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리프
시간여행─, 그중에서도 타임리프를 소재로 하는 이야기는 많다.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만화도, 온갖 미디어를 통해서 익숙해졌고, 졸작도 명작도 산재해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관련 작품이 나오는 걸 보면 타임리프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라는 말일 것이다.
그런만큼. 그저 타임리프를 가지고 천편일률적인 작품을 만들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타임리프의 소재를 사용함에 있어서 무슨 이야기를 자아낼 것인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 뒤는 어디서 본듯한 스토리가 흘러나와 봐야 재미도 뭣도 없다.
예를 들면, 마왕에게 잃은 동료와, 지나간 시간을 되찾아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
예를 들면, 스스로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의 시간을 되돌려가며 소중한 마을의 참극을 막기위해서.
예를 들면, 좋아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셀 수 없을 만큼의 죽음을 겪어가며 다음 분기로 나아가기 위해서.
예를 들면, 수 천 번의 루프 끝에서 소중한 친구와 좋아하는 사람, 둘을 천칭에 올려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았을 때, 모두를 구하기 위해서.
서브컬처로 한정했지만 그밖에도 복수나 속죄 같은 다양한 종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무게감이 없다,
네가 죽는 미래가 온다면, 몇 번이고
처음 기대랑은 다르게 너무나도 뭔가가 많았다.
옆집의 엄친아 같은 소꿉친구를 둔 주인공. 주인공은 기린아 같은 그를 좋아하고, 그의 가족으로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여동생이 있다. 그 여동생도 그를 좋아한다. 거기다 오타쿠인 주인공의 친구부터 알다가도 모를 톡톡 튀는 쌍둥이 자매까지.
작가가 그리는 전개를 위해서 어쩔 수 없지만, 이 개성들이 휘몰아치듯 초반부터 튀어나온다. 게다가 내가 뭐 가볍다 무겁다 잘난 소리를 할 처지는 아니지만 문체의 가벼움과 뇌가 녹을 듯한 묘사들까지. 읽으면서 혼란만 가중되었는데─이유는 위에서 말한 기대 때문이었다.
이 책을 구매한 이유가 싼값이었고, 오랜만에 맘 편한 로맨스를 읽고 싶었으며, 타임슬립의 소재를 쓴다는 소리 때문이었는데, 과연 카테고리가 라이트 노벨인걸 개성의 홍수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확인하면서 알았다.
첫인상과 기대는 내게 중요했는데, 기대한 것과 전혀 다른 물건이 나오면 웬만큼 재미있지 않은 이상 어쩐지 찜찜함이 남아버린다. 표지가 저런데 어떻게 몰랐냐는 말을 할지도 모르지만, 요즘 표지를 일러스트로 그럴듯하게 잘 뽑아내는 출판사도 많지 않은가.
처음부터 라이트노벨인걸 알고 읽었다면 좀 더 재미있게 읽거나 평가가 높았을 것이다. 어쨌든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물건이 튀어나왔다.
소중한 사람들이 몇 명 죽고, 그걸 막기 위해 타임리프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범인의 그 정신 나간─나름의 이유를 대지만─행동들과 동기, 진지한데도 얼빠진듯한 인물들의 행동, 더불어 가장 최악이었던 쌍둥이들의 진실과 쌍둥이들이 떠들어대는 설정.
작가가 정한 설정을 그냥 죄다 떠벌리고 해결의 실마리도 알려주는 격이다.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을 떠벌려야 했을까 하며, 그 부분부터 나름 잘 읽고 있었던 흥미가 뚝 떨어졌다.
설명충도 이런 설명충이 없다. 거기다 그 설명마저도 뜬구름 잡는 듯한, 솜사탕 같은 내용이었고─그냥 하나하나가 전부 과장되어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의 해결로 주인공은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모두 무사한 미래가 올 수 있게 만들었다─만약 여기서 끝나거나, 미래에 각자가 새로운 만남을 이루고, 추억 정도로 남아서 각자 초속의 삶을 살아간다면, 아련하게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이 됐을지도 모른다.
역시나 이 작품은 그렇지 못했다.
주인공과 소꿉친구는 뭐 드라마랄 것도 없이 소꿉친구가 만나러 와서 이어지는데, 가장 어처구니없는 게, 그 생 난리로 사람도 죽이고 자살도 한 범인은 그저 시간이 지나고 옆에서 힘들지만 케어해주니 삼단 업그레이드라도 한 듯 완전해졌다고 한다.
제정신인가.
오랜만이다 이런 날림 결말은.
다시는 만나기 싫은 작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