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철서의 우리 / 교고쿠 나츠히코
철서의 우리
교고쿠도 시리즈의, 백귀야행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철서의 우리다.
우부메의 여름, 망량의 상자, 광골의 꿈―까지가 시리즈의 입문용이고 교고쿠의 팬은 교고쿠도의 분량이 적은 광골의 꿈에서 버거워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시리즈의 최초의 장벽이 철서의 우리다.
약 1500페이지를 상/중/하 세권으로 나눈 분량은 팬이라도 압도당한다.
거기에 전작들에서 보여준 혼란이 세 권에 가득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망설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리즈의 특징인 장광설도 전까지는 알것같다는 느낌이라도 들었다면 이번에는 따라가기도 버거워졌다. 이쯤 되면 독자가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시험하는 것 같다.
숨겨져 있던, 명혜사라고 하는 절에서 연쇄승려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고서점일로 근처에 와있던 교고쿠와 세키구치, 불려 온 에노키즈, 취재로 온 아츠코와 기타 등등이 절에 빨려 들어가듯 점점 말려든다.―우부메의 여름에 등장하는 구온지 노인도 등장한다.
30명이 넘는 승려들. 경관과 등장인물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 서로 부르는 이름도 다르니 누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마치 쌍둥이들한테 뚜들겨 맞는 느낌. 전작부터 이어진 특징도 여전하다. 세키구치를 포함한 인물들의 심리 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고, 전혀 상관없는 거 같은 과거의 사건과 인물이 현재와 연결되어 있다. 역시나 윤리관이 박살 나있는 유쾌한 등장인물도 당연히 있다.
살인의 혼란 속에서 시리즈의 백미인 장광설은 빛나는데, 이번엔 교고쿠도 만이 아니다. 온갖 승려들이 장광설 대결을 펼치듯 대화를 토해낸다. 이게 또 장광설 심화 편이라고 할까, 향연 속에서 불교의 역사부터 교리, 수행, 선, 선문답인 공안, 조동종, 임제종, 오가칠종 등, 종교―주로 불교에 대한 읽어도 이해 못 할 장광설이 끝없이 나온다.
명혜사와 하계의 절대적인 가치관의 차이와 승려들의 폐쇄적인 분위기. 등장인물들이 말을 아끼면서 쓸데없이 감추며 사건이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막말로 에노키즈와 교고쿠가 중간부터 끝까지 관여했으면 두 권안에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에노키즈는 '봐도'난리만 피울 뿐 명확하게 말로 설명하거나 하지 않는다. 교고쿠는 둘째치고 에노키즈에겐 그 이후에 벌어지는 살인의 도의적 책임까지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이 답답하다.
1500 페이지인 것에 비해서 시체는 몇 구 없는데, 피로해진다. 분명 쉬운 길이 있어 보이는데, 야마시타라는 경관의 짜증 나는 엘리트 의식도 그렇다. 교고쿠나 에노키즈의 가치관은 현대인의 기준인 듯 시대배경에 비해서 선진적으로 그리면서 경관은 그야말로 스테레오타입의 멍청하고 큰소리밖에 못 내게 만들어놨다.(중간에 야마시타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다.)
초동수사도 엉망이고―경관의 무능과 승려들 탓이 크다.―겨울 산속을 싸돌아 다니는 스즈도 훌륭한 관계자일 텐데도 구속은 못하더라도, 위치파악은 계속해서 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는다.
그 스즈코와 스즈일가의 심리가 가장 이해가 안 됐다.
이미 실종된 스즈코와 한 겨울에 산을 싸돌아 다니는 스즈. 무엇보다 스즈가 한 일련의 행동들. 하쿠교와의 일과 그의 우리를 열어버리는 일. 마지막에 등장해서 하는 말들까지. 정체를 알아도 그 행적에는 그저 고개를 기울이게 될 뿐이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승려들끼리의 치정이기도 하다. '승려들끼리의 치정'―말이다.
두 번을 써도 뇌가 이해를 못 하는 듯 어지러운 단어의 조합이다. 승려들끼리의 치정. 이게 말이 되는 건가. 두 단어가 같은 줄에 묶여있어도 되는 단어가 아닐 텐데.
그동안 근엄하게 앉아서 장광설을 펼치던 인간들이 밤에는 동성애치정싸움이나 하고 앉아있다니, 이후부터 명혜사의 신비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로 인해 납득하게 되는 건 승려들의 삶이었다.
머리를 밀고 산 속 절에 틀어박혀, 매일매일을 똑같은 수행을 하며 수 십 년을 보낸다. 과연 그럴만하다. 그만한 번뇌를 끌어안고 승려된 몸으로 그 지경까지 갈 정도라면―하계에 있을 때는 고통천만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종교인들은 일반인들보다 번뇌가 많을 거라고, 그런 고정관념이 생겨버렸다.
남들보다 가득찬 번뇌로 인한 고뇌 끝에 종교에 몸담게 된 것이다.
아무튼 꽤 긴 시간들 들여 완독을 끝냈는데, 간절하게 바라던 결말의 충격은 다른 시리즈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었다. 쌓아 올린 빌드업이 너무 길어서 그럴까, 범인의 분량이 적어서 그럴까. 동기가 어이없어서 그럴까.
철서의 우리에서 우리는 짐승을 가둘 때의 그 우리인데, 작품 속에서 말하는 우리의 개념과 코즈믹에서 말하는 밀실의 개념이 비슷하다.
우주가 세상이 몸이 머릿속이 뇌가 경계의 안과 밖이 우리이며 밀실이다.
완독 후 떠오르는 의문은, 과연 이 작품을 1페이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읽고 완벽하게 이해를 끝낸 독자가 존재할까. 교고쿠의 방대한 지식은 존경스럽지만 독자가 따라가기에는 거리가 너무나 멀다.
교고쿠의 작품도 그렇고, 비슷한 시대배경을 가진 작품들에서 보이는 특징이 있는데, 가족 간의 특히 부녀 혹은 남매간의 뭔가 숨기는 비밀이 있으면 보통은 근친상간이고, 사라진 아이, 없어진 아이, 닮은 아이가 등장하면 높은 확률로 그와 관련된 등장인물의 자식이다.
또, 내가 놓친것일지도 모르지만, 결말이 그렇다면, 진슈가 스즈를 주워다 키운 일화들은 다 거짓말을 한 건가?
다음 작품은 5번째인 '무당거미의 이치' 다. 역시나 철서의 우리와 같은 분량 상/중/하로 돼있다. 언제 읽게 될지 알 수 없다.
★★★★★★☆☆☆☆
교고쿠도 시리즈