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이시모치 아사미/259p/민경욱/노블마인

이시모치 아사미

이시모치의 책은 네 권 읽어봤다.

네 권 정도면 재미나 기호의 차이로 크게 실망할 때도 됐는데 이시모치의 책은 아직까지 그런 느낌은 없다. 장편을 읽을 때 작가의 독특한 사상이 느껴질 때가 있어서 (사상은 과하고, 단순한 어떤 생각에 대한 확신?) 어리둥절한 기분을 느낀다. 제목과 매치되는 붉은 색감의 디자인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두 남자가 서있는 그림은 좀 거슬리긴 해도 이 정도 표지면 나에겐 합격점이다. 그리고 이번껀 책은 두꺼운데 종이의 질 탓인가 259p밖에 안 된다.

다만 네 권다 괜찮게 읽었음에도 책을 살 때 뚜렷하게 작가를 떠올리지 못한다. 인상이 약하다. 어쩐지 계륵 같은 작가인 것이다. 

 

청부살인, 하고있습니다.

책을 읽는 데 있어서 때로는 스스로의 윤리관이나 도덕관을 버리는 게 그 책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 일 때가 있다. 아니, 이건 딱히 책이라는 매체 하나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나 소설,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 무수한 콘텐츠가 있고 무수한 장르가 있으며 가끔 그것들을 즐길 때 스스로가 방해가 될 때가 있지 않은가. 똑똑한 자신, 겁 없는 자신, 도덕적인 자신, 윤리적인 자신, 무감각한 자신, 동심 없는 자신.

 

공포물을 볼 때는 겁쟁이가 돼야 한다. 추리물을 볼 때 우리는 우둔한 왓슨이 돼야한다. 스포츠물을 볼때는 가슴뜨거운 관중이 돼야하고, 로멘스를 볼때는 당사자가, sf를 볼때는 무지한 관객이, 고어물을 볼때는 잘게썰리는 피해자가, 살인범의 이야기에는 스스로가 살인자가 돼야한다.

 

도저히 자신의 윤리관에 반하는 내용이라도 즐기기 위해서는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윤리를 버려야 한다. 저버려야 한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필요한 것은 그 매체를 즐길 정도로 자신을 맞추는 일이다.

 

이야기에 맞추고, 사상에 맞춘다.

물론 감독이나 작가들이 관객이 이렇게 즐겼으면 좋겠다, 독자가 이런 식으로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등등 일종의 요구사항이 있을 때도 있지만, 혼자 심플하게 즐기는 방법으로는 이런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이야기를 즐기는 건 사람 수만큼 천차만별 가지각색이니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 좋을 것이다.

결국 재미없으면 덮는 게 답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인 것이다.

주인공 '도미자와 미쓰루'는 돈을 받고 사람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살인에 있어서 아무런 감흥도 감동도 눈물도 울림도 분노도 격정도 동정도 인정도 없다. 살인에 무감각. 있는 거라고는 아주 작은 의문과 그에 대한 추측뿐.

 

 

주인공도 그 여자 친구도 동료도 살인에 대해서 딱히 어떤 선악과 양심과 윤리 도덕 같은 번거로운 질문은 하지 않는다.(이야기에 있어서 그런 멋대가리 없는 논제를 끌고 오는 건 재미없게 만들 뿐이다.)

 

무감각하게 기계적으로 알맞게 사람을 한 명 죽이고 끝. 주어진 일을 하고 대가로 돈을 받는다. '일'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의뢰인의 타깃을 조사하고 준비가 끝나면 슥삭. 죽이고 대가를 받고 그리고, 타깃의 이상행동을 주인공 나름의 추측과 추론으로 이어지는 해결 편. 이 '잔돈' 같은 해결편의 존재로 추리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있는 것인데 추리의 놀라움이나 이야기의 완성도 같은 얘기는 접어두고, 읽기 편하고 담백하게 짧은 추리물의 형식으로 끝나는 이야기는 나쁘지 않은 몰입감을 준다.

 

자신의 감각에 맞지 않으면 아마 초장부터 책을 덮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살짝 책에 맞추고 읽어보길 추천한다.

 

칼칼한 킬링타임으로는 괜찮은 한 권이다. 

★★★★★☆☆☆☆

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국내도서
저자 : 이시모치 아사미(Asami Isimochi) / 민경욱역
출판 : 노블마인 201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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