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대 살인귀/하야사카 야부사카/274p/북로드/현정수

메피스토 수상 작가 하야사카 야부사카의 '살인범 대 살인귀.'

제목에서부터 벌써 끌린다. 살인범과 살인귀의 싸움이라니 표지만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은가. 이번에도 고민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나를 늘 앞질러 살인하는 살인귀가 있다."

 외딴섬에 위치한 '착한 아이의 섬'은 인근 주민들의 반대로 섬에 쫓겨난 아동보호시설이다. 이곳에는 당연히 가족과 개인의 문제로 그리고 주위의 배척으로 갈곳 없어진 아이들이 입주하게 된다.

감옥에 들어간 야쿠자의 아들, 입양되지 못한 최연장자, 거울을 통해 인격을 바꾼다는 소녀, 탐정의 아들이라는 소년, 운동만 하는 근육녀 등 다양한 종류의 아이들이 모여있고, 현실적인,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서 저마다 폭력, 이간질, 망상들로 스스로를 지키며 생활한다.

 그 안에 주인공인 '아바시리'는 몇 번 말을 섞으며 친해진 쓰레기를 줍는 소녀 '고미'가 시설의 아이들 몇 명에게 괴롭힘을 당해 투신자살을 시도. 의식불명에 빠진걸 두 눈으로 목격했고, 분노하여 시설에 있는 주동자 세명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마침 섬 밖 육지로 나간 시설의 어른들은 폭풍으로 발이 묶여 돌아오지 못하고, 이것을 기회로 아바시리는 살인을 개시하는데.

첫 번째 타깃을 죽이기 위해 그의 방에 몰래 잠입했지만, 이미 누군가가 타깃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인 상태였다. 

아바시리는 자신보다 먼저 선수 친 살인귀를 찾으며 남은 타깃을 죽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우리처럼 어린애들한텐 강하다는 게 절대 정의잖아."

오랜만의 '클로즈드 서클'.

이 소설의 배경은 폭풍에 갇힌 외딴섬. 클로즈드 서클이다.

외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지 못하는 상황 속, 살인귀의 사냥터로 변모한 섬에서 살인귀는 유유자적 사냥을 개시하고, 탐정은 빠르게 늘어나는 시체들에서 단서를 모아 필사적으로 사건을 막아야 한다.

좋다, 싫다. 괜찮다, 나쁘다를 얘기하는 건 아니지만 클로즈드 서클은 작가의 편의를 위한 인위적인 장치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고안한 트릭을 쓰기 위해, 좀 더 몰입감과 스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준비되는 무대라고 느껴져 진다.

산 꼭대기 산장의 유일한 입구인 다리가 범인에 의해 불타 사라지거나 전파를 차단하고 전선을 자르거나 하는 범인이 만든 무대가 아닌, 폭풍 속 외딴섬, 폭설 속 산장, 산사태로 인해 외부로 나가는 길이 막힌 산속 저택. 자연재해로 만든 무대라니 좀 어이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외딴섬의 아동보호시설 이라니···.

도심 속 사건에서 CCTV는 잘 언급되지 않는 것과 비슷한가.

뭐 갖춰진 무대에서 재미만 있다면 결국 읽으면서 신경 쓰지도 않지만.

 

"끝없이 계속 이어지는 말은 나쁜 것의 침입을 막아준단다. 무서울 때 이 주문을 외렴."

그럼에도.

그럼에도 이 책은 즐겁게 읽었다.

시설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개성도 뚜렷하고, 화자의 1인칭 시점도 읽을 때 편해 가독성도 좋다.

살인범인 주인공의 살인을 가로채는 살인귀 찾기의 구도 역시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어른이 한 명도 없는 섬에서 최연장자가 끽해봐야 고1이 됐을까 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수법의 살인까지.

살인범도 살인귀도 어리다. 그렇게 잔혹함은 더욱 빛을 바라고 어쩐지 애들 장난 같은 뉘앙스도 풍기며 읽으면서 기묘한 기분도 떠오른다.

주인공인 아바시리가 탐정 역이 아닌 것도 의외라면 의외. 살인범 역과 겸임하기엔 무리가 있던 걸까.

고로 짜릿할만한 요소만 두루두루 갖췄다는 말이다.

 고아가 된 아이들의 처분과 시설 내 따돌림과 시설 밖 시선 등의 주제를 끌고 가 사회문제를 토로했다면 분명하게 쓰레기 같은 한 권이 됐을 건데, 적절히 끊어주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동안 복선이었던 대사들이 자연히 떠오르고 책의 표지부터 장의 구성까지 하나하나가 전부 치밀하게 짜여있던 군더더기 없는 멋진 한 권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조금 짧다는 것 정도.

일상 컷의 캐릭터들의 이야기나 대화들로 300페이지 초중반 정도로 분량을 늘려도 아쉽지 않았을 거 같다.

 

"우리는 아마도 평생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죽기로 맘먹었어."

메피스토 상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메피스토상에 대해 얘기해보자. 

'궁극의 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며 기존의 추리소설들과는 차별을 둔 개성적인 작품들이 수상한다.

내가 읽어본 메피스토 수상 작가들은,

가위남의 '슈노 마사유키',

기괴한 설정과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뿜어대던 '마이조 오타로',

온갖 수위를 넘나들며, 심의의 끝에 도전하는 카가미가 시리즈의 '사토 유야',

헛소리 시리즈를 시작으로 무수한 명작을 뽑아 두터운 팬층을 쌓아 올린 교토의 괴동 '니시오 이신',

클락 성 살인사건의 '키타야마 타케쿠니',

차가운 학교에 시간은 멈춘다를 시작으로 다양한 작품을 쏟아내는'츠지무라 미즈키',

불쾌함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사랑받는 '마리 유키코'등이 있다.

 

믿고 보는 수상작가라고 할까, 메피스토상을 받은 작가들의 책은 어딘가 기묘하면서, 참신한 설정과 초현실적이거나 오컬트 같은 내용들이 자주 껴있는데 읽을 때마다 같은 장르의 책을 읽는 것에 비해 무척 이질적인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설정과 분위기 잔혹하고 윤리관과 심의를 돌파하는 성향들은 내 취향에 꼭 맞는데, 저 중에서 가위남과 클락 성을 제외하면 전부 즐겁게 읽었으니, 출판사가 원하는 '궁극의 엔터테인먼트'가 뭔지 잘 알 거 같다.

 

 

그들의 기괴한 작품들이 더 많이 번역되길 항상 바라고 있다.
★★★★★★★☆☆☆

살인범 대 살인귀
국내도서
저자 : 하야사카 야부사카 / 현정수역
출판 : 북로드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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