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에 이르는 병
국내도서
저자 : 구시키 리우 / 현정수역
출판 : 에이치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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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이르는 병/구시키 리우/에이치/359p

제목을 봤을 때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버렸다.

과거의 걸작 '살육에 이르는 병'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과 표지의 음산함에 기대치가 치솟았다.

이 책은 쭈구리 대학생활을 보내는 마사야에게 사형수의 편지가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편지의 발신인은 과거, 취향에 맞는 소년, 소녀를 납치 감금 능욕 고문 등의 잔혹한 범행 뒤 살인하여 24건의 살인용의 를 받고 있으며 확인된 9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사형수 하이무라 야마토에게서 온 것이다.

그의 용건은 이렇다.

 

"그 아홉 번째 살인. 내 타깃과는 달라. 그 한 건만큼은 난 누명을 쓰고 있어." 

9건의 살인으로 사형판결을 받는 하이무라는 자신의 범죄 수법과 피해자들 간의 공통점에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며, 마지막 9번째 살인만큼은 누명이라며 호소한다. 

이미 8건의 용의는 인정했으며 9번째 살인을 빼더라도 사형이란 벌은 피해갈수 없다. 그럼에도 연쇄 살인범 하이무라는 다른 살인자의 죄까지 뒤집어쓰는 건 사양이라며 마사야에게 누명을 벗겨주길 부탁한다.

 하이무라는 어릴적 친절하게 대해준 빵집의 주인. 마사야는 고민 끝에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사건 관계자들과 주변 인물들을 만나 조사를 해나간다.

 

음습한 마사야의 사상. 히틀러가 따로 없다.

주인공 마사야는 어릴적부터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신동도 스무 살까지'라는 말도 있듯 학년을 거듭할수록 점점 평범해지고 부모의 기대에 짓눌리다가 결국 자퇴한 뒤 검정고시를 보고 그저 그런 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과거의 자신을 잊지못하고 주위 사람들과 벽을 새우고, 지금은 자신보다 우위에 섰다고 느끼는 초등학교 동창인 가토 아카리와 대학 동기들을 속으로 욕하고 낮잡아 보며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대해진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사건관계자들과 하이무라의 과거를 조사하면서 마사야는 점점 자신과 하이무라를 겹쳐보기 시작한다.

학대를 받고 외면당하며 기대받지 못한다. 자신의 우등생 시절만을 아는 하이무라만이 자신을 봐준다고 생각하고, 관계자 대부분이 하이무라의 본성을 알고 살인행각이 드러난 뒤에도 믿지 못하거나 그럼에도 호감을 가지고 있단 사실에 더욱더 하이무라에게 빠진다.

 변호사 조수를 가장하며 옷을 빼 입고 탐문을 하고 다닌 게 좋은 작용을 했는지 대학에서도 당당해졌다. 주위 여자들이 변했다며 다가오다. 

 

하이무라의 인상.

근묵자흑 근주자적. 

연쇄살인자에게 동화되는 마사야는 점점 위험한 지경에 이른다. 

하교하는 여자아이들을 보면 품평하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아이가 있으면 과거에 하이무라가 저질렀던 그것처럼 밟아 뭉개고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아랫배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게 끓어올랐다.

급기야 만취한 취객에게 다가가 외진 곳으로 끌고 가는 지경에 이른다.

 

책의 가독성은 뛰어나다. 몰입도 역시 굉장해서 술술 읽힌다.

하이무라의 과거를 알아가면서 생기는 흥미와 하이무라가 저질러왔던 범행의 잔혹함은 짧지만 짜릿하다.

다만 갇힌 범죄자의 인텔리적인, 어딘가 유능하고 빠져들며 현혹되는 범죄자의 틀은 이제는 좀 식상하게 다가온다. 물론 그저 찌질한 범죄자만큼 김 빠지는 이야기 없고, 단순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만큼 가치없는 것도 없다.

요는 사상과 신념 가치관이 뚜렷한 범죄자는 그림이 된다. 

이 캐릭터성에는 양들의 침묵이 한몫했다.

방황하는 마사야에게 관심과 원하는 말들을 해줬다 해도, 마사야의 하이무라 빠져들기는 초반에는 납득 갔지만 난데없는 살인충동에는 조금 과했지 않나 싶다.  

마지막 하이무라의 심심풀이 리스트에 포함된 한 명은 반전보다 오버해서 넣은 무리수로 다가왔다.

반전은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반만 맞았고 잔혹한 묘사들은 읽으며 몰입하기 좋은 장치였다.

이야기의 끝은 너무 힘없이 풀린 느낌이라 뒷심이 부족하다 느꼈다. 

 

폭력과 학대의 연쇄.

이 책의 근간에는 가정의 학대가 깔려있다.

부모의 방임부터 폭력과 성적인 학대까지. 어린 시절의 고통이 한 사람을 어떤 괴물로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학대받은 범죄자의 근원은 학대에 있다.

그렇기에 어렸을 때 학대받은 피해자는 어떤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 의견은 본문에도 나와있듯, 학대받으며 자랐지만 떳떳하고 성실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강하지 않다.

누구나가 이겨낼 수는 없다.

학대를 받으면서 머릿속 뇌 한구석이 망가지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이 연쇄살인자인 하이무라는 유능한 정치가인 할아버지의 사이코패스 혹은 소시오패스의 자질까지 유전됐다고 언급하니 더욱 지독한 혼종이 탄생했겠지만. 

 

 

애기들 좀 학대하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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