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_정말_좋아하는_소설가를_죽이기까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가를 죽이기까지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재미있었다. 빠른 시간에 집중해서 순식간에 읽은 만족감과, 다 읽은 뒤 남은 잔잔한 고양감.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다. 260페이지의 짧은 두께 덕분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라이트 문예로 보이고, 장르의 분류가 미스터리, 추리소설이라고 되어있는데 완독을 하고 나면 의문이 든다.

분명 반전은 있었지만, 그 장치는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중요한 요소도 아니었고, 누가 죽고 누가 죽였나의 의문도 추리라고 하는 품위 없는 행위를 들이밀기에는 어딘가 맞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어서 나는 상관이 없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일반 소설, 성장소설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성장도 미스터리도 추리도 이 작품에 대입해봐도 어딘가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닮았지만 틀리다.

가장 근접한 건 로맨스일까. 어느정도 장르들의 지분이 있을지언정 그런 미지근한 분위기가 아니다.

 

파멸의 이야기이다.

 

두 인물 간의 감정선은 분량이 짧은만큼 순식간에 깊어지는데, 그 기복을 독자가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로의 구원은 알기 쉬웠지만, 질투부터 증오까지의 감정을 담기까지가 너무나 빠르다.

오히려 그 덕에 머리 아프게 감정 소모를 할 필요 없이 편하게 읽은 것이겠고, 그 정도의 단점들은 작품을 분해하고 분석해 파 해치려는 게 아닌 이상 작품 속 서술로 납득해서 신경안 쓰며 읽어가는 편이라 개인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안됐다.

 

오히려 쌓아 올린 묘사를 걷어내고 단어 하나하나만 본다면 알기 쉽다.

 

학대받던 마쿠이 자신을 구원해준 사람이 자신이 '신'으로까지 추앙해 마지않는 공전절후의 천재 소설가 유마였으며, 신작이 팔리지 않자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신'을 보고 싶지 않아, 이번엔 자신이 구원해주기 위해 '신'의 고스트라이터를 하게 된다.

 

소설가는 밀어붙여진 맹목적인 신앙에 대해 자신은 계속해서 '인간이니까 체온 정도는 바뀐다'라고 언급하며 신으로 있길 꺼려한다.

그런 소설가는 '신자' 마쿠이가 가진 소설가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절망하고 만다. 무너져가는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것은 다름 아닌 신자였다.

 

재능을 잃은 신은 신자가 자아낸 작품을 이용해 '신'의 감투를 쓰고 계속해서  천재 소설가 노릇을 하지만, 신이 아니었던 인간의 마음은 깎여나가고, 신자를 질투하며 이윽고 증오하기 시작한다.

 

간추리기를 못해 구멍이 있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려 했지만 그 방식은 서로를 파국으로 이끌어간다. 분명 희망적인 미래도 있었을 텐데, 결함 투성이인 두 사람의 선택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맞이한 결말은─너무나도 아름답다. 이게 해피엔딩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유마가 죽으며 마쿠이가 성장해 홀로 살아가거나, 사실은 유마는 죽지 않고 마쿠이의 마지막 대사에 대답하며 등장하거나─ 뻔하고 역겨운 결말이다. 그런 결말로 끝났다면 마지막 장을 제외한─앞의 모든 내용은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둘의 결말이 구원이든 파멸이든 중요하지 않다.


원서를 번역하다 보면 역시 그만한 내공이 쌓은듯한 후기를 써주는 번역가들이 있는데, 이번 번역가의 후기도 좋았다. 눈치채지 못한 대사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해설. 다른 관점의 이해를 도와주는 해석. 만족이다.

 

이야기 속에서 소설가가 등장하는 작품이 재미있다. 이유는 모른다.

 

문호는 죽어서 완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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