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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아카쿠치바 전설 / 사쿠라바 가즈키

알파카맨 2023. 2. 19. 14:31

아카쿠치바_전설

 

아카쿠치바 전설

이 이야기는 일본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아카쿠치바 가문의 3대에 걸친 여인들의 이야기다. 

 

아카쿠치바 전설은 크게 3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자체의 존재감을 가진 50~년대의 만요와 70~년대의 만요의 딸 게마리, 90~년대의 게마리의 딸 도코까지.

만요의 등장과 함께 깡촌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일종의 신비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작가의 미려한 묘사와 비유들 때문인지, 최후의 신화시대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는지, 미래를 보는 만요의 미래시 때문이었는지는―잘 모르겠지만, 첫 챕터를 읽으면서 그런 간질함을 느꼈다,

 

작품에 대해서 따로 할 말은 별로없다. 재미있었지만 이런 류의 작품은 읽어 보라는 말 말고는 그저 장단점 같은 무난한 말 말고는 풀어낼 말이 내 안에 안 떠오른다. 스포가 있지만 일단 몇 없는 이해 못 할 점을 말해 보자면.

 

작품 속의 비현실적인 내용들 전반.

그저 시대소설이라면 읽을 생각도 안 했겠지만, 만요의 미래시 정도까지는 재미를 위한 소재로 납득이 갔다. 그 뒤로 게마리는 모모요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나, 게마리의 남자를 계속해서 뺏는 모모요의 집착. 미래시라는 떡밥도 없는 게마리와 모모요의 죽음.

만요의 미래시에서 날으는 남자인 도요히사를 왜 거꾸로 본 건지. 툭눈금붕어 오빠의 시체를 가져간 산사람들의 존재 같은 맥거핀. 그리고 가장 큰 이유인 마지막 도코의 이야기가 쓸데없이 추리로 방향을 튼 것까지.

 

갑자기 추리가 됐던 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침내 2000년대가 배경이 됐으니 만요와 게마리의 이야기 같은 분위기를 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추리의 파트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이 정도로 추리작가협회상까지 수상한 건 이해하기 어려웠다.

 

추리파트 말고는 작품 속 나름의 해석이 들어가 있지만, 그럼에도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리게 된다.


 

신기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읽다 보면 향수를 느끼게 하는 온기가 있다가도, 알 수 없는 불안과 절망을 느끼게 된다. 즐겁게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멈칫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아마 그 감각은 아마 '격동의 시대'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격동.

급격히 움직이는 것.

 

우스운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아카쿠치바 전설을 읽어보니 드라마 '야인시대'가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떠올려보니 당시, 시대의 흐름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였구나 생각한다. 대한민국 격동의 근현대사를 관통한 삶을 살았던―작품과는 2~30년 차가 있다―드라마 속 김두한과 아카쿠치바 세 여인과는 날뛰는 배경이야 전혀 다르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쳐 전후의 혼란기와 안정기, 하락과 상승, 노동과 투쟁. 사상과 정치의 대립과 학생들의 운동까지. 느껴지는 감상이 무엇하나 다르지 않다.

(동 서양의 차이인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뒤늦게 떠올랐다.)

 

신화시대.

민간신앙과 토속신앙. 구전되어 온 전설 같은 과거의 유물들이 패전의 구렁텅이를 지나 신시대의 개선과 함께, 물밀듯 밀려오는 현대의 가치관과 문물들이 뒤섞인 그 당시만이 느낄 수 있던 과도기. 그 기묘한 혼란을 엿본 것 같다.

 

노동에서 보람을 찾고 자신의 노동이 나라의 부흥에 일조할 기둥이 될 거라는 것을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던 시대. 가정의 헌신만이 보람인 시대. 그런 시대가 있었고, 다시 노동과 헌신만이 전부가 아닌 젊음의 시대가 온다. 과거 부모의 가치관에 의문을 가지고, 마을이 아닌 좀 더 넓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발을 구르며 안절부절못하는 시대다. 피 땀 흘리며 몸을 혹사시키는 노동을 거부하고 가정만 바라보는 헌신하는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 

 

전 세대의 쇄신으로 안정적인 시대가 도래하고, 평화 속에서 피어난 젊은 세대는, 전 시대가 분출하지 못해 쌓아 왔던 혈기들을 대신 발산하기라도 하듯, 학교 안팎으로 불량이라는 이름을 달고 분출하며 날뛰기 시작한다. 

무기를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무리를 짓는다. 마을의 다른 학교들과 항쟁을 하며 영역을 넓혀간다. 이 새로운 전국시대는 젊은 정복자를 낳고, 정복자는 마을로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현까지 침투해 차례차례 승리를 거두며 한 세대 전체를 호령하며 맹위를 떨친다.

 

전국시대를 승리로 끝낸 정복자는 더 이상의 목표를 찾지 못하고 젊은 시대의 무대에서 내려온다. 불량의 시대가 사양길로 접어들어가고 불량들의 투쟁의 그늘 속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모범들의 시대가 꿈틀거린다.

교복을 벗어던진 모범들은 불량의 소란스러운 투쟁과 다른 조용한 투쟁을―수험의 전국시대의 승리자들이라고 할까―끝내고 쫙 빼입은 양복을 차려입고 경제 호황의 거품 속에서 금빛향락을 누리게 된다. 영원할 것 같던 금빛시대도 거품처럼 사라지고, 음울한 분위기가 만연하게 되는데,

 

자, 다음에 불어오는 시대에 이름을 붙일 주인은 어떠한 세대일까―.


이렇게 보면 일정주기로 시소게임을 하듯 움직이는 게 시대인 것 같다. 

어떠한 룰. 밸런스가 작용해서 돌아가는 게임.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르지만, 1이 유행하면 다음은 정 반대인 0이 유행하고, 

A시대의 끝은 A를 거부하고 이해 못 하는 Z의 시대다. 그렇게 공평하게 승점을 쌓다 보면 판은 돌고 돌아 다시 1과 A의 시작.

흐름에 공백은 없다. 정체正體도 없고, 정체停滯도 없다.

이 기류를―탁류를 버텨낸 사람들이 역사 그 자체가 아닐까.

 

사쿠라바 가즈키

지금까지 사쿠라바 카즈키의 작품은―

토막 난 시체의 밤, 사탕과자 탄환은 꿰뚫지 못해,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내 남자, 아카쿠치바 전설―이렇게 읽었다.

나열해 보니 거를 작품이 없는 게 작가의 무서움이다. 거기다 아카쿠치바 전설은 무려 두 달 만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전혀 믿기지 않는다. 출판사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이 작품이 재미있다는 말을 몇 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절판돼서 구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반 포기상태로 잊혀가고 있었는데,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 알라딘 중고서점이 보여서 볼만한 작품을 물색하던 중 찾아낼 수 있었다. 

그야말로 기적. 책 상태도 아주아주 양호하다. 

절판이니 평생 소장할 것이다.

 

스핀오프로 제철천사란 작품도 있다고 한다. 게마리와 관련된 이야기 같은데, 이것도 찾으면 바로 구매해야지.

 

아무튼.

아카쿠치바 전설은 다 읽은 뒤에 힘이 나는 작품이었다. 3세대를 속공으로 겪어본­―교육받은 느낌. 

마치 그 격동의 시대를 무사히 살아남은 것 같은 뿌듯함이라고 할까. 

함께해서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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