 밀봉된 알약 봉지에서 검은색 알약이 하나씩 추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더 이상 약을 먹지 않게 됐다. 

 

산책을 나갈 때, 밤길을 걸을 때, 방에서 책을 읽을 때, 시선이 느껴진다. 골목 어귀에서 전봇대 뒤에서, 편의점 구석에서, 승강장 반대편에서, 그리고 버스 맨 뒷 좌석에 앉아 있을 때,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고, 장롱과 옷장에서, 침대 밑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뭔가도 행동이 재빠른 것인지, 뒤를 도는 순간, 골목 입구로 달려간 순간, 옷장을 열고, 침대 밑을 확인하는 순간, 정말 찰나의 속도로 사라져 버린다. 이미 내 사생활권까지 가까이 잠식해 오고 있다는 말이다. 쓰다 보니 떠올랐는데, 오늘 아침에도, 어제 아침에도 엇 그제 아침에도, 요즘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었다. 

 

그/그녀?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잠이 들만하면, 귓가에 알 수 없는 소리를 낮은 목소리고, 계속해서 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중얼 속삭인다.

 

커튼을 치워도, 창문을 열어봐도 분명 환한 낮일 시간인데, 내 방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기분전환 삼아 구매한 꽃들은 거실에 두면 괜찮지만, 내 방에 두면 하루아침에 기둥부터 잎까지 새까맣게 썩어버린다. 처음에는 꽃집에 속았다고 생각했는데, 계속해서 하루아침에 썩어 죽어버리는 꽃들을 보고─마지막에는 화분 흙의 표면이 검고 찐득한 액체처럼 변한 것을 발견하고 꽃을 구매하는 것을 포기했다.

 

저항할 생각은─애초에 없다.

아니, 내가 저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내가 그/그녀? 의 인기척을 느끼고 찾는 행위를 할수록, 다치는 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넘어지는 정도였다. 다음에는 계단에서 구르고, 다음에는 팔이 부러지고, 이빨이 부러졌다.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최근에는 언덕 위에서, 운전자가 없는 트럭이 덮쳐와 크게 다칠뻔했다. 요즘 왼쪽 다리가 저려서 잘 걸을 수 없었는데, 손가락 골절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더 이상 파헤치지 않을 생각이다.

 

내 행동이 '파헤친다'는 단어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사소한 행동마저도 그/그녀? 의 심기를 거스르는 듯하다. 이렇게 일어난 일을 그저 글로 쓰는 것만으로도, 계속 머리가 아파온다. 이명이, 귀울림이 점점 커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눈알 뒤 쪽이, 타는 듯 뜨겁다.

 

방에─지금 리뷰를 쓰는 내 방에, 나 밖에 없다. 그런데,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아마 손이라고 생각되는 기분 나쁜 미지근한 온기의 무게가, 점점 아파질 정도로 어깨를 쥐어 누르고 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만 써야 할 거 같다. 돌아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그녀? 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일 테니까.

 

대체 누구에게 잘못을 했던 걸까. 누구에게 폐를 끼쳤길래 이런 벌을 받고 있는지 알 수없다. 나는. 난, 누구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걸까. 알고 있다면 알려줬으면 한다.

 

다음에, 다음 리뷰를 쓸 수 있다고 한다면, 부디 간절히 바라건대, 무감각해진 나에게 초심 때와 같은,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오랫동안 작품 선택에 실수하지만 계속해서 구매해 읽어나가는 이유는 분명, 재미있는 작품 한 권, 한 권을 찾아 완독을 했을 때, 그만한 쾌감이 따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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