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한 저승사자를 기르는 법/치넨 미키토/452p/북플라자/김성미

작가 치넨 미키토.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사실은, 작가의 본업이 의사라는 점이다.(본업 이라기보다는 먼저 얻은 직업?) 본업을 가지고 글쓰기까지 겸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건 알지만 의사가 작가를 겸한다는 선례는 들어본 적이 아직 없었다. 현직 의사, 겸직 소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어떤 직업이든 힘든일인건 매한가지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고 의사가 되어 바쁜 와중에 소설도 쓴다는 노력과 근면함은, 무능 무지 무력한 나에게 흉내내기도 힘든 멋진 사람이라고, 부럽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쌓아 올린 게 하나도 없는 나로서는 솔직하게 그렇게 느꼈다.

 

이 책은 호스피스 병원이 배경이 되는데 아마 작가 자신의 경험이 깊게 녹아들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일본에서 2018년 영화 개봉!

독서미터 [가장 읽고 싶은 소설] 1위!

라는 많은 광고 글이 달려있는 이 책을 바구니에 담은 독자는 빠르게 되돌려 놓으라고 말하고 싶다. 슬픈 사실로, 작가의 능력과 책의 재미는 비례하지 않았다.

 

짧은 줄거리.

저승사자는 지상의 호스피스 병원으로 좌천당한다. 

개의(골든 리트리버) 모습을 빌린 저승사자는 호스피스의 병원의 간호사 '미호'에게 '레오'라는 이름을 받고서 그곳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레오의 역할은 곧 죽을 환자에게 나는 부취를 맡아 그들의 미련을 없애기 위해서다.

 

살인사건, 색을 잃은 화가와 전쟁의 슬픔 등의 사연을 가진 부취를 풍기는 환자들의 미련을 풀어가며 서로 얽힌 관계들을 기반으로 약간의 미스터리와 반전들을 선사한다.

 

사족. 이 책을 구매했을 때.

이 책을 구매할 때 나는 마가 꼈던 게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한창 친구와 함께 서점을 가서 둘러보던 중 요즘 너무 추리다 미스터리다 한쪽으로 치우친 편식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표지도 이쁘고 광고문 구들의 현란한 말발에 혹해서 그만 구매해버리고 말았다.

 

바구니에 넣고 들고 다니며 다른 책들도 구경하면서도 안 하던 짓을 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사도 만족할 수 있을까 잡념은 끊이지 않고 왠지 들고 있는 바구니까지 점점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다른 책들도 바구니에 담아서 물리적인 무게가 추가된 것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 책을 눈에 띄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책들을 바구니에 담아서 감추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계산까지 끝낸 뒤에도 계속해서 찝찝한 마음만 가득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까지 거부반응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뚝심을 가지고 꾸역꾸역 책을 사들고 와버린 나 자신이 이상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치기 어린, 아직까지도 나에게 다양한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강박관념. 혹은 믿음.

다른 리뷰에서(아마 십자관의 살인 리뷰.) 언급했던 말들인데, 그 시절 나는 한국 소설을 읽고서 고배를 마시면서도―재미가 없었다―.

 

실망을 하면서도 어떤 모종의 믿음을 가지고 다음에는 재미있는 책을 고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수입 책을 읽는 틈틈이 국내 굴지의 나름 믿을만한 작가들과 책들을 선별해가며 찾아 읽어보는 나름대로 성실했던 독자였다.

 

지금은 물론 국내 소설이 외국에 많이 뒤떨어진다는 오만한 생각은 없다. 다만 부족하다. 불충분하다.

내 선별이, 선택과 운이 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지금은 어떻냐 하면 국내 소설을 선택하는 수는 확실히 줄었다.

개인적인 이유라면 예전에 비해서 재미있는 책을 구매할 돈과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 이 책을 살 때도 딱히 여유가 있던 적은 없었지만.

 

분명 재미있는 책은 무수히 많겠지만, 모 아니면 도인 도박을 굳이 할 만큼 나 자신이 여유롭지 못하기에 지금에 와서는 국내 책을 구매하는 횟수가 현저히 떨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쩐지 변명 같은 소리만 늘어놓고 사족이 길어졌지만, 이 책의 구매는 그런 시절의 내가 했던 실패의 이야기다.

 

상냥한 저승사자를 기르는 법.

다시 이 책의 이야기로 넘어와서, 표지만 보고도 알겠지만 따뜻하다.

간호사와 한창 주가 상승 중으로 계급 상승하며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실히 굳히고 있는 강아지가 서로 마주 보는 구도. 분홍빛 벚꽃들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배경. 요즘은 다양한 표지와 수려한 일러스트들로 장식된 책들이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런 올바른 선택을 했다. 

 

가끔가다 표지를 이용해 장르를 속여(좋은 의미로) 놀라게 해주는 트릭도 많지만 이 책은 딱히 그런 짓은 하지 않았고, 표지만 보고도 장르와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는 광고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직관성의 알기 쉬움은 좋게 생각한다.

다르게 말하면 표지만 보고도 거를 수 있다는 말이다.

 

혹여 진한 감성과 감동으로 점철된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은 절대 구매하지 않길 바란다.

순박한 강아지가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구조는 흔하다면 흔하고 뻔하다면 뻔한 구조인데, 그 플롯에 판타지적 요소를 조금 첨가한 그런 이야기일 뿐이다.

 

환자들 역시 딱히 선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장르 특유의 작위적인 진행의 찝찝함은 지울 수가 없다.

거기다 마지막의 레오가 외치는 응원과 질타의 상투적인 대사들은 전신에 소름 돋기까지 하다. 이 책으로 위로받기 위해선 정말 바닥 없는 구덩이에 빠져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저 이쁜 쓰레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 아닌 반전의 힌트라면 작가가 선택한 견종의 이명 아닐까.

아니면 그저 얻어걸린 것이거나. 

 

이 책에 위로받을 만큼 아직 난 불행하지 않다.

★☆☆☆☆☆☆☆☆☆

 

상냥한 저승사자를 기르는 법
국내도서
저자 : 치넨 미키토(Chinen Mikito) / 김성미역
출판 : 북플라자 2017.05.11
상세보기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