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
유망한 법대생 신이치가 여자 친구와 친구, 두 명을 죽이고 체포된다. 재판 끝에 사형선고를 받은 신이치는 감옥에서 자신은 무죄라 주장하며 수기를 쓰고 저항한다. 그런 신이치의 주장을 믿는 전 변호사이자 신이치의 아버지 에츠시는 아들의 담당 변호사 이사와와 신이치의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 전단지를 돌리며 고군분투하며 지낸다.
한편 신이치가 죽인 여자의 여동생 나츠미에게 '메로스' 라고 자칭하는 사람에게 전화가 오고, 그는 신이치 사건의 진범이 자신이라는 충격적인 말과 함께 믿지 못하는 나츠미에게 나츠미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증거까지 언급하며 관계된 자들에게 혼란을 부추긴다.
이 작품은 사형제도와 일본의 단골 소재인 원죄(억울하게 뒤집어 쓴 죄)에 대한 소설이다.
작품의 주제는 둘째 치고. 내용만보면 평범한 작품이다. 적당히 재미있고, 적당히 흥미롭다. 읽기 불편한 것도 없고, 분량도 딱 좋다. 표지도 이쁘다.
다만 후반의 이사와의 행동이 이해가안간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반전에 당한 게 아니라, 그 행동을 한 감정이 너무나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져서 예상하지 못했다.
반전의 트릭이 초능력이라고 밝혀진듯한 아이러니라고 할까.
그리고 모티브 혹은 오마쥬─확실하게 대입되는 단어가 안떠오른다─다자이의 작품인 '달려라 메로스'를 차용했는데 그게또 잘 들어맞으니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라 반가웠다.
설원을 읽고 관심이 간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짧고 재미있다. (창작 일화도 어이없이 코믹하다.)
사형제도야 항상 말이 많은 재미난 논쟁거리인 동시에 답이 나오지도 않을 문제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옹호론자는 얼마전 30년 넘게 누명으로 감옥 생활하다 출소했던 사람들이 만약 사형당했다면 그 사실을 이 악물고 모르는 척 피할 것이고, 폐지론자들은 피해자 유족을 등에 업은 옹호론자들에게 공감능력 없다 뭐다 덮어놓고 몰매 맞을 것이다.
정답도 없고 100%유죄도 없다.
아무리 지식인들이 논리로 무장하고 싸워도, 무수한 익명들이 익명 속 댓글로 싸워도 그 논리가 바닥나고 끝내는 추한 감정싸움밖에 안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원죄일 경우에도 사형이아닌 무기징역일 수도 있으며, 그럼에도 감옥에서 죽어갈지도 모르고, 진범이어도 감옥에서 수십 년 썩을 바에야 아싸리 사형당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형의 허들이 낮아지면 비교적 경범죄의 범죄자들도 잡히면 어차피 사형이니 중범죄를 저지르는 심리도 있다고 한다. 사형의 억제력은 어느수준까지 가면 무의미해진다는 말이다.
사형의 책임 역시 사람 하나를 죽이기 때문에 국민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건 동의 한다. 사형수를 매달 때 전 국민의 스마트폰 화면에 버튼이 나타나서 누르게 하는 시스템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반대로 사형 버튼 위에서 탭댄스를 출수 있는 사람이 집행해도 상관없고, 자동화된 사형 시스템이 알아서 기계적으로 숭숭 칼을 휘둘러 목을 내리 쳐 집행해도 아무래도 좋다.
뭐가 올바를지 모르는 나는 다만 법과 집행은 지극히 무감각하고 무감정하며 기계적이어야 하고 누군가의 감정 울분 원망 억울함 허망함 해소를 위한 도구나 이벤트가 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시원하게 광화문 광장에 공개적으로 매달고 효수하는 전 국민적 이벤트로 생중계도 하고 입장표도 팔고 관광요소로 활용하거나─이건 분명 팔릴것이다─실용적으로 쓰던가.
뭐 결국 중요한건 사형의 집행도 폐지도 아니고, 근본에 있는 누명과 원죄다. 그것만이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사형집행없이 죽을 때까지 감옥에 넣어두는 종신형이 있는 거 같으니 훌륭한 편법이라고 생각한다. 난 평생 감옥살이할 바에 죽는 게 나은 입장인데, 사형 또한 살인이라고 하는 폐지론자들에게 종신형은 사형보다 온화하고 인간적인 형벌이라고 생각되는 걸까.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