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못한-밤-표지

미치오 슈스케

한 작가의 작품을 많이 읽은 것으로 치면 나에게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은 많이 읽은 축에 속한다. 이게 또 기묘한데, 미치오의 작품을 전부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대부분, 하나같이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단편집인 '술래의 발소리'

오야 하루히코 상을 수상한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나오키상 수상작인 '달과 게'

소년 소녀의 성장담 '물의 관'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한 '광매화'

한 때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하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작품마다 많은 종류의 상의 후보로 오르고, 또 수상도 자주 했으니 작가의 노력과 재능은 내가 가타부타 입을 놀려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부질없을 만큼, 검증에 증명에 인증을 거친 진짜다.

 

작가가 그동안 출판한 작품에 비하면 세 발의 피지만 증명된 작가로서, 지금 내가 리뷰하는 작품까지 7권이나 읽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상술했듯 한 작가의 작품을 7권이나 읽은 것도 이상이지만, 읽는 족족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데도, 이렇게 까지 읽은 것 역시 이상이다. 이상하다.

 

공포와 스릴러, 미스터리는 흥미를 이끌지 못했고 최악이었던 해바라기는 뭔 소릴 하는지도 모르겠다. 성장담과 드라마들은 지루했고, 와닿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는 무엇하나─어떤 작품 하나, 기억에 남지 않고 희미할 정도이니, 다시 생각해봐도 아무리 반추해봐도 이상─하다.

 

용서받지 못한 밤

그렇게 실패만 해오던 작가의 작품을 왜 다시 구매했냐─이게 의문이 들지도 모르는데, 당연하다. 이 정도 실패를 반복했으면 아무리 무지한 나라도 구매를 멈추고 읽기를 포기할 것이다. 배웠을 것이다. 실제로 몇 년 간은 아마 이 작가를 잊고 있었다.

 

착실하게 잊고 있던 내가 평소처럼 신간들을 물색하고 있을 때 미치오 슈스케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물론 무시를 했으면 됐지만, 호기심에 작품의 설명을 읽게 됐고─거기서 꽂혀버렸다.

 

"네 살인 딸이 아내를 죽였다."

 

이걸 사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독자가 몇이나 있을까. 저 문구를 보자마자 바로 구매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렇게 충동구매한 책을 받아 전부 읽은 뒤에 남은 감상은, 대단했지만,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네 살 난 딸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혹은 요즘 흔해빠진 사이코패스여서─자신의 엄마를 의도적으로, 직접적으로 죽여버린 내용을 기대했던 나에게 이건 광고사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물론 광고 문구들을 제대로 읽지 않은 나의 책임전가지만, 남편이 경찰을 입막음했다는 문구도 어떻게 일게 시민이 경찰을 입막음했을까 기대했지만, 그 조차 사안을 생각한 경찰의 배려였다.

 

'입막음'이라는 워딩에 놀아났다.

 

아무튼 내 실패에 대한 건 넘어가고,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딸이 아내를 죽이고 15년 뒤, 그 사건을 아는 누군가가 딸의 비밀을 알리고 싶지 않으면 돈을 준비하라는 협박 전화로 시작된다. 얼마 전 죽은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 장사하던 주인공은 근심 걱정과 과로로 쓰러지고, 대학생이 된 딸의 제안으로 딸과 누나와 함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스포

 

그러며 그동안 의문을 가지던 딸이 고향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묻고, 주인공의 30년 전 있었던, 어머니의 죽음과, 1년 뒤 독버섯이 들어간 국을 먹고 고향의 갑부 두 명이 죽고, 두명이 겨우 살아남은 사건의 전말과 자신과 누나가 번개에 맞았던 이야기 해준다. 그 사건에서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가 자신의 아버지─얼마 전 죽은 딸의 할아버지였다는 사실까지.

 

30년 전의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의 흐름은, 과거의 회상 장면을 포함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사건의 개요는 물론, 장황한 묘사까지. 주인공의 회상 묘사 덕분에 어머니의 죽음은 대충 예상은 갔다. 아니 그 예상은 너무 뻔해서 차라리 빗나가길 기대했는데,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상실. 그것도 무려 번개에 맞아 기억상실. 지지고 볶고 기억상실은 대부분 작가의 편의적 소품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후반의 반전을 생각했을 때,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처음 기억상실을 겪은 주인공의 선례를 보여줬고, 그 사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버렸고, 그건 즉 뒤에 있을 두 번째. 누나의 기억상실의 반전을 허락하게 된다는 소리다. 작가의 반전을 위한 복선이고, 자칫 무리한 설정일지도 모르는 소재로 인한 독자의 반발심을 불식시키는 현명한 설계였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는 내용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이 막연하게 든다. 

가족을 위해. 친구를 위해. 등장인물들은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선택은커녕, 무력하게 운명을 신에게 떠넘겨 버리고 그렇게 스러져간다. 

믿는다. 지킨다. 말을 하면 아름답게 보이지만 의문을 착각이라 외면하고, 사건이 터지고 후회하지만, 반복해서 업보가 돌고 돈다. 누구 하나 행복해지지 못한다. 거기에 마지막 장의 세줄은 작가의 과도한 연출 같기도 하지만 아내의 죽음과 신에게 선택을 맡겨버린 인물들에 대한 한마디 같아 마음에 들었다.

 

과거와 현재까지 무관계하며 철저한 관찰자이며 작품에서 가장 이질적인 아야네는 꼭 필요한 인물인가 의구심이 든다. 마치 작가의 다른 시리즈의 카메오가 등장한 듯한, 사건의 해결만을 위해 준비된 안락의자 탐정 같은 인물. 언젠가 다른 작품의 주인공으로 탄생할 것 같다. 


책을 읽는 취향이 바뀐 것 같다.

이제는 반전이나 결말 하나만을 보고 3~400짜리 책을 독파하는 게 버겁게 느껴진다. 사건과 결말과는 무관하게 등장인물들이 재미있거나 매력 있는 캐릭터가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읽어가는 과정이 더 편하고 즐거운 작품이 마음에 든다. 즉 등장인물들이 재미가 없는 작품이었다.

 

그래도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드라마도, 성장소설도, 해바라기처럼 기묘한 미스터리도 아닌, 순수 추리소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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