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악인

인간 심연의 악의를 파헤치고, 선과 악 약자와 강자라고 하는 굵직한 테마를 선명한 묘사와 독특한 기법으로 그려내어 인간 본성에 대한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는 작품이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다.

 

하지만 위의 쓸데없이 거창한 소개글과는 반대로, 기대했던 끈적하고 불쾌하고 습한 인간의 심연 따위는 조금도 느껴지지않았다. 그저 살인사건으로 인한 관계자와 그 주위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등을 써 내려간 르포소설이라고 할까, 군상극이라고 할까. 

 

마땅한 카테고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작품이 이도저도 아닌 듯 해서 그런 것일까. 

 

그저 그냥 사건에대한 등장인물들의 일기라고 까지 느껴질 만큼 아무런 흥미가 떠오르지 않는다. 범인인 유이치는 그냥 사회성이 좀 부족한 인물상이고, 피해자인 요시노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천박한 인물이다. 중간에 걸친 게이고는 돈 많고 허세에 찌든 한량. 가장 불가해한 게 유이치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미쓰요인데, 후반을 장식하기 위한 인위적인 장치인 듯하다.

 

어딜 봐도 특별할 게 없다.

설마, 설마 하니 악인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게 저지르는 행위가 가장 악이다 심연이다―같은 흔해빠진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만큼 뭐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드라마틱하고 충격적인 사건 같은 건 소설이나 영화 속에만 있으며 이게 진짜 리얼한 사건의 모습이다―같은 얼빠진 소리를 하는 건 아닐까? 도 생각했지만 유명한 작가가 설마 그런 내용을 썼을까 하고 의심을 거두었다.

아무것도 없다.

 

그럼 진짜 악인은 누구인가? 궁금하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재미를 못 느끼고 그게 아니라면 책을 덮고 생각할만한 뭔가라도 남아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정말 무미건조하게 무감각하게 나열된 활자를 읽어 내려갈 뿐인 아무것도 아닌 독서시간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긴 한데, 내가 싫어하는 요소가 몇 가지 있어서 더욱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위에서 말한 군상극과 르포의 느낌.

쓸데없이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고 화자의 변경이 자주 일어난다. 거기다 각자의 내용도 지루하다. 등장인물이 새로 나올 때마다 직업이나 그 인물의 현재 상황 등 아무런 필요도 없는 정보가 나열돼 있다. 그 인물을 이해하는 지표가 될 수 있지만, 딱히 중요하지도 않은 인물한테도 줄기차게 나온다.

 

도로와 지역의 이름 나열도 그렇다. 

몇 번 국도가 어쩌고, 어떤 현을 지나면 어쩌고, ~도로 ~도로, 잊을만하면 나오는데 그래봐야 어떠한 심상도 주지 못하고 특별할 거 없는 도로에 무슨 심상을 떠올리라는 걸까. 차라리 단순한 눈 덮인 설경이라고 한다면 간단하고 명확하게 빠져들 수야 있지, 도로가 어떻고 국도가 어떻고 어쩌란 말인가.

지긋지긋하다.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신인상을 수상한 뒤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여러 작품들이 후보작으로 선정될 만큼 글을 잘 쓰는 작가인듯하다. 이 작품 악인도 영화화가 돼서 국내에도 상영을 했던 것 같고, 한번 봐볼까 했던 영화 분노도 이 작가가 원작자였다.

 

명성에 좌우되는 천박한 나라고 해도 이 작가와는 맞지 않는 듯 하니 앞으로 찾아서 읽을 일은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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