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_그녀의_고양이

 

신카이 마코토

이 작품은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영화로 흥행가도를 질주하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가 2000년에 공개한, 처음으로 제작한 약 5분 정도의 초단편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쓰인 연작 단편 소설이다.

 

'초속 5센티미터'로 이 감독을 알게 되어 작품들을 찾아봤을 때, 그때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란 작품도 알게됐다. 하지만 아직도 5분짜리 영상을 본 적은 없다. 짧은 탓에 뒤로 미루고 미루다가 기억에서 잊혀 갔고, 감독의 존재도 슬슬 잊을 때쯤.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에 이은 재난 3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한다는 소식과 함께 이 작품도 기억에서 떠올라왔다.

 

헌데, 5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그래서 아쉬움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신카이 마코토는 영상을 공개한뒤 소설화도 빼먹지 않는 감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바로 찾아냈다. 영상이 5분인 만큼 책도 200쪽 정도로 심플하게 짧아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근데 저자가 신카이 마코토랑 나가카와 나루키, 두 명인데, 각자 어떤 역할을 맡아 글을썼는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은데, 작품 하나에 저자가 둘이면 글을 나눠 쓴 건지, 원작자인 신카이 마코토의 검수가 있어서인지 그쪽의 사정을 잘 모르겠다.

모르겠으니 넘어가자. 애초에 나가카와 나루키란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거라서 큰 관심은 없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4편의 연작 단편이다. 

각각의 챕터에 인간 주인과 그들이 키우는 고양이(그리고 뭔가 초월해버린 개 한 마리)의 정적인 이야기와 챕터를 넘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각 주인공들 고양이들의 이야기다.

 

사실 처음에는 이런 딱 봐도 뇌가 설탕이될거같은 분위기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거르고 있기 때문에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과 짧은 페이지 수가 아니라면 볼 생각도 없었다. 정말로. 내 일생의 적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준 트라우마가 회복되질 않는다.

 

아무튼 그런 혐오감을 이겨내고 힘차게 독파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결과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들어서 읽은 작품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작품의 외적인 요인인 신카이와 짧은 페이지수를 무시하더라도, 작품의 보정을 빼더라도, 즐거운 독서였다.

 

아 이게, 이것이 바로 감동인가.

마치 구름위에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중력의 영향아래서 고통받지 않고, 몸이 붕 하고 떠오르는 기분. 뇌로부터 손끝, 발끝까지 온  신경에 전달하기 시작한다.―이미 쇠약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고 젊음을 되찾은 듯 온 혈관에 그 감동을 파도처럼 퍼트려, 기분 좋으면서 청량한 황홀경이 나의 모든 감각을 한 차원 높고 예민하게 지배한다. 

 

다 읽은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내 몸속에서 잊을만하면 여진처럼 그 감동이 피어올라 전신이, 세포 하나하나가 그 감동의 감각을 되새기고 떠올리고 되찾으려 한다. 참아야 한다. 참을 수밖에 없다. 더 이상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없다. 또다시 같은 감각을 느끼려 해도 이미 경험한 작품에선 최초의 유열은 느낄 수 없다. 새롭고 더 강한 강렬한 작품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이 짐승과 지내며 서로 치유하는 그런 뻔한 얘기겠지라고 생각했다.

아니 보통 그런 경우가 많았다―내 스몰 데이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감동이나 휴먼드라마 같은 그런류의 장르를 싫어하는 내가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는 정말로 '재미'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각 챕터의 인간들의 서사 따윈 관심도 없다, 오히려 그 서사가 별로 재미있지 않다. 어딜 인간 따위가 고양이님의 분량을 잡아먹는가. 

 

어차피 인간놈들이야 알아서 살아갈 테고―아니면 알아서 죽을 테고―작품의 메인인 고양이님들(고양이님들의 품종 중에는 '메인쿤'이라는 품종도 있다. 사진을 찾아보니 고고한 매력이 있다.)의 분량이 무척이나 유쾌하게 읽혔다. 처음에는 모든 화자가 인간이고 인간의 피폐한 인생에서 털 달린 짐승이나 쓰다듬으며 스토리가 전개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무려 고양이님들이 화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빈번하게.

그걸 보고 나츠메 소세키 대장님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떠올랐다. 물론 너무 두꺼워서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만약 그 작품의 재미가 내가 이 작품에서 느낀 재미와 일맥상통한다면 반드시 읽어봐야겠다.

 

인간악귀들의 파트는 알 바 아니지만 고양이님들의 파트는 고양이의 세상을 보여준다. 귀염뽀짝한 고양이님들의 상호대사. 고고하고 도도한 행동양식. '초비' '미미' '구로' '쿠키'―아이고 존함들도 어찌나 이쁜지―이 고양이님들의 눈으로 본 오만방자한 인간 놈들의 쓰레기 같은 비루한 삶. 아주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읽으면서 입꼬리가 쑥쑥 올라가서 아직도 내려오지 않았다.

 

거기에 별개로 무지몽매한 인간놈들을 고귀한 목숨 다할 때까지 굽어 살펴주시는 초월자 개님인 '존'까지. 아니 목숨이 끝나서도 더욱 남겨진 자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켜 주셨다. 작품 속 누구보다 가장 미스터리한 존재고, 읽다 보면 세계관 잘못 찾아온 거 아닌가 싶은 존재다.

 

아무튼 고작 매일같이 똑같은 대량사료를 퍼주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은혜도 모르는 인간악귀따위를 위해 고양이님과 개님의 희생과 헌신 아가페적인 깊은 愛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작품이다.

 

★★★★★★☆☆☆☆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