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죽인-소녀

내가 죽인 소녀

내가 죽인 소녀의 명성은 옛날에 얼핏 들어봤다. 작품의 명성인지, 작가의 명성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아마도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더욱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아무튼 내 귀에까지 들린 명성을 믿고서, '내가 죽인 소녀'를 구매하려 했는데, 2009년의 출판된 것이 절판되어 더 이상 구매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중고서점도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 봤지만, 구할 수는 없었고,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잊혀져가던─재미있는 작품은 많으니, 한 작품에 목맬 수 없다─이 인상적인 제목의 작품이 교보문고 신간 목록에 떠올랐다. 언제나의 흐름으로 바로 구매를 해버리고, 기대를 끌어모아 완독 했다─.

 

미묘하다.

사건에 잡아먹혀 들어가는 탐정의 초반 상황까지는 무척이나 흥미진진했다. 불가항력으로 말려들어 눈치 채보니 사건의 중심! 같은 느낌으로, 사건의 부름이 아닌 범인의 호출로 무대 위로 끌려 올라왔다. 하지만 거기까지. 탐정의 실패로 유괴된 소녀의 몸값을 빼앗긴 뒤부터는 긴장의 끈도 흥미진진한 전개도 끊겨서 붕 떠버렸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건의 1억 엔과 각성제를 가지고 잠적한 탐정의 전 동료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자주 나온다. 그리고 하시즈메라는 야쿠자도 마찬가지. 그냥 등장해서 농담 따먹기나 하는 레귤러 캐릭터면 모르는데, 본편과 전혀 상관없는─끝까지 설명도 뭣도 없다─야쿠자끼리의 권력다툼에서 총에 맞고 실려가서 수술 전 유서 같은걸 탐정에게 맡기는데, 흐름을 끊는 것은 물론, 쓸데없이 지면을 잡아먹고, 독자의 혼란만 부추긴다.

 

덤으로 그 사건에 끼고 이 작품에서도 인상만 쓰고 앉아서 자리만 차지하는 니시고리까지. 사족이 너무 많다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고, 내가 첫 작품을 읽지 않아서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하라 료의 작풍은 주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하드보일드'라고 설명된 작품을 여태껏 읽어본 적이 없는 나라서 그런가, 뭐가 하드보일드 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주인공이 코트를 나부끼는 중년에, 시니컬하고, 클래식한 자동차를 고집하며─차종도 계속해서 말해준다─, 독한 필터 없는 담배를 시도 때도 없이 뻑뻑 핀다는 묘사를 늘여놓고, 가끔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쌀쌀맞지만 내면은 따뜻한, 그게 하드보일드인가? 배움이 부족해서, 이해가 안 된다.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하드보일드의 매력을 올곧이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인데, 그 매력을 알 수가 없다. 덕분에 막연하게 취향이 아닐 거 같다고 멀리하던 하드보일드를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결말도 마찬가지. 독자가 추리하지 못하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이고 언페어 하다고 따질 생각도 없다. 그런데, 탐정이 언제 어디서 사건의 진상을 눈치챈 건지, 적당한 묘사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유괴 사건의 전말도, 범인의 심리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한다고 해도, 제목에서 느끼는, 바라고 있던 불온한 진상도 딱히 아니어서, 김 빠질 뿐이었다.

 

진상을 알던 모르던, 피해자 가족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초반에 중학생이 탐정에게 달려들었던 장면. 이 장면은 진상을 모를 때였으면 납득이 가지만, 진상이 밝혀졌을 때 생각해 보면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그리고 복싱을 한다는 삼남의 분량도 어정쩡하고, 후반에 한 번 더 등장할 줄 알았다.

 

갑작스러운 해결 편. 납득안 가는 주연들의 행동. 쓸데없이 끼어드는 사이드 스토리 등등. 전부 읽고 나니까 어정쩡한 기분만 남는다. 후반을 갈겨쓴 느낌이라고 할까.


언제나 그렇듯 내가 잘못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하라 료의 작품은 읽을 일이 없을 것 같다.

다행히 작품의 수가 많지도 않다.

단편이 수록됐는데, 재미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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