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야스미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는 국내에서 '죽이기 시리즈'로 몇 년 전부터 인기몰이를 하고 있던 작가'였다.'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2020년 11월 23일 병원에서 암으로 투병 중 별세했다.
석별의 의미로 앞으로도 고바야시 야스미의 작품을 천천히 쭉 읽어나가볼 생각이다. 물론 재미없으면 그럴 필요도 없었겠만.
이 작가는, 이 작가의 작품은 충분하다고 할만큼 재미있는 작품이 많기에 안타깝다는 생각도 아쉽다는 감정도 느끼는 것이겠지.
전망 좋은 밀실
자 쓰잘데기 없는 소리 그만하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자.
전망 좋은 밀실은 일 곱 가지 SF 단편소설을 엮은 단편집이다. 요즘 어째 집는 족족 단편집만 읽는 거 같다.
SF.
사이언스 픽션.
이 장르는 나에게 무척 생소하다.
애초에 관심을 가져본 기억도 없고.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다. 하지만 장르의 변형과 융합이 당연해진 만큼 SF도 착실하게 진화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SF가 아닌 로맨스 모험 스릴러 호러, 거기에 사랑스러운 추리와 미스터리까지.
추리 미스터리에서 다른 장르를 끼얹으면, 하물며 그것이 SF라면 말 그대로 최근 흥행했던 '특수 설정 미스터리'가 되는 게 아닌가. 미스터리라면 좋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좋다.
헌데 이걸 읽어보니까 이 작품은 추리도 미스터리도 아니었다. '밀실'이라는 제목에 너무 사로잡혀 있었다. 오히려 이정도면 코즈믹 호러가 아닌가?라고 읽으면서 의문이 떠올랐다. 범 우주적인 스케일의 단편부터 외계의 침략자에, 정황상 디스토피아가 된 세계, 멸망한 거 같은 세계. 잿빛 세계가 뇌리에 계속해서 떠오른다.
짧은 만큼 각 단편의 후기만 남기겠다.
전망 좋은 밀실
작품의 표제작이다.
천재탐정 시그마가 형사가 가져온 난해한 사건들을 무상으로 해결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그랬어야 했다. 사건을 기다리고 어려운 사건일수록 입맛을 다시며 즐기는 초반의 모습을 보고, 아 이게 탐정물이지 하며 기뻐했는데, 갈수록 전개가 왜 이래? 하며 어리둥절하다가 초전개로 끝나버린다.
이 한편으로 뒤에 나올 남은 여섯단편이 어떤 물건일지 감이 잡혔다.
눈 비비는 여자
현실과 구분이 되지않는 꿈이라고 할까.
정신병자의 논리인데, 만약 지인이 여긴 자신의 꿈속이라고 말하며, 현실은 이미 처참한 세상이라고 한다. 꿈속에서라도 행복하려면 이 삶을 유지하려면 자신을 깨우지 말라고 계속해서 당부한다.
그 망상을 어떤 논리로 부정할 수 있을까. 증명할 수없다.
탐정 조수
난데없이 QR코드가 등장해서 놀랐다.
QR코드를 찍으면 등장인물들의 숨겨진 속마음이 적혀있다. 신선하고도 귀찮은 도전이다. 마지막 반전은 초반에 알게 됐다. 사건의 반전은 딱히 인상 깊지는 않았고. 단편들 중 가장 추리물에 가까운, 클리셰적인 단편이다.
망각의 침략
어쩌면 가장 재미있는작품일 것이다. 어렵지 않고 오락적인 요소가 강해서 나도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서 슬슬 과학이론과 유명한 딜레마들을 소재로 쓴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부터 고전역학과 양자역학 파동함수. 파고들면 어렵겠지만 여기선 간단하게 개념적으로만 사용해 줘서 읽기 어렵지 않다. 그 이론들을 이용해 침략자를 격파하는 전개는 짧지만 가장 인상 깊게 읽혔다. 등장인물 두 명도 마음에 들고.
다만 침략자를 공략할때 어떻게 약해진 상태인지 확신한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침략자의 형체를 비디오로 관측한 순간, 그 모습은 고정되어 더 이상 불확정성을 띄지 않는다. 말 그대로 기회는 한번.
헌데 어떤 판단으로 침략자가 약한 형체일 것이란 판단을해서 손에 지그재그 상처를 남기고 비디오를 재생한 것인가.
관측과 고정이 연속된 흐름이라면 이 침략자는 단일개체인가. 변하는 모습들 중 왜 뾰족한 갈퀴는 고정인가.
뭐. 내가 잘못 읽은 부분이 있겠지. 아무튼 재미있는 단편이다.
미공개 실험
타임머시이인(나는 자세를 취했다.)에 관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작중 이론적인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이 결말은 타임머시이인(나는 자세를 취했다.)에 관한 시간여행에 관한 매체를 접하다 보면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막연한 예감을 가질 것이다. 애초에 노골적으로 타임머시이인(나는 자세를 취했다.)을 타고 온 인물이 몇 번이나 반복해서 설명했다고 강조하는데 누구도 들은 기억이 없다는 말을 한다.
죄수의 딜레마
유명한 죄수의 딜레마란 소재를 사용한 이야기다.
초반에 나온 딜레마에 대한 논의는 흥미로웠다. 하지만 거기까지. 지구인의 평화적인 융합에 대한 아케르나르인의 대답에서 이야기의 결말이 너무나도 뻔했다.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지구인이 이룩한 터무니없는 진화가 반전이라면 반전일까. 블랙코미디를 읽은 기분이다.
미리 정해진 내일
가상현실도 꿈속도 아닌 주판과 메모지 속의 세상.
1+1=2 인 것처럼 계산하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고, 미래도 이미 정해져 있다. 문제가 만들어졌을 때 답은 이미 존재한다.
계산은 이미 존재하는 답을 발견하는 행위일 뿐. 창조가 아니다.
전개과정은 지루하지만 발견한 엔딩은 가장 인상 깊은 단편이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이미 존재하는 유명한 과학이론과 사고실험. 딜레마 같은 소재들을 사용한다면 그걸 가지고 전개할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들은 소설을 쓰는데 짐이 덜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그게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소재는 이미 갖춰졌다―의 이야기다.
그래도 나에겐 좀 복잡한 얘기들 뿐이니 다음엔 생소한 SF가 아니라 익숙하고 읽기 편한 작품을 선택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